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아파트 동부건설, 결국 ‘백기’ 들었나?
[단독] 발암물질 검출 인정?… 입주민과 보상 합의 추진
[매일일보=도기천 기자] 최근 시공한 아파트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돼 충격을 던져 준 동부건설이 당시 피해 입주민의 아파트를 대대적으로 보수한 뒤 재분양에 나선 사실이 <매일일보> 취재 결과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동부건설은 지난해 8월 발암물질 발견 사실을 알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경기도 남양주 진접센트레빌 입주민 한영은(39)씨의 해당 세대를 부동산업체에 위탁해 매각(재분양)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씨의 밀린 관리비와 한씨가 현재 거주 중인 집의 월세까지 부담키로 합의하는 한편 한씨의 병원치료비, 대출이자 등 피해액 산정을 위해 이달 1일 국토해양부 하자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한마디로 한씨의 건설사를 상대로한 외롭고도 오랜 싸움 앞에 대형 건설사가 ‘조건부 백기’를 든 것이다. 이번 사태는 건설사와 하자 분쟁 중인 전국 각지의 아파트 입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매일일보>이 이번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동부센트레빌 발암물질 검출 세대, 국토부에 보상조정 신청
피해자 한영은씨, 정신·신체적 피해로 병원신세… 결국 ‘파산’
동부건설, 친환경 이미지 ‘몰락’… 주민들 집단 하자소송 추진
입주민과 환경단체 연대, ‘동부건설 당진화력’ 반대…정치쟁점 부상
한씨와 동부건설 간의 오랜 악연은 3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씨는 지난 2007년 동부건설이 친환경 아파트라며 대대적으로 광고한 남양주 동부센트레빌 아파트 156.9m2(47평)를 분양 받았다.
노부모와 아이를 생각해 친환경이미지의 동부센트레빌을 선택했지만 이 순간부터 한씨의 운명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2009년 12월 입주한 한씨는 집안 전체에 결로가 생기고, 벽 갈라짐, 곰팡이 등으로 도저히 거주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확인했다. 한씨는 하자 보수해주겠다는 동부건설의 말을 믿고 거주했지만 결국 입주 4개월만에 집을 나와야 했다.
벽 틈새로 비가 새고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노부모의 천식이 심해지고 자녀의 아토피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도저히 더 이상 거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결국 한씨는 입주 4개월만인 2010년 4월 동부건설의 주선으로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미분양된 아파트로 임시 거처를 옮겼고 동부측은 한씨 세대에 대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하자 보수공사가 끝난 뒤에도 심한 악취가 나고 머리가 아파 한씨는 도저히 입주할 수 없다고 판단,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동부측은 보수공사가 끝나고 1년 후인 지난해 5월 한씨를 비롯한 일부 입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씨 세대에 대한 ‘공기질 측정’을 실시했다.
이후 동부측은 한씨에게 퇴거명령을 내렸다. 공기질 검사결과 ‘한씨 세대가 이상이 없다’며 동부건설 소유인 임시 거처에서 나가줄 것을 종용한 것. 하지만 퇴거 결정의 근거인 검사보고서는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한씨 가족은 그해 8월 월80만원짜리 월세집을 얻어 또다시 이사했다. 불과 8개월만에 두 번 씩이나 이사를 한 것이다.
이후에도 동부건설이 “최종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며 공기질 측정 결과를 공개하지 않자, 한씨는 결국 지난해 8월 자비를 들여 환경부에 의뢰해 분양받은 아파트 내부의 유해물질을 측정했다. 환경부가 한국환경공단과 함께 일반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해온 ‘친환경 건강도우미 컨설팅서비스(일명 그린 코디)’를 활용한 것.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악취와 오존을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과 발암물질로 알려진 '프롬알데하이드'가 기준치를 5배 이상 훌쩍 넘기며 '우려' 판정을 받은 것. 우려는 양호·보통·우려로 나눠진 평가등급 중 가장 심각한 수준임을 뜻하는 등급이다.
거실 중앙에서는 또다른 유해물질인 휘발성유기화합물이 기준치(400㎍/㎥)보다 4.5배 많은 1782.7㎍/㎥이 검출됐다.
환경부는 한씨 집에 대해 “점검결과 휘발성유기화합물, 폼알데하이드가 기준을 초과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총평했다. 하지만 동부건설은 한씨 집 등에 인체유해 물질로 알려진 '에폭시' 시공으로만 하자보수를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동부 측은 “하자보수를 마친 뒤에도 한씨가 입주하지 않아 장기간 환기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부 유해물질이 초과 검출됐다”고 해명했다.
주민들 환경단체와 연대 “동부 국책사업 참여 반대”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이 집단 대응에 나섰다. 한씨처럼 동부건설을 상대로 하자 보수를 요구한 세대가 수백가구에 달했고, 이중 누수, 유해물질 등 심각한 하자가 발생한 1백여 세대에 대해 하자 보수공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용 시설도 온통 하자 투성이였다. 3년차 아파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파트 외벽 곳곳이 갈라졌고, 배관 수도시설도 문제가 생겨 동부건설이 친환경임을 자랑하며 내세운 단지 내 실개천마저 말라 버렸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대표적 하자는 값싼 자재의 사용 등 자재 변경, 층간 소음문제, 바닥 들뜸, 시설물오작동, 타일파손, 규격미달 제품 시공, 주차장의 균열로 인한 누수 등이다.
