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농심, 시련은 언제 끝날 것인가

정부·지자체·대리점과의 힘겨운 싸움 지속...소비자 변심 우려

2013-03-28     박동준 기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농심의 최근 상황이 ‘孤立無援(고립무원)’이다. 정부는 물론 중간도매상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소비자마저 농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잇따른 정부와의 마찰 그리고 법정싸움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 이하 공정위)는 지난 22일 농심이 라면업계 담합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1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이유에 대해 “시장지배자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농심이 가장 먼저 가격인상안을 마련해 다른 업체에게 정보를 넘기면 다른 라면 제조업체들이 이를 따라오는 방식으로 10년간 담합을 지속해왔다”고 설명했다.

농심을 비롯한 라면업체들은 담합 결속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가격인상과 관련된 정보뿐 아니라 각 사의 판매실적‧목표, 거래처에 대한 영업지원책, 홍보 및 판촉계획, 신제품 출시계획 등의 대외비적인 경영정보 역시 상시 교환했다. 담합에 참여하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는 업계가 공동으로 견제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라면업계는 농심을 중심으로 몇 몇 업체가 독‧과점 형식으로 형성되어 있어 장기간에 걸친 이들의 담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됐다.

농심은 공정위의 이번 징계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법정투쟁까지 불사할 기세다.

농심측 입장은 “70% 이상의 시장점유율과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를 지닌 업체가 후발업체들과 가격 인상 논의를 할 이유가 없다”며 “독자적으로 가격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이미 농심은 먹는 샘물(생수)인 ‘제주 삼다수’ 유통문제를 두고 제주도개발공사(이하 제주도)와 힘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삼다수’는 생수 업계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대표적인 생수 브랜드다. 지난 1997년 제주도와 농심은 계약을 맺고 농심이 삼다수를 독점 유통‧판매해왔다.

‘삼다수’는 농심의 전체 매출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삼다수 매출은 1900억원 내외며 이는 농심 전체 매출의 10% 수준이다. 음료 사업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농심으로서는 중요한 사업인 셈이다. 또한 매년 생수업계 시장이 10%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 역시 농심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블루오션인 농심의 생수 사업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농심이 삼다수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정작 제주도 지역경제에 대한 관심은 소홀하다는 여론이 대두되면서 부터다.

결국 이 같은 여론에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삼다수 유통과 관련한 조례를 개정했다. 농심에게 부여했던 독점적 유통계약을 해지하고 공개입찰방식을 통해 유통업체를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농심은 공개입찰에 즉각 반발, 공개입찰 진행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고 현재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가처분 상태다.

하지만 제주도가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계획이라 이에 대한 논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농심 대리점, 대형마트만 챙기는 농심에 뿔났다

농심과 갈등을 빚고 있는 상대는 정부뿐만이 아니다. 농심 상품의 중간 유통업자인 대리점들이 본사의 ‘대형마트’ 우대정책에 집단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5일 서울‧경기도 지역의 농심 대리점주 50명이 결성한 ‘농심특약점 전국협의회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원회)는 “농심이 라면가격을 부풀려 산정하고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에게만 싸게 공급해 대리점이 말라 죽고 있다”고 밝혔다.

농심 대리점은 농심 본사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일반 슈퍼같은 소매점에 납품하는 개인사업자들이다.

준비위원회는 “농심이 대형마트와 SSM 들에게는 추가 물량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20% 이상의 가격 할인을 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농심의 ‘판매장려금’ 지급 방식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준비위원회측은 “대리점들이 매출 목표를 채우면 농심으로부터 매출액의 3~4%를 판매 장려금으로 받고 있지만 정상적인 거래로는 목표량을 채울 수 없어 들여온 값보다 싸게 동네 슈퍼 등에 라면을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에 대한 집단반발 조짐은 지난해 12월 농심이 주요 제품에 대한 가격인상 이후 일부 소매점에서 농심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대리점과 대형마트에 제공하는 제품 출고가는 같다”며 “대형마트에 판촉물량을 주는 것은 대형마트 특성상 대량구매를 하는곳이기 때문에 주는 것일뿐”이라고 강변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판매장려금 역시 일방적으로 목표치를 정해주지는 않는다”며 “대형마트, SSM의 등장으로 인한 유통구조가 변화돼 대리점들의 매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대리점들의 수익구조 개선을 위한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심 간판주자 ‘신라면’의 몰락

농심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소비자들의 변심(?)이다.

한때 라면시장의 70% 이상을 농심제품이 차지하면서 ‘절대강자’ 자리를 20년이상 넘게 고수하고 있지만 지난해 하반기 하얀국물 열풍이 강타하면서 농심의 아성이 위협받고 있다.

그동안 농심의 스테디셀러인 ‘신라면’ 이후 신제품 출시가 늦어지는 것과 반대로 경쟁사인삼양의 나가사키짬뽕과 팔도의 꼬꼬면이 출시되면서 점유율 70%가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지난 1월에 발표된 시장조사기관 AC닐슨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시장점유율이 65% 근처까지로 떨어졌다.

물론 농심도 신제품 출시를 안한 것은 아니다. 신라면 출시 25주년을 기념해 야심차게 준비한 ‘신라면블랙’이 출시초반 판매호조를 기록하면서 또 하나의 대표제품으로 자리매김하리라는 기대감이 커졌으나 ‘꼼수 가격인상’이라는 논란에 휘말려 사라지게 됐다.

또한 신라면블랙 제조법이 시중의 기술을 무단 도용한 결과물이란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신라면블랙’은 농심의 이미지에 먹칠만 한 결과를 낳게 됐다.

여기에 지난해 단행한 가격인상과 맞물려 라면업계 담합의 비난이 농심에게 집중되면서 여론도 악화되가는 실정이다.
포스트 신춘호는 누구? 농심 승계작업 순탄할까

상황이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 농심은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신춘호 회장의 셋째 아들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신규선임했다. 신동익 부회장이 농심의 경영에 참여한 것을 두고 신춘호 회장이 후임자 선정작업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농심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쟁사들의 하얀국물 열풍에 시장점유율이 하락되는 등 실적악화에 삼다수와 신라면블랙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올해 경영환경도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농심의 매출액은 1조 9706억원으로 전년대비 4% 정도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같은기간 29.1% 급감한 1101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 공정위 과징금이란 돌발악재로 일년농사가 한순간 과징금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이다.

반면 이번에 농심의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된 신동익 부회장이 운영하던 메가마트는 농심이 실적부진으로 허덕이는 사이 실적개선을 일궈냈다.

메가마트는 2008년 5억원에 불과하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142억원으로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2010년 65억원에서 지난해 94억원으로 급증했다.

메가마트는 농심그룹이 운영하는 대형할인점으로 1975년 동양슈퍼마켓으로 설립됐으며 2002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됐다. 현재 부산, 천안 등 국내에 12군데 매장, 중국에 3군데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농심이 처한 현재상황과 이번 신동익 부회장의 농심 경영참여를 두고 올해 81세로 고령인 신춘호 회장이 후계자 선정을 위한 작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동안은 농심의 후계자는 당연히 장남 신동원 부회장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신동익 부회장의 참여로 농심 황태자의 자리가 흔들릴 수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의 배경에는 신 회장 자신도 형인 롯데 신격호 회장으로부터 농심을 분리시켜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만큼 형제간 우열보다는 경영능력을 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농심 관계자는 “최근 재계 분위기가 오너들의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분위기”라며 “이번 신동익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도 책임경영의 일환이며 후계구도 경쟁과는 상관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