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요구가 ‘땡깡’으로 들리더냐…”

하루 10시간 일해도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건설 노동자들의 ‘생존’ 몸부림 시작됐다

2009-06-20     류세나 기자

“볼일도 트럭 안에서 해결…우리는 사람이 아닌 소모품”
 “표준임대차 계약서 ‘글쎄’…유류비 건설사에서 부담해야”
 “늘어나는 것은 온통 ‘빚’…정부가 강력한 의지 보여 달라”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연일 거리로 나서고 있다. 지난 13일 화물연대가 1번타자로 총파업(19일 협상타결)에 나선데 이어 지난 16일에는 건설기계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했다. 또 내달 2일에는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특정 기업, 특정 지역의 노동자가 아닌 전국의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일손’을 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나 1번, 2번 타자로 총파업의 총대를 멘 화물연대, 건설노조 노동자들은 특정 회사에 소속된 ‘월급쟁이’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돈’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하루도 아니고 몇날며칠씩 화물차, 덤프트럭, 굴삭기 등을 제자리에 세워두기만 했다. 그들의 장비에는 ‘기름 없어 못 굴린다’ ‘주인 너 놔두고 투쟁하러 서울 간다’라는 문구만이 붙여져 있을 뿐이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과연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제 욕심 챙기기’인지 그들의 속내들 들어보기 위해 지난 16일 건설기계노조 총파업 선언 현장을 다녀왔다.

30도를 넘나드는 기온 탓에 유독 더웠던 지난 16일. 더군다나 오후 2시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과 그 열기를 모두 흡수한 것만 같은 아스팔트 위에서 펼쳐진 결의대회는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그러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4차선 도로 500여m를 가득 메운 전국 건설기계노조 조합원 2만여명의 요구와 함성은 더운 날의 열기보다 더 뜨겁고, 강렬했다. 조합원들의 손마다 들려 있는 ‘차라리 죽여라’라고 적혀 있는 손플래카드의 내용은 비장해보이기까지 했다.“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소모품일 뿐이에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데 화장실 한번 제대로 갈 수 있는 줄 아십니까. 화장실 좀 가려고 차에서 내리면 하청업체 관리자들이 와서 근무시간에서 30분을 제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럼 어디 내릴 수 있나요. 그래서 볼일도 차 안에서 해결해요.”20년 간 덤프트럭 운전을 해왔다는 박철운(52 ∙ 가명 ∙수원)씨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인간이하’ 취급을 받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말했다. 또 그간의 세월동안 지금처럼 ‘먹고 살기’ 힘든 적은 처음이라고 말하며 연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돈 많이 달라는 거, 절대 아닙니다. 일한 만큼의 대가를 달라는 겁니다. 표준임대차 계약서 시행이요? 그게 현장에서 가당키나 한 말 인줄 아십니까. 계약서라는 걸 작성이라도 해봤으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치솟는 기름 값에 울고 다단계 하도급에 울고

박씨가 말하는 ‘건설기계 표준임대차 계약서’란 무엇일까. 지난 5월 공정위에서 통과된 이 계약서는 건설기계 가동에 필요한 유류비 및 운반비를 임차인이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루 8시간이상 작업시 추가근무 수당 지급, 임대료 현금지급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문서대로라면 건설기계노동자들 유류 값 등락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 받을 수 있다.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사항이 ‘강제’가 아닌 ‘권고’에 그쳐 각 건설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때문에 표준임대차 계약서 작성이 현장에 안착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달라는 게 이번 파업투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

올해로 덤프트럭을 운전한 지 꼭 22년째가 됐다는 김희도(46 ∙일산)씨 역시 표준임대차 계약서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실효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선결돼야함을 피력했다.

김씨는 “건설산업은 뿌리부터 잘못돼있다.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구조 때문에 건설사에서 50만원을 지급해도 위에서 다 떼고 나면 정작 우리에게 들어오는 돈은 30만원선”이라면서 “그 30만원에서 기름 값 25만원, 차량 보험금, 수리비, 지입비 등을 지불하면 오히려 적자”라고 말했다. ‘유류비를 건설사 측에서 부담하는’ 임대차 계약서 정착이 시급하다는 것.그는 또 덤프트럭을 몰면서 남은 것이라곤 ‘신용불량자’, ‘이혼남’이라는 딱지밖에 없다며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아픔들을 토로해냈다.“열심히 살지 않아 신불자가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매일을 하루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대학로에 온 것도 약 15년 만이네요. 그만큼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도 없이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정작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차 세워 놓는 게 더 나을 판”

이날 대학로에서 만난 건설기계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이대로는 못살겠다며 목에 핏대를 세우며 생존권 보장을 외쳤다.그 중 수만 명의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고유가 문제해결’이라고 쓰여 진 몸벽보를 등에 붙인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건설노동자 남편을 따라 나온 부인쯤으로 보이는 그 여인은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있는 ‘유일한’ 여성 같았다.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그러나 실상은 남편을 따라 나온 부인이 아닌 자신이 바로 ‘건설노동자’였다.   사별한 뒤 혼자 힘으로 4명의 딸을 키우고 있다는 이이남(51 ∙화성)씨는 7년 전 덤프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트럭 2대를 소유하고 있는 이씨는 6개월 전부터 운행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차를 움직일수록 오히려 빚만 늘어간다는 게 그 이유다. “여자의 몸으로 건설분야 일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자부심을 갖고 일했어요. 그런데 지금의 임금으로는 도저히 기름 값, 자동차세, 보험료를 충당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에요. 아이들에게 못난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몰래 울기도 엄청 울었어요.”

전국건설기계노조 백석근 위원장은 이날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유류비 인상에 따른 운송비 현실화, 임대차계약서 이행, 건설현장 산재적용 등을 주요요구안으로 제시했다.

백 위원장은 “건설기계 노동자들 임금의 70%가 기름 값으로 사용된다. 정부는 일 할수록 적자나는 현실을 해결하라”면서 “우리들의 요구는 ‘땡깡’이 아니다. 표준임대차 계약서 안착과 유가 지원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노동자들은 우리가 저항할 수 있는 최고의 강도로 계속해서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기계노조는 지난 17일 열린 국토부제1차관과의 면담을 통해 정부가 표준계약서 조기 정착에 대한 의견을 상당부분 수렴했다고 밝혔다.하지만 다단계 하도급 구조 탓에 현장에서는 노동자들과 계약서를 작성해야 될 주체조차 명확치 않다. 정부가 표준 임대차 계약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한, 파업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