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90일 넘긴 한전의료재단 한일병원 노사분쟁

식당 아줌마 울린 ‘무노조’ 경영…배후 따라가보니 범삼성가 무노조 경영이?

2012-03-31     권희진 기자

[매일일보=김경탁·권희진 기자] 한국전력공사(약칭 한전) 의료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도봉구의 유일한 종합병원 한일병원.

이곳에서 식당노조 설립에 대한 보복성 해고로 촉발된 전면 갈등이 어느덧 3개월째를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2일 시작된 해고자 복직 관련 노사협상은 한 달 간 7차례에 걸친 교섭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일병원 식당 조리원 노동자들은 근무환경의 지속적 악화에 반발해 지난해 7월 노조를 결성했고, 올해 1월1일부로 위탁계약업체가 기존 아워홈에서 CJ프레시웨이(이하 프레쉬웨이)로 바뀌면서 일자리마저 잃었다. 사태의 중심에는 단체급식 부문에서 시장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프레쉬웨이와 아워홈이 있고, 이들은 모두 ‘무노조경영’으로 악명 높은 범삼성계열 그룹의 일원이다. 프레쉬웨이는 아워홈으로부터 용역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 파업·해고 노동자들을 대체하기 위해 다수 인력을 고용했는데, 사회적 관심이 쏠리자 등 떠밀리듯 진행한 노사교섭에서 이 ‘대체인력’을 인질(?)로 내세웠다. “해고자를 복직시킬 경우 이들을 잘라야한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19명이었던 해고자 중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대열을 이탈하는 사람이 계속 생기면서 어느덧 남아있는 사람은 13명으로 줄어든 상태. 최근 교섭에서 프레쉬웨이는 이들 중 4명만 복직시키고 나머지는 다른 곳으로 취업을 알선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프레쉬웨이의 이러한 제안이 노조 약화와 파괴를 위한 유인책에 불과하다는 의심과 함께 전원 복직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고, 이에 프레쉬웨이는 한일병원 측에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노동환경 악화시킨 아워홈과 보복성 해고 들러리 선 CJ프레시웨이

대형 위탁급식업계 선두경쟁업체들…공통점은 ‘무노조’ 범삼성가

위탁 직후 고용한 ‘대체인력’을 인질로 내세운 프레쉬웨이

“해고자 전원 복직시키면 새로 고용한 사람들 잘라야한다”

한일병원 구내식당과 환자급식을 책임지던 식당 조리원들이 부당해고철회와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며 천막에서 농성투쟁을 한지 3월30일로 어느덧 90일째를 맞았다.

농성 60일째였던 지난 2월29일 한 60대 조리원이 삭발식을 가지면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여러 언론에 관련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90일째를 맞은 현재까지도 문제는 전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직영으로 식당을 운영하던 한일병원이 식당운영을 위탁으로 전환한 것은 지난 1999년이다. 이후 위탁운영을 맡았던 업체들(한화, 신세계)은 모두 식당 조리원 전원에 대한 고용승계를 별 탈 없이 이어갔다. 몇 십년을 일해도 매년 ‘도로 신입사원’이 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크게 갈등이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던 한일병원 노사관계에 크게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7년 8월 (주)아워홈이 위탁급식업체로 선정된 이후부터이다. 아워홈은 위탁계약 후 4년이 넘도록 임금은 한 번도 올려주지 않으면서 원래 3교대로 운영되던 근무체계를 2교대로 변경해 조리원들을 하루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근로에 내몰았으며, 업무용품조차 사주지 않아 조리원들이 사비로 해결하도록 했다. 결국 지난해 7월 노조를 결성한 식당 조리원들은 임금인상과 근속수당 지급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교섭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아워홈 측이 복수노조법의 맹점인 ‘교섭 대표’ 규정을 악용해 페이퍼노조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6개월 뒤인 올해 1월1일부로 한일병원과 계약한 급식 위탁 용역업체가 프레쉬웨이(실제 용역은 M&M푸드로 재하청)로 바뀌면서 조리원들은 일자리마저 잃었다. 이전까지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지속되던 전면 고용승계 조항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워홈 측은 한일병원에서 철수하면서 당시 조리원 노동자들에게 한일병원이 아닌 다른 사업장으로 갈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일병원을 자신의 직장으로 인식하고 오랜기간 함께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며 일해왔던 조리원들은 ‘형식상의 고용주’였을 뿐 아니라 최악의 악덕 고용주였던 아워홈의 전환배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아워홈에 사표를 제출한 후 한일병원 앞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그들의 ‘직장’은 한일병원이다

