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위축-수출비상-冬鬪-“빵을 달라”
올 겨울‘감원회오리에 더 춥다’
재계에 감원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다. 금융권도 또다시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내수 부진으로 경기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는데다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수출마저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따른 여파다. 특히 최근 들어 벌어지고 있는 인력 감축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나 금융권이 구조조정을 통해 상당수의 인력을 퇴출시킨 상태에서 실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감원 회오리가 몰아치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코오롱그룹은 지난달 25일 그룹 전체 임원 127명 가운데 23%로 해당하는 29명을 줄이는 대규모 감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동찬 명예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송대평 김주성 두 부회장과 외부영입 인사인 조왕하 부회장 등 그룹 부회장 전원이 퇴진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코오롱그룹 회장단에는 이웅열 회장이 최근 직접 영입한 이상철 전 정통부장관, 임채주 전 국세청장 등 고문 2명만 남게 됐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이웅열 회장의 ‘친정 체제’ 강화를 위한 인사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사실 코오롱의 대대적인 임원 감축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돼 왔다.
그룹의 주력회사인 ㈜코오롱은 경북 구미공장 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올해 3·4분기에만 232억원의 적자를 냈다. 의류사업 부문의 FnC코오롱 역시 3 4분기에 67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코오롱캐피탈의 한 간부가 470억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렇듯 잇따른 악재로 그룹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도 대대적인 인사가 불가피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또 환율 하락에 따라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그룹 등도 늦어도 내년 초까지 성과를 원칙으로 한 사장단과 임원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파’…내수부진-弱달러 기업들 초 긴축
대기업·금융권-인력 구조조정 불가피
현대차그룹 계열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로템 역시 최근 관리직 직원 20%를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로템은 조직의 효율성 제고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관리직 직원을 1천550명에서 1천200명으로 350명 감원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현대하이스코, INI스틸, 위아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나머지는 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템은 관리직 직원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향후 수주물량 확대에 대비하고 방만했던 관리조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업계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인상과 환차손이라는 악재를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삼호중공업도 4명의 임원에게 퇴직을 통보했다. 이들은 연말까지 근무 후 자리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도 인건비 축소를 위한 인력조정안을 검토중이다. 특히 올들어 실적이 미미했던 해양플랜트 부문 및 기계사업 부문의 사업축소를 검토하는 등 사업부문 개편안을 적극적으로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종합상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수익성이 적은 사업과 불필요한 자산 정리에 나서고 있어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SK네트웍스는 현재 40개인 해외 지사 및 법인을 15개로 줄이는 작업을 추진중이다. 이 회사는 늦어도 내년 말까지 청산작업을 끝내고 새롭게 해외 조직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삼성물산도 현재 추진중인 서초동 부지 매각 작업을 늦어도 내년 초까지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화학섬유업체들의 경우 최근 들어 활로모색을 위해 설비감축과 중국이전에 적극 나서면서 대대적인 인력감축에 나서고 있다.
중견 화학섬유회사인 휴비스는 최근 전주, 울산, 수원공장의 직원 2천여명 가운데 30%가량을 명예퇴직을 통해 감원키로 했다. 휴비스는 유휴 생산설비는 매각하거나 이전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무역은 지난 8월 중국 광둥성에 연산 6천톤 규모의 스판덱스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오는 2006년에는 500억~600억원 가량을 추가 투입해 생산설비를 연산 1만8천톤 규모까지 증설한다는 방침이다.
태광산업 역시 현재 중국 장쑤성 상숙시에 짓고 있는 연산 1만5천톤 규모의 스판덱스 공장을 올해 안에 완공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3년전부터 장섬유 등 사양산업 설비를 지속적으로 감축해 왔다. 또 최근 들어서는 물류비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하고 있다.
현대중, 임원 33명에게 퇴직권고안 통보
강정원 행장 “생산성 위해 구조조정 불가피”
금융권의 인력 감축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외환은행은 올해 안에 900여명을 퇴출시키기로 하고 입행한 지 5년 이상인 대리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신청자 수가 목표치에 미달하자 또다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은 올해초 외환카드 합병 당시 희망퇴직 신청인원이 기대치에 훨씬 못미치자 직장폐쇄와 정리해고 등의 강수를 통해 정규직원의 35%를 희망퇴직 시킨 바 있다. 대주주인 론스타의 이러한 전력을 감안할 때 2차 희망퇴직 결과에 따라 강제 정리해고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금융권은 전망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현재 강제 정리해고는 최대한 피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희망퇴직 신청이 저조할 경우 강제 정리해고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이럴 경우 노조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도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강정원 신임 국민은행장은 취임식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지는 않겠지만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강 행장은 “국민은행이 합병 이후 합병 효과를 낼 만한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시장의 지적이 있다”며 “1인당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강 행장은 “구조조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중지를 모아 합리적으로 하겠다”고 밝혀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강 행장은 과거 서울은행장 재임 당시 1천100여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한 경력이 있다.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국민은행의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국민은행이 지난 2001년 통합 이후 매년 500명 규모로 실시하고 있는 명예퇴직과 함께 계약만기가 되는 계약사원들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하고 있다.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증권업계도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실시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국내 57개 증권사 직원 가운데 2천여명 가까이 회사를 떠났다. 이에 따라 작년 말 1천624개에 이르던 본 지점 수가 9월말 현재 1천541개로 줄었다.
브릿지증권 굿모닝신한증권 등은 물론 최근 합병한 LG투자증권과 우리증권도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부국증권의 경우 미등기 임원 13명중 7명의 이사보를 해임시켰다.
부국증권은 이 인사와 관련, 회사 규모에 비해 비대해진 임원들의 수를 줄여 조직을 슬림화 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부국증권 노조는 이를 인력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원금융지주에 매각된 한투증권과 매각을 앞두고 있는 대투증권도 감원 추진설이 계속 나오고 있어 노조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은행의 방카슈랑스 영업으로 고전하고 있는 중 소형 보험사들도 지점 축소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감원 바람이 모든 산업계로 확산되고 있어 경기 위축에 따른 악순환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IMF 직후 대규모 해고 사태로 내수가 더 위축됐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의 인력 구조조정 역시 불황의 골이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외환위기 후에는 원화가치가 급락하는 등 해외여건이 호조를 보여 수출 경기라도 좋았지만 내년에는 달러화 약세에 따른 환율문제 등 모든 경제 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심각한 위기상황이 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같은 인력구조조정 바람이 수출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전자, 자동차업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전자, 자동차업계의 경우 아직은 인력구조조정 바람에서 어느 정도 비켜설 수 있었지만 내수가 지속적으로 침체되고 원-달러 환율하락으로 수출채산성이 악화돼 재고가 쌓여갈 경우 인력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서울 소재 제조업체 21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도 최대 노사 현안으로는 32.1%가 인력구조조정을 꼽아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의 경우 인원 감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노조 때문에 탄력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단체협상에서 ‘정규직 직원에 대해서는 노조와 협의 없이 경기 부진을 이유로 일방적 정리해고를 실시하지 못한다’고 명시해 인력 감축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기아자동차도 최근 내수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영업직을 생산직으로 전환 배치하는 방안을 시도했지만 노조의 반발로 계획 자체가 백지화되기도 했다.
정부 정책이 ‘경제 살리기’라는 방향으로 확실하게 나가지 않을 경우 기업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적 투자보다는 생산 및 인원 감축 등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올해는 각종 대내외 변수의 악화로 경영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기업이 많아 연말 정기인사가 ‘위기관리’와 ‘구조조정’에 맞춰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