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은 어디가고, ‘돈’만 주머니에”

‘믿음직스럽다’던 박모 중위, 알고 보니 ‘사기꾼’…현역장교사기단, 동료상대로 400억원대

2008-06-20     류세나 기자

“대출이자 갚으려고 시작”…사무실까지 차려놓고 수백억 ‘꿀꺽’
대인관계 좋은 동기생, 알선책으로 포섭…외제차 선물해 ‘유혹’
투자금 제 돈 쓰듯 ‘펑펑’…외제차 굴리고 1회 술값 3백 ‘기본’
“3개월 내 원금 50% 수익률 보장…대출이자 대납도 OK” 현혹

현역 육군 장교 10여명이 동료 군인과 그들의 친인척 등을 상대로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인 400억 원대 금융사기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나 우리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이번 사건에는 헌병대와 같은 군 사정기관 관계자들까지 연루된 것으로 밝혀져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질타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 진다. ‘강한 전사’를 양성하는데 몰두하기는커녕 사기극을 벌여 개인의 사욕만을 챙겨온 이들 일당의 사기행각 전모를 <매일일보>이 파헤쳐봤다.

육군 고등검찰부는 지난 16일 “3개월 안에 투자금의 50%이상의 수익을 내 돌려주겠다”며 동료군인 650여명, 동료의 친인척 100여명 등 750여명으로부터 400여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육군 박모(25) 중위 등 핵심 주동자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박 중위는 투자금 명목으로 400여억 원을 편취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로, 육군 전모(25), 김모(26) 중위 등 2명은 박 중위에게 투자자를 알선한 혐의(유사수신행위의규제에관한법률 위반)로 각각 지난달 28일에 구속됐다. 또 군검찰은 오모(26)중위 등 10여명이 중간투자 알선책으로 활동한 사실을 포착, 이들에 대해서도 혐의가 드러나는 대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조사결과 이들 ‘장교사기단’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5월말까지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수익금을 상환하는 소위 ‘돌려막기’ 방법으로 사기행각을 이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이들 일당은 투자자들에게 ‘성공보장’의 확신을 심어주고, 더불어 더욱 많은 투자금을 받아내기 위해 투자자들이 대출받은 제2금융권의 이자를 대납해주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현역 장교들의 대형사기극은 한 중위의 ‘대출금 갚기’ 작전에서 시작됐다. 사건의 주모자인 박 중위는 군 검찰부에서 “지난해 1월, 제2금융권에서 대출받은 4천만 원을 포함한 현금 5천여만 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모두 잃었다”면서 “대출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하게 됐다”고 진술했다.사기연극의 총연출격인 박 중위는 투자명목으로 들어온 현금을 자신 명의의 통장에 넣고 관리하면서 마치 자신의 개인 돈인 마냥 쓰고 싶은 곳, 쓰고 싶을 때 마음껏 사용해왔다. 한 군 검찰관계자는 “검거 당시 박 중위는 5억 원 상당의 스포츠카 람보르기니와 벤츠 S500 등 고급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었다”면서 “부대가 있는 충남 조치원에서 서울로 올라가 머물 때면 강남구 소재의 R호텔, I호텔 등 고급호텔에만 투숙했다”고 말했다. 또 그에 따르면 박 중위는 고급 룸싸롱에도 자주 출입했는데 평균 술값이 회당 300~400만원에 달하는 등 유흥비로만 40여억 원을 탕진했다. 이 같은 씀씀이 탓에 검거 당시 통장잔고는 투자자금의 10%에 불과한 40여억 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쌓아온 신임바탕으로 동료군인들 속여

많은 투자자들의 지갑을 열게 한 ‘박 중위는 미래를 내다보는 실력 있는 투자가’라는 ‘간판’ 역시 사기극의 일부분이었다. 이 같은 점은 자신의 자산 5천여만 원을 주식투자로 날렸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박 중위는 지난 4월 ‘확실한 수익률 보장’ 한다는 말만 믿고 인터넷 금융다단계 조직 A사에 110억을 투자했다가 1달 만에 전액 손해를 봤다. 뛰는 사기꾼 위의 나는 사기꾼에게 당한 꼴. 또 코스닥 상장 B기업에 27억 원, 기타 증권에 24억 원을 투자했다가 이 역시 본전을 찾기는커녕 전액 모두를 날리고 말았다. 박 중위의 실상은 ‘브레인 투자가’가 아닌 ‘노브레인 투자가’였던 것이다.그렇다면 700여명이 넘는 피해자들은 박 중위 일당의 ‘무엇’을 보고 거액의 돈을 ‘선뜻’ 투자했던 것일까.군 검찰에 따르면 충남대 경영학과를 다니던 박 중위는 직업군인이 되기로 결심,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 지난 2004년 졸업과 동시에 육군 제ㅇㅇ사단 장교로 발령받았다. 자신이 원하던 길을 걷게 된 그는 이후 자신이 맡은 책무를 성실히 수행했고, 주위 동료들로부터 믿음직스럽다는 평까지 듣게 됐다. 그러던 중 주식에 빠져들게 됐고, 손해액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에 박 중위는 주식으로 잃은 손해액을 만회시키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사관학교 동문, 동료 등에게 사기극을 펼치게 됐던 것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신임이 두터웠던 덕인지 박 중위의 사기극에 많은 동료들이 관심을 보였다.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액수가 점점 커지자 박 중위는 동료들 사이에서 리더십이 뛰어나거나 대인관계가 좋은 동기생들을 투자 알선책으로 포섭했다. 믿을 만한 사람의 정보여야 더 많은 투자자들이 몰릴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박 중위의 ‘잔머리 굴리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알선책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미끼’를 던진 것. 일정액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알선책에게 벤츠, 아우디 등 고급 외제승용차와 10%의 알선수수료를 지급해 더 많고, 더 높은 금액을 유치해 올 수 있도록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사기극 잘 풀리자 금융사무실까지 차려

