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막장까지 간 ‘모럴해저드’ 대책은 [긴급진단]

사고뭉치에겐 매가 약?

2013-05-14     권희진 기자

[매일일보 권희진 기자] 공기업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모럴해저드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전 안전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수원 직원들이 줄줄이 납품 비리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수원은 올해 초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와 관련 이를 은폐하고자 했던 사실이 드러나 국민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고개 숙여도 모자랄 판에 한수원은 공식 사과는 커녕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안일한 대처로 사태를 적당히 무마시키려는 자세를 보였다.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 한수원을 <매일일보>이 긴급진단해봤다. 

반복되는 원전 사고에도 “문제없다” 일관하는 한수원
끊임없이 발생하는 비리에도 정신 못차리는 한수원

지난 해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일본 열도는 아비귀환이었다.  이 사고는 당시 우리나라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높였고 우리나라 역시 '원전 안전성'을 돌아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한수원은  원전에 대한 불안감과 관련해 “안전에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국민을 안심시켰지만 지난 2월 고리원전 1호기에서 발생한 정전사고를 은폐하려 한 사실이 적발돼 빈축을 샀다.

원전사고 은폐 한수원 “문제없다”

한수원은 정전사고와 관련 “상부에 즉시 보고하지 않은 것은 경황이 없어서였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사고수습 직후 간부들이 회의를 열어 사실을 상부에 보고 하지 않기로 미리 모의했다는 정황이 밝혀져 빈축을 샀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 및 일각에서는 원전사고를 고의로 은폐한 한수원을 향해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한수원의 막나가는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 고리 원전과 영광 원전 등에 납품되는 정품 부품 대신 ‘짝퉁’ 부품을 사용한 정황이 검찰에 적발된 것. 뿐만 아니라 이 짝퉁 부품으로 고리원전에 납품계약을 따낸 뒤 부품업체로부터 수 천 만원의 뇌물까지 주고 받은 정황이 포착됐으며, 더욱이 한수원 내부 비리를 적발해야 할 감사원 직원까지 현재 뇌물수수 의혹으로 자체 조사를 받고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납품비리와 관련해 연루된 한수원 직원은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 구설에 올랐다.

연이은 사고와 관련해 한수원 홍보실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통화에서 “지경부에서도 발표를 내 놓지 않은 상태고 감사원에서도 조사 중”이라며 “현재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섣불리 대책을 내 놓긴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바람 잘날 없는 한수원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원전사고 은폐와 납품비리 사건 외에도 한수원에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가 뒤늦게 알려지거나 축소된 일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지난해 울진 원전의 발전 정지 사고는 작업자의 실수로 일어났으며, 올해 1월에는 월성 원전 1호기의 발전이 냉각재 펌프 고장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정지됐다. 2007년에는 고리원전 1호 사고로 펌프 및 배관 내에 남아있던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유출, 작업자 2명이 화상을 입었을 때도 한수원 측은 “단순한 사고”라며 해명한 바 있다. 실제로 경주핵안전연대가 KINS의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에 고시된 원전사고, 고장 현황을 참고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영광 원전 5호기에서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물 약 3,500여톤이 바다로 유출됐지만 사고 원인 파악부터 원자로를 정지시킨 건 1주일이 지난 뒤였다. 물론 한수원 측은 이 때도 즉각 알리지 않고, 훨씬 전인 1996년 영광원전 2호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했다. 이외에도 2007년 6월 화재 사건과 폐연료봉 운반 사태, 1997년 7월 핵폐기물 밀반출 사건, 1996년 7월 방사능 오염 토양 무단 매립사건, 1995년 6월 방사능 누출 사건 등이 한수원의 사건사고는 이루 셀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근 한수원 내부에서 벌어진 비리 사건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녹슨 채 방치된 터빈밸브작동기의 부품을 빼돌려 세척·도색해 다시 고리원전에 납품하는 등의 비리가 있었고, 영광원전에서도 발전소 탱크 안 보랭재 자재 납품비리도 일어났다. 이에 한 원전 전문가는 “검찰 조사에서 납품비리가 확인됐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만연한 비리 중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바 있다.

이런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이 반복되는 사고에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한 것은 사태를 적당히 무마시키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여야당·시민단체 ‘지탄’ 한 목소리

이번 납품비리 사건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면서 정·재계와 시민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한수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2일 논평에서 “이번 (납품비리)사건은 단순 비리ㆍ비위 사건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범죄행위”라며 "한수원은 부패의 고리를 끊고 조직을 쇄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민주통합당도 3월과 4월 논평을 내고 "한심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한수원식의 무사안일하고 한가한 대응을 뛰어넘어 국민안전 우선의 원전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반핵시민단체 연합 등 시민단체는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주장하는 한편 “중고부품에다 가짜부품까지 사용한 한수원은 원전을 관리할 자격과 능력이 없다”고 성토했으며, 여성단체들도 성명서를 내고 “고리원전 1호기 가동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10일 홍석우 지식경제부장관은 숙명여대에서 열린 ‘에너지와 원자력 토크콘서트’에 초청된 자리에서 한수원의 전면적 조직개편을 시사해 주목을 받았다. 초강도 감사활동은 물론 10월 무렵엔 종합비리대책이 강구하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한수원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