삼성에게 국가는 ‘만만한 적(敵)’인가?
“역대 최고 과태료”라는 공정위 칼날, 핀으로 찌른 수준
2012-03-20 김경탁 기자
‘역대 최고’에, ‘법정 최고액’이라는 미사여구가 붙여진 이번 과태료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푼돈(?)인 4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런 처분이 내려지기까지 조사 착수 시점으로부터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공정위의 이번 발표는 ‘응징’에 따른 통쾌함보다 실정법의 허술함에 대한 좌절감만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보인다.
조사착수로부터 과태료 처분까지 걸린 시간도 무려 1년
삼성의 ‘나쁜 버릇들’을 방치하는 허술한 법망이 더 문제
공정위는 지난해 3월 휴대폰 유통관련 현장조사를 위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현장조사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및 소속 임직원들은 공정위 조사공무원들의 출입 지연, 증거자료 파기, 담당자 잠적, 허위자료 제출 등을 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삼성전자와 임원 2명에게 조사방해와 허위자료 제출을 이유로 역대 최고 과태료인 4억원을 부과했다.
세부내역을 보면 조사방해에 대한 과태료가 2억원, 허위자료 제출이 1억원, 그리고 임원 개개인에 대한 과태료 5천만원씩 1억원을 모두 합친 것으로, 각각 법정최고한도액이라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또한 이번 조사방해행위와 관련된 본 사건인 삼성전자의 부당한 고객유인행위에 대해서도 조사방해를 근거로 과징금 23억8천만원을 가중시켰다.
어떻게 방해했나
지난해 3월24일 목요일 14시20분경 삼성전자 보안담당 직원 및 용역업체 직원들은 휴대폰 유통관련 현장조사를 위해 관련 부서(무선사업부 한국상품기획그룹)로 가고자 하는 공정위 조사공무원들의 출입을 지연시킨다.
조사공무원들은 신분을 밝히고 무선사업부로 가기 위해 출입을 요청하였으나 내부규정상 사전약속을 하지 않은 경우 담당자가 나와야만 출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출입을 계속 거부했다.
이에 조사공무원들은 1시간 가까이 지연된 15시10분경이 되어서야 조사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당시 사무실에는 직원 김ㅇㅇ 혼자만 남아있었다.
이렇게 한 시간 가량 공정위 조사공무원들의 출입이 지연되는 동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지원팀장 박 모 전무의 지시에 따라 조사대상자료가 폐기되고 핵심 조사대상자들의 PC 3대에 대한 교체가 이뤄졌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조사 이튿날 오전 주요 담당자들의 PC가 공 PC로 교체된 사실을 간파하고, 집중 추궁했지만 삼성 측은 여러 가지 사유를 대면서 당시 상황을 빠져나갔으며, 이와 관련해 내부보고서에서는 “여러가지 사유로 빠져나갔으나 의혹 남음”이라고 기재했다.
조사공무원에 대한 출입지연이 우발적이 아님은 보안요원에 대한 내부 평가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공정위 조사방문 후 삼성의 ‘보안담당 용역업체에 대한 평가’ 관련 내부자료를 보면 ‘정보보호그룹’ 회의에서 정ㅇㅇ 그룹장은 “S1 직원들이 휴먼 대처를 잘했다”며, 공정위 조사방문 과정의 대응에 대해 칭찬한 사실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응 시나리오까지 마련
삼성전자가 조사공무원에 대한 출입지연과 자료 폐기 등의 대응방식은 자체적으로 수립된 사전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공정위가 공개한 삼성전자 내부 보고문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서장 김 모 상무는 현장조사 당시 수원사업장에 있었음에도 조사공무원과 전화통화시 서울본사에 출장중이라며 조사응대 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며 이는 사전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었다.
김 상무의 거짓말 등으로 조사응대를 거부해 당일 조사가 불가능해지자 조사공무원들이 철수했는데, 조사공무원들이 철수하자마자 김 상무는 미리 빼돌린 자신의 PC를 가져와 파일삭제프로그램으로 PC에 저장된 조사대상자료를 전부 삭제처리했다.
김 상무는 삭제 처리 후 직속상사인 모 부사장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한국 로드맵 아이폰 대응 관련 보고 자료, Tab 가격정책, 아이폰 미도입시 당사 제안 내용’ 등의 파일을 삭제했다고 보고했다.
이와 관련한 공정위 심문에서 김 상무는 ‘이외에 또 어떤 파일들을 지웠느냐’는 조사관의 질문에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윈도우 검색기능에서 SKT 관련 검색을 해서 관련된 파일은 다 지운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답변했다.
허위자료 제출까지
삼성전자의 조사방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정위는 첫 방문조사시 조사공무원의 출입이 지연된 사유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부서가 속한 건물의 출입기록을 요청했지만 삼성전자는 조사방해 당시 PC를 교체했던 직원 이아무개의 이름을 삭제한 허위의 출입기록을 제출했다.
공정위 현장조사 조사방해 이후에도 삼성전자는 ‘비상상황 대응관련 보안대응 현황’을 마련, 보안규정을 더욱더 강화했다.
공정위 조사공무원이 방문하더라도 사전연락이 없었을 경우 정문에서부터 입차금지, 바리케이트 설치, 주요 파일에 대해 대외비를 지정하고 영구삭제, 데이터는 서버로 집중시킬 것 등의 내용이다.
이번 조치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회사의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고위 임원들이 직접 지휘를 통해 의도적으로 조사를 방해했고 조사방해 혐의 축소를 위해 허위 자료까지 작성해 조사기관에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여기에 평소 조사방해가 상습적으로 발생한 기업이란 점과 조사방해 이후 작성한 보안지침에도 향후 공정위 조사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보안을 강화한 점들을 감안해 법상 최고한도액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조치는 나날이 교묘해지는 기업들의 조직적인 조사방해행위에 대해 엄중 제제한 것”이라고 지적한 공정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법 위반행위의 적발·시정을 어렵게 하는 조사방해 기업에 대해서는 가능한 법적 수단을 모두 동원해 엄중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혀다.
공정위는 이번 삼성 과태료 부과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2월27일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이를 적극 행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9일 국무회의로 송부돼 공포 및 발효(공포 후 3개월)를 기다리고 있는 개정 법률안은 “폭언·폭행, 현장진입 저지 등을 통해 공정위 조사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하는 자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률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삼성이 이와 유사한 대응을 다시 벌이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사실상 국내 최강의 법무법인’으로 알려진 삼성그룹 법무팀의 존재 앞에서 과연 ‘3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법이 어느 정도의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령 꽉꽉 채운 3년 형이 일상적 판례로 정착된다 한들 삼성의 거대한 인력풀과 보상체계를 감안하면 큰 위협이 될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공정위 보도자료에 ‘별첨’된 과거 주요 조사방해에 대한 조치 실적으로 보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총 15건의 조사방해 조치 사례 중에 삼성그룹 계열사의 조사방해는 5건으로 압도적 1위를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