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치범 수용소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김일성전용기 비행사, 김정일 동창도 입바른 소리만 했다하면…

2013-05-04     김창식 기자
[매일일보 김창식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 중이거나 수감된 적이 있는 278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인권위는 4일 북한 당국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를 소개한 '북한인권침해 사례집'을 발간했다. 지난해 3월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개소한 뒤 1년간 탈북자 등으로부터 신고 받은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인권침해 ▲구금시설인 교화소에서의 인권침해 ▲기타 구금시설에서의 인권침해 ▲자국민 보호 및 인도주의적 사안과 관련된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에 대한 인권침해 등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사례집에 수록된 내용은 북한이탈주민과 이산가족, 납북자·국군포로 가족 등 북한 인권과 관련한 당사자들의 진술을 국제인권기준 등이 정한 체계에 따라 정리한 것”이라며 “향후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및 교육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디.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은 누구?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명단도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심철호 체신상(정보통신부 장관에 해당)과 안창남 전 중앙인민위원회 법무부장(법무부 장관에 해당) 등 고위급 인사들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철호는 체신성 부상을 지내던 지난 2001년 보위부에 “간첩도 못 잡으면서 왜 자꾸 도청만 하느냐”고 말했다가 ‘괘씸죄’로 수감됐다. 심철호는 2003년 퇴소한 뒤 중앙정치무대에 복귀해 체신상에 기용됐으며,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장의위원회 명단에 220번째로 거명될 정도로 김정은의 신뢰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창남은 중앙인민위원회 법무부장을 지내던 1999년 화교들과 거래하다 보위사령부에 적발돼 수감됐다. 김일성 전용기 비행사 김형락은 1974년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을 추종한 죄로, 김정일의 김일성대학 동창생 홍순호 노동당 군사부 과장은 1986년 김정일의 믿음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숙청됐다. 윤양권 전 프랑스 주재 무역참사는 프랑스에서 한국제 생활용품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명호 국가보위부 재러시아 임업대표부 정치부장은 러시아에서 뇌물을 많이 받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언론인 중에서는 차광호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김정일이 백성들의 생활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우상화만 한다”고 말했다가 체포됐고, 김경천 조선중앙 방송위원회 촬영기자는 “인민들의 참상에는 안중에도 없고 김정일의 우상화만 한다”고 하다가 붙잡혔다.

구금시설 인권 침해 실태 수록

인권위는 지난 1년간 834명으로부터 북한 정치범 수용소, 교화소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침해 사례를 신고받아 그 중 60건을 이번 사례집에 담았다.

신고인 A씨(여)는 지난 2002년 만삭의 몸으로 탈북을 시도하다 국경경비대에 발각됐다. 경비대원은 소총으로 A씨의 배를 내리쳤고 A씨는 의식을 잃었다. A씨는 깨어나서도 진땀을 흘리고 진통을 느끼다 다음날 사산했다. 사망한 태아의 머리부터 한쪽 팔, 상반신 반쪽은 피멍으로 시커먼 상태였다. 신고인 B씨(여)는 북한을 탈출했다가 붙잡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증산 교화소에 수감됐다. 교화소에서 B씨는 수시로 구타를 당했고 마실 물이 없어 강제노동을 할 때 도랑물을 마셨다. B씨는 촌충 등 기생충에 감염돼 탈북 후 12번 적출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도 손발이 저리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신고인 C씨(여)는 1975년부터 2001년까지 북창 18호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 당시 보위부 지도원은 수시로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게 한 뒤 입 안에 가래침을 뱉었다.

지도원은 가래침을 삼키면 때리지 않았지만 B씨가 조금이라도 찡그리거나 구역질을 하면 온갖 구타를 가했다.

국군 포로, 납북자, 이산가족 인권 침해도 공개

사례집은 국군 포로와 납북자, 이산가족들이 당한 인권 침해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1970년 어선을 타고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하다 납북된 D씨는 6개월 이상 조사를 받고 북한에 강제 억류됐다. 북한 당국은 D씨를 간첩으로 양성하기 위해 중앙당 정치학교에 입학시켜 사격, 폭파, 침투, 살상기술을 가르쳤다. D씨는 하루 빨리 남파된 뒤 자수하겠다는 생각으로 훈련을 견뎌냈지만 사상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남파간첩에서 제외됐다. 북한 사회에 배치된 D씨는 1995년 배급이 중단된 뒤부터 많은 사람들이 인육을 먹거나 판 죄로 공개처형될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했다고 증언했다.

D씨는 1998년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전쟁 이후 강제 납북된 피해자 500여명 중 최초로 탈북에 성공한 사례다. 하지만 남한에 남겨졌던 D씨의 어린 아들은 실종됐고 가족들도 용공분자로 몰려 여러 불이익을 당했다.

북한 정권 인권 유린 처벌근거 마련

인권위는 향후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열고 사례집 발간을 준비해 왔다. 사례집에는 가해자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권위 비공개 내부 자료에는 사례자의 이름까지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인권위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을 경고함으로써 북한이 인권 침해를 자제하게 하고 북한 내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태훈 인권위 북한인권특별위원장은 “이미 서독은 1961년 잘쯔기터에 중앙기록보존소를 설치해 통일 시점까지 동독에서 자행되던 인권 침해 상황을 기록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독립적이고 준국제기구의 성격을 가진 인권위가 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국제기구에 신빙성 있는 자료를 제공할 수 있게 돼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획기적 방안이 마련된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