물론 대외적인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자신을 OO증권 직원, 혹은 전역 후 OO증권 펀드매니저로 영입이 확정된 상태라고 거짓 정보를 흘려 ‘전문성’이라는 포장지로 자신을 포장했다.군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박 중위는 알선책에게 투자자들에게 자신을 ‘OO증권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라고 소개하도록 지시했고, 그 증권회사에서 원금을 보장하는 증권에 투자한다고 속여 원금의 50% 수익을 내는 것이 쉬운 것처럼 호언장담해 왔다”고 말했다.

게다가 신용이 부족한 투자자들에게는 대출업체도 알선해주고 대출이자까지 대납해 준다는 점은 당장 돈이 없는 사람들까지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의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제2금융권의 도움을 받아가면서까지 박 중위에게 투자를 했다. 3개월 뒤면 50%의 수익을 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몇 년간 동거동락해 온 동료군인이 자신에게 사기를 칠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이 같은 입소문은 동료군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인척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고, 그렇게 장교사기단의 희생양이 된 일반인도 100여명에 달한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남의 지갑을 열게 하는 데 재미가 들린 박 중위는 더 큰 규모의 ‘돈 맛’을 볼 수 있는 사기판을 벌이는 데 머리를 굴렸다. 그 결과 생각해 낸 묘안이 바로 투자금융회사를 설립하는 것. 군검찰 조사결과 박 중위는 지난 4월 공범 전모(25) 중위와 함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사금융회사를 차린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공정위의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금융회사였다. 하지만 이 같은 내막을 알 턱이 없는 투자자들은 이들 일당의 ‘화려한 겉모습’에 속아 더욱 쉽게 큰 액수를 투자했고, 이 덕에 지난 4월 한 달에만 134억에 달하는 거액이 모이는 쾌거(?)를 이룩할 수 있었다.   

기무 헌병대원들도 사기극에 ‘깜빡’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이들이 사무실을 차려놓고 돈을 긁어모으고 있던 4월말께  육군 고등검찰부에 ‘군인들 사이에 암암리에 돈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때마침 ‘성실했던’ 박 중위는 ‘남의 돈 먹는 재미’에 푹 빠져 군인이라는 본업을 잊은 채 업무태만으로 1개월 정직 처분까지 받은 상태였다. 또 군 상부에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까지 접수돼 군 검찰부는 박모 중위에 대한 의혹수사에 나섰고, 그 결과 장교사기단의 사기극 전말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군 검찰에 따르면 이들 장교사기단에게 속은 피해자들 중에는 군 관련 첩보수집 및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기무와 헌병 대원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무․헌병 대원들도 투자자 명단에 있다’는 게 암묵적으로 알려졌을 경우 이 같은 사실은 사업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보증수표처럼 작용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다. 이 때문에 불에 기름 붓듯 피해자의 수와 피해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것이라는 게 군 검찰부측 관측이다.

피해자 숨져 육군 ‘초비상’…“구제대책 마련중”

국방부와 육군측은 창군 이래 최대 규모 사기사건으로 인한 피해 범위와 정도가 커 금융사기사건 피해전담 구조팀을 설치해 피해자들을 돕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군검찰 관계자는 “피해자측의 과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의 정도와 규모가 너무 커 해당 부대의 관리에 부담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주요 피해자들은 부사관 및 대위이하 장교로 5천만 원 이상의 피해를 본 사람만 해도 200여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무관, 경리장교, 금융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피해전담팀을 만들어 제2금융권 대출금을 변제할 수 있도록 대출을 알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한편 사건을 보고받은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피해자들이 대위 이하 위관과 부사관들이라는 점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피해자들에 대한 신변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당 부대에 긴급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이 같은 지시에도 불구하고 지난 18일 오후 2시 25분께 박 중위에게 6천2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이모(26) 중위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돼 육군측은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이와 관련 육군 한 관계자는 “피해자들 대부분이 다소 ‘과격’하다고 할 수 있는 현역 군인이고, 피해액이 큰 피해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조사돼 혹시나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었다”면서 “개인회생절차 신청, 대출금을 제1금융권으로 전환하는 방법 등 군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니 피해자들이 의연하게 대처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