지난 1월 중순 <매일일보>이 한일병원 노사분쟁에 대해 심층 보도한 이후 여러 언론매체가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보도를 내보내고 유명 정치인들이 지원에 나서면서 한일병원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매일일보> 기사에서 한일병원 측은 “애초부터 아워홈과 고용승계 부분과 관련해 협의한 사실이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노조 측은 “한일병원과 아워홈은 우리에게 ‘노조를 결성하면 나중에 고용승계를 보장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밝혔다. 지난 2월29일 오후 한일병원 앞에서 열린 ‘한일병원 식당노동자 부당해고 철회와 고용승계쟁취를 위한 투쟁선포식’에서는 19년 근무 내내 결근 한 번 안 했다는 해고 노동자 고정화씨가 ‘눈물의 삭발식’을 가졌다. ‘눈물의 삭발식’ 소식은 여러 매체에 보도됐고, 이전까지 버티기로 일관하던 사측은 결국 이틀 뒤인 3월2일 등 떠밀리듯 첫 교섭에 나섰지만 3월27일까지 7번에 걸친 노사 교섭에도 불구하고 진전된 합의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노사 교섭을 지원하고 있는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박문순 위원장에 따르면 프레쉬웨이 측은 해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하겠다면서도 4명은 한일병원에서 근무하고 나머지 인원은 다른 사업장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제를 달았다고 한다. 이는 당초 아워홈이 제시했던 전원 타 사업장 배치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것일 수 있지만 한일병원이 자신의 직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몸바쳐 일해온 노조원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기는 마찬가지였다.이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해고된 식당조리원들은 대부분이 50대로 오랜 경력과 경험을 지니고 있는 분들로, 옮길 거였으면 진작 갈 수도 있었다”며, “단순히 돈 때문에, 일자리 때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싸울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최근 구인공고가 난 병원들 중에는 임금이나 근무환경이 한일병원보다 나은 곳도 있지만 조리원들은 10-30년 간 일하면서도 계속 고용승계가 되었고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투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제안을 거부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만약 프레쉬웨이 측의 입장대로 일부만 고용하는데 동조해서 흩어질 경우 노조는 보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며, “노조를 약화시켜서 받아주려는 것은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우린 책임 없다?

노조의 전원 고용승계 요구에 대해 한일병원 측은 “조리원들과 아워홈이 직접고용형태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한일병원 소속이 아니”라면서도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이들의 고용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일병원 관계자는 특히 “프레쉬웨이에서 최대 4명까지는 고용을 보장하기로 했고 9명은 다른 사업장으로 취업을 알선해준다고 해도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노조의 비타협적인 태도가 문제라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프레쉬웨이 측 역시 “우리가 한일병원과 위탁업체 계약을 체결할 당시 아워홈 소속 식당 조리원들에 대한 고용승계와 관련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며 “자료로 증명할 수도 있다”는 말로 프레쉬웨이에는 고용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아워홈 이전까지 용역업체 변경과정에 전원 고용승계가 이어져오면서 19년에서 30년에 달하는 장기근속자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리원들의 고용 문제가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한일병원과 프레쉬웨이의 공통된 입장은 다소 무책임해 보인다.

“프레쉬웨이, 회장님 말씀 좀 들어라”

노조는 3월28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CJ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CJ그룹 본사는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 계열사인 CJ프레쉬웨이가 그 반만 닮아 주면 좋겠다“고 소리쳤다.

이들의 지적처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연말 “불황일수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높이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기업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면서 계약직 600명 전원 정규직 전환과 함께 올해 사상 최대인 정규직 7600명 채용을 공고한 바 있다. 이날 노조는 “1월1일 한일병원 위탁급식이 아워홈에서 CJ프레쉬웨이로 전환되면서 적게는 수년 많게는 31년간 일했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났다”며 “CJ프레쉬웨이는 CJ그룹의 이념에 역행하고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고 성토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특히 “우리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와 제 정당 및 시민사회단체는 고용승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CJ계열사 및 매장에서 1인시위와 제품 불매운동 등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프레쉬웨이 “철수하겠다”

이날 기자회견의 여파인지, 프레시웨이는 결국 한일병원 측에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프레쉬웨이 홍보팀 관계자는 “도저히 타협점을 찾지 못해 28일 한일병원에서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고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게 우리로써는 원만한 해결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며, “해고 노동자들의 고용문제도 해결하고 단계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후임업체를 물색중”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철수’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협상 과정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아워홈 소속이었던 조리원들은 사업장 근거리 출퇴근 거부, 임금 문제 등 여타의 이유로 자발적 퇴사를 했지만 이들의 고용승계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에 최대 4명까지는 사정을 감안해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제안도 해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노조 측에 ‘우리 쪽에 결원이 생기면 차후 인원을 더 고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노조는 전원고용승계만을 주장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라 입장이 난처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노조 측의 전원 고용승계 요구로 오히려 현재 우리가 고용한 조리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며 ”해고 조리원들의 전원고용승계를 위해서 기존의 조리원을 해고할 수도 없지 않느냐. 우리 입장에선 이들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초 프레쉬웨이가 한일병원에 처음 들어가는 과정에 기존 해고자들에 대한 고용승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대체인력을 뽑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주장은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더욱이 최종 철수 입장을 밝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원 고용승계 거부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기존 조리원 고용에 대한 보호 책임”을 어떤식으로 이어가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시민 “한일병원 절대 잊지 않을 것”

한편 지난 3월16일 오후 한일병원 앞에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가 주최한 ‘한일병원 식당노동자 부당해고 철회와 고용승계 쟁취를 위한 총력 결의대회’ 참가자들은 “해고는 한 사람의 운명뿐만 아니라 한 가정을 파탄 내버린 살인행위”라고 외쳤다.

총력결의대회에서 민노총 관계자는 “수십년간 환자들의 건강식을 준비했던 노련하고 경험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는 단순한 경제적 논리로 해고했다”며 “이것은 말이 해고지 어머님들의 인생을 되돌릴 수 없는 파멸로 몰아간 범죄 행위”라고 규탄했다. 이에 앞서 2월8일 밤 한일병원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한국전력은 공기업이고 한일병원은 한전 소속 의료재단으로, 사실상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유시민 대표는 “그런 병원이 환자들 밥 차려주며 고생하던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고 해고하다니 이럴 수 있냐”며, “통합진보당은 뒤끝있는 정당이다.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면 한일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