현재 주민들은 하자대책위를 구성해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며, 일부 세대는 이미 개별적으로 소송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3월말에는 관할 수서경찰서에 ‘부실시공원인규명을 위한 진정서’를 제출했으며, 지난달 23일에는 한씨와 입주민 탁모씨 등이 피해규모를 산출해 동부건설을 상대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진정서와 내용증명에는 시공에 부적절한 설계, 시방서와 실제시공의 불일치, 자재 규격과 성능미달, 시공정밀성 부족, 현장여건에 부적절한 시공, 구조결함, 관리감독 소홀, 업무상배임, 사유재산 회손, 친환경 등 허위광고, 부당이득 등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됐다.
더나가 한씨를 비롯한 일부 입주민들은 최근까지도 동부건설에 대한 항의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동부건설 본사를 비롯, 이순병 동부건설 대표이사, 윤대근 동부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릴레이식으로 1인시위를 벌였다.
특히 주민들은 동부건설과 관련된 기관들을 상대로 한 항의시위도 펼치고 있어 ‘동부 사태’가 정치쟁점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 3월23일 지역 환경단체 등과 연대해 동부그룹 본사 앞에서 ‘양심없는 동부건설이 당진화력발전소나 KTX 등 대형 국책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동부의 공공사업진출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씨 등은 관할 지자체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 사태 추이에 따라 사회문제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용승인권자가 관할 지자체인만큼 발암물질과 하자투성이인 아파트를 사용승인 해준 것과 수차례 민원에도 무성의하게 대응(직무유기)한데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피해자 한씨, 5억원대 보상청구
이처럼 사태가 걷잡을 수없이 악화되자 최근 동부건설측은 한씨 등을 상대로 피해액 산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발암물질이 다량 검출된 한씨의 집은 ‘보수 후 재판매’하기로 지난달 결정했다. 건설사가 이미 분양된 세대를 다시 매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또 객관적인 피해액 산출을 위해 이달 1일 한씨와 함께 국토해양부 산하 하자분쟁심사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한씨는 분양금 3억7천여만원을 비롯, 취등록세, 등기비용, 대출이자, 병원치료비 등 5억여원을 피해액으로 신청한 상태다. 한씨는 곰팡이로 인한 천식을 비롯, 동부건설과의 오랜 갈등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적 피해로 인해 현재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더구나 그동안 경제활동을 전혀하지 못해 월세와 관리비, 대출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는 등 빚더미에 올라 최근 파산신청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동부건설과 한씨가 최종 합의에 이를 지는 의문이다.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로 아파트가격이 입주 때보다 다소 낮아진 상태인데다, 발암 아파트로 소문나면서 찾는 발길이 끊겼기 때문에 한씨 세대의 재분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동부건설은 한씨에게 합의 금액과 매각(한씨 세대) 기한을 정하지 않은 채 ‘아파트 키’를 넘겨받은 상태다. 한씨가 이행각서를 요구했지만 동부측은 끝까지 이를 거부한 채 구두 약속으로 일관했다. 한씨의 사례가 하자보상을 요구 중인 다른 입주민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에 합의각서를 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부건설측은 국토부의 조정 권고가 나올 때까지 현재 한씨가 거주하고 있는 빌라의 월세를 대신 내주기로 했으며, 그동안 밀린 관리비 300여만원도 동부건설이 책임지기로 하는 등 성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건설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시세를 감안할때 한씨 세대가 원래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각(재분양)될 것으로 예상되며, 국토부의 조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한씨 측과의 보상 합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씨의 딱한 사정을 배려해 내린 조치였다”고 전했다.
하자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한씨 집 열쇠를 이제야 넘겨받았기 때문에 검사를 진행 중이며, 하자가 발견될 부분은 철저히 보수해서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씨는 <매일일보>에 “환경부에서 검사한 결과가 발암물질로 나왔는데도 과거 동부건설측은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나를 악성민원인으로 내몰았다. 지난 3년간의 정신적 물질적 고통으로 심신이 망가졌고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에 이르렀다”고 하소연했다. 한씨는 “그나마 보상합의의 실마리를 찾은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있다. 피끓는 심정으로 동부를 한번 더 믿으며 합의가 잘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동부건설이 경기 남양주에 지은 동부센트레빌은 1681가구의 대단지로 전용면적 기준 114~230㎡의 중대형으로 구성됐다. 완공 후인 2009년 12월에도 한국경제TV와 국토해양부에서 선정하는 ‘대한민국 대표아파트’에 이름을 올렸고, 2010년 7월에는 매일경제에서 주최하는 ‘살기좋은 아파트’ 최우수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탔지만 하자투성이로 얼룩진 아파트로 소문이 나면서 현재까지도 60여 세대가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