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단순 영토확장용 M&A 하지 않겠다"
2013-04-05 장건우 기자
박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M&A 전문가다. 지난 10여 년간 두산그룹이 소비재 중심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탈바꿈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42회의 M&A를 총괄 지휘했다. 그가 M&A에 쓴 돈만 9조원에 이른다.
현재 두산그룹의 주력계열사가 된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등이 박 회장의 작품이다. 그런 박 회장이 예상과 달리 대형 M&A를 지양하고 향후 인수합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지금 경기위축기라 매물로 나온 기업들의 몸값이 싸 인수에 유리하다지만 인수해도 성장세를 구현할 자신이 없다"며 "그룹이 해야 할 M&A와 계열사에 필요한 M&A 리스트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경기가 완만한 회복세여서 가격도 많이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룹 내부의 인수합병 기준에 대해서는 "현재 사업을 더 강화하기 위한 것과 성장을 위해 추가로 확보해야 할 것 두 가지가 있다"며 "M&A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제품이나 기술, 네트워크 등에 필요한 기업을 시장에서 인정하는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사들여 경영의 구조적 스피드를 높이는 수단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술개발에 30년 걸린다면 그 기술을 가진 회사를 사들이는 게 더 합리적인 방법이다"며 "새로운 업을 추구하는 경우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지만 계열사들이 모두 상장사여서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7년 인수한 미국 건설장비 업체 밥캣에 대해서는 "흑자가 확대되고 있어 올해 2000억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말 인수 당시 금융권에서 조달한 차입금 22억9000만 달러에 대한 리파이낸싱(재조달)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최근에는 폐쇄됐던 공장이 미국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재가동하기도 했다.
취임 일성으로 언급한 '따뜻한 성과주의'에 대해서는 "따듯함과 성과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개인과 조직의 평가를 통해 하위를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육성과 개발로 바라보는 것이다"며 "우리나라에서 커온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이다. 평가를 통해 모자라는 역량을 채우는, 따뜻한 성과주의를 지향할 때 성과가 더 좋다"고 말했다.
다만 박 회장은 따뜻한 성과주의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그는 "첫 번째가 최고위층부터 전력을 다해 성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뜻함만으로 성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며 "두 번째는 제품과 기술력이 탁월해야 한다. 경쟁과 시장으로부터 휘둘리지 않아야 따뜻한 성과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그룹의 오랜 경영이념인 '인화'(人和)에 대해 "조직이 인화하려면 지연, 혈연, 학연에 매이지 않고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약속을 지키는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조직 안에서 신뢰가 쌓여 실수를 인정할 수 있게 만들고 약속을 지키게 하려면 이 점을 조직의 룰에 넣어서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팀웍과 인화가 이뤄진다. 그 속에서 소통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운영방식이다. 그룹 내에서 성역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SNS를 하게 된 것은 기업의 철학과는 관계가 없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바빠 그렇지 못하다. 해외를 자주 다니다보니 시차 때문에 메신저보다 SNS가 편했다. 트위터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재계의 대표적인 파워 트위터리안(트위터 사용자)으로도 불린다. 팔로어만 13만 명이 넘는다. 각종 정보기술(IT) 기기를 앞서 구입하는 얼리어답터로도 유명하다. 두산그룹의 대표적인 기업이미지 광고 카피인 '사람이 미래다'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웃어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트위터로 사람들을 웃기기 시작했더니 팔로워가 늘어났다. 조금 더 웃겼더니 더 늘어났다. 요즘은 거의 준 개그맨처럼 됐다. 요즘은 바쁘다보니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 잘 안하고 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신성장동력 발굴에 대해서는 "지분만으로 참여하지는 않는다. 신성장동력은 성장 잠재력이 있어야 하고 인수했을 때 잘 할 수 있느냐와 인수가 얼마나 쉬운지를 본다"며 "하지만 인적자산이 전혀 연계가 안 되는 분야에서는 잘 할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아이폰을 좋아한다 해도 애플 같은 업종에서 되겠느냐?"고 답했다.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불안하지 않고 비교적 평안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해 3대 경영 리스크로 정치·유로존·유가로 분석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3가지 모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유로존은 스페인이 문제인데 그리스라는 전철이 있고 독일도 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향후 경기 전망으로는 "IMF 이전 처럼 급속한 경제발전은 힘들겠지만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고 중국도 경착륙 우려가 줄어들고 연착륙으로 가고 있고 미국도 회복세기 때문에 점진적인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기업문화에 대한 의견도 언급했다. 그는 "신입사원이 늘고 외국계 직원이 급격히 증가해 기업문화를 단단히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7년간 '두산 웨이'라는 철학을 만들었다"며 "강력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 문화를 구축해 하나의 컨센서스를 이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고맙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친환경 사업에 대해서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장비 효율 강화 분야와 대체 에너지, 오염원을 잡아내는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그룹이 116년을 이어온 원동력에 대해서는 "환경 적응력이다. 이를 기회주의적 이라 할 수 있지만 장사꾼으로 원칙을 지키는 환경 적응력은 다르다"며 "IMF때도 공적자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우직하게 선대로부터 받은 것을 다 처분해 살아남았다. 그런 중에도 기업가로서 원칙을 지켜왔던 것이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두산건설에 대해서는 "주택 경기가 엉망이 돼서 고생을 했다. 작년에 증자도 했다"며 "올해 남은 프로젝트를 통해 부담을 줄이고 있다. 두산건설은 요즘 초미의 관심사가 아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