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대신 ‘점거’선택한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 빨랫줄로 서로 몸 묶고 3일째 로비 점거농성
[매일일보=권희진 기자] 한일병원 측에 ‘직접고용’을 외치며 100일 넘게 투쟁을 벌여온 한일병원 식당 해고 조리원 노조원들이 결국 4.11 총선 당일 투표도 포기하고 병원 점거농성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한일병원에 새로 취임한 김대환 병원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오후부터 연좌농성에 돌입한 노동자들은 빨랫줄로 서로의 몸을 묶고 고용승계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점거농성에 돌입한 조리원은 “투표를 포기하면서까지 농성을 하는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으며 “투표는 못했지만 이번 총선으로 인간 대접을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일병원, 환자 가족들마저 출입 통제
점거농성 이틀째이자 4.11 총선 선거 당일인 11일 병원 측은 식당노동자들의 농성장 추가 합류를 막기 위해 본관 출입구를 막고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했으며 이 과정에서 입원 환자와 가족들마저 입원명부를 확인한 후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하고 있어 시민들의 불만을 낳았다.
또 병원 쪽은 이날 오전부터 농성장에 추가로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응급실을 뺀 모든 입구를 잠그고 출입을 통제하는 한편, 환자와 환자 보호자, 심지어 취재원의 출입까지 통제한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지난 해 말 한일병원 식당 조리원 노동자들은 근무환경의 열악성에 반발해 지난해 7월 노조를 결성했고, 올해 1월1일부로 위탁계약업체가 기존 아워홈에서 CJ프레시웨이(이하 프레쉬웨이)로 바뀌면서 이들은 전에 없던 고용승계에 제동이 걸렸다.
직영으로 식당을 운영하던 한일병원은 지난 1999년부터 식당운영을 위탁으로 전환했지만 식당 조리원 전원에 대한 고용승계는 별 탈 없이 이어져왔다.
때문에 노조원들은 노조결성에 대한 보복성 해임으로 간주하고 현재까지도 한일병원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100일 넘게 천막농성과 중식집회, 1인 시위, 삭발투쟁 등을 전개하며 부당해고 철회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직접고용’ 요구에도 '모르쇠' 뿐인 한일병원
한일병원 측은 “프레시웨이가 4명을 우선 고용하고 결원이 발생하면 추가 고용하겠다고 했지만 노조 쪽에서 전원 고용승계를 주장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용역업체와 직원 간의 문제이므로 병원이 고용승계에 관련할 입장은 아니”란 주장만을 거듭 펼치는 상황이다.
프레시웨이 측도 “4명을 우선 고용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업장으로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했지만 노조원들이 전원고용승계만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하다”며 오히려 난색을 표하는 입장이다.
노조, ‘한일병원’이어야만 하는 이유
전원고용승계만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주장은 '무리하다'는 입장과 관련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박문순 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해고된 식당조리원들은 대부분이 50대로 오랜 경력과 경험을 지니고 있는 분들로, 옮길 거였으면 진작 갈 수도 있었다”며 “단순히 돈 때문에, 일자리 때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싸울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이어 “최근 구인공고가 난 병원들 중에는 임금이나 근무환경이 한일병원보다 나은 곳도 있지만 조리원들은 10-30년 간 일하면서도 계속 고용승계가 되었고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투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또 “제안을 거부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만약 프레쉬웨이 측의 입장대로 일부만 고용하는데 동조해서 흩어질 경우 노조는 보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며, “노조를 약화시켜서 받아주려는 것은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CJ프레시웨이 ‘철수’ … 결국 고용승계 책임은 ‘한일병원’
CJ프레시웨이는 지난 3월 29일 돌연 한일병원 식당 용역 업무에서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CJ가 한일병원에서 철수한다고 입장을 전달한 이상, 해고된 식당 조리원들의 고용승계에 대한 책임은 결국 한일병원으로 돌아오게 됐다.
노조는 “소속 용역업체인 CJ프레시웨이가 철수를 선언한 이상 병원에서 고용승계를 책임져야 한다"며 "병원이 직접 고용에 나설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CJ가 철수한다고 밝힌 이상 이번에는 한일병원이 고용승계에 대한 확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일병원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재단으로 식당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를 당하면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조차 위반했다는 비난에 시달려 온 바 있다.
본지가 올해 초 이 문제와 관련 취재했을 당시에도 한전은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한편, 이번 4.11 총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서울 노원병의 통합진보당 노회찬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된 후 첫 일정으로 12일 새벽 1시에 해고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일병원을 찾았으며 이정희 대표도 이날 해고노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 관심을 모았다.
노회찬 당선자는 “한일병원 고용승계 문제 해결에 통합진보당 차원에서 나서겠다”고 말하는 한편 “해고가 살인임이 이미 입증되고 있는 현실에서 특히 해고와 차별로부터 무방비 상태인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와 정규직 전환은 ‘노동자가 살기 좋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제1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한일병원 식당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병원 측에 직접 고용하라, 노조를 인정하라고 하는 요구는 정당하다”고 해고 노동자들과의 연대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한일병원 점거농성 트위터 상에도 ‘후끈’
점거농성이 벌어진 지 이틀째였던 11일 트위터 상에도 관심은 뜨거웠다.
트위터에는 ‘한일병원 연행자 부상자 속출, 조합원 고립, 위험한 상황입니다. 긴급 연대바랍니다’,‘한일병원 노동자들을 더욱 고립시키기 위해 정문이 아닌 왼쪽 문 구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연대바랍니다. 모든 음식과 생필품이 끊긴채 어렵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언제 침탈당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한일병원에서는 노동자가 해고당하고 목에 밧줄을 감고, 폭행당해 실려 갔다. 그리고 지금 경찰에 의해 고립돼 있다.’,‘종합병원이라면서 응급실까지도 방패를 든 전경과 정보과들이 틀어막고 병원 입구를 엠블런스 두 대가 막아서버렸습니다. 링거를 꽂은 환자도 들어갈 수 없어 한참을 서 있어야 했네요’
‘한일병원이 기자의 취재도 막네요. 경비와 직원 덕분에 응급실 쪽 출입구 안쪽에 갇혀 있습니다. 병원 측 지시라네요. 담당자 불러 달래도 요지부동’,‘오늘 로비 점거 농성 투쟁에 들어간 한일병원 문제에 대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밧줄로 몸을 묶고 병원 직원들에게 욕설을 들으면서 지금도 외롭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정희대표가 방문하고 돌아간 직후 구사대가 난입해서 연대온 사람들을 전원 끌어냈습니다. 몸싸움 중 조합원이 다쳤고 여성노동자들이 완전 고립되었습니다. 대한문에 있던 진보신당 당원들이 결의하고 이동합니다! 부디 알려 주세요’ 등 많은 이들이 긴박했던 상황을 트위터를 통해 전파하는 한편, 한일병원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에 뜨거운 지지와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