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색 드러내나?…“비판 받은 프로 폐지 검토”
이병순 KBS 신임 사장, 권력감시 프로 폐지
2009-08-28 서태석 기자
이병순 KBS 사장 “공정·중립성 확보 시급”
이병순씨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 비전을 제시했다. 이 신임사장은 “지난 1977년 최고의 기자가 되겠다며 KBS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지 31년이 흐른 오늘 KBS는 오랜 염원을 이뤘다. KBS가 공영방송으로 출범한 지 35년 만에 첫 내부출신 사장시대가 열린 것이다. 벅찬 감회와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깊이 새기고 있다”고 운을 뗐다.이어 경영원칙을 제시했다. 이 사장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 확립을 꼽았다. 그는 “KBS는 지난 몇 년 동안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공정성을 잃을 경우 KBS가 어렵게 쌓아올린 국민적 신뢰는 한 순간에 추락하고 공영성 여부까지 문제될 소지가 클 뿐더러 나아가 정보의 왜곡으로 민주주의의 발전까지 저해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KBS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수록 이해 당사자들의 주장을 보다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공영성 확보에도 무게를 뒀다. 그는 “공영성은 KBS의 최우선 가치다. 공영성은 KBS 제도와 운영체계 전반에 투영되고 반영돼야 한다. 무한 경쟁시대의 방송환경에서 생존문제에 매몰되다 보면 공영성보다는 자칫 상업성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위해 KBS는 앞으로 시청자의 다양한 욕구와 의견을 끊임없이 수렴하고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하겠다.”KBS의 독립성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KBS의 독립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사회 이익집단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율을 의미한다. 이는 재정 안정화가 가능할 때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므로 수신료 현실화가 필수다. 아울러 시청자 여러분과 나의 확고한 신념과 철학도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겠다.”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송, 수신료를 더 내고 싶은 방송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신료 인상을 추진할 때마다, 제도개선을 추진할 때마다, 경영효율화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KBS에 보다 효율적인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어디보다 더 강한 조직으로 바꾸어 가겠다. KBS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뼈를 깎는 고통분담도 마다하지 않겠다. 적자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겠다. 프로그램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작비의 거품 걷어내기를 통해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그러나 그는 “KBS가 일부 비판 받아온 과다한 오락성과 선정성을 최대한 배제하겠다. 선정성이나 특정 이념에 여과 없이 노출되는 실수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사후 심의제도를 철저히 운영하겠다”면서 “지금까지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 온 프로그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은 존폐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 제작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변화하겠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이에 대해 KBS 사원행동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며 “정권의 ‘청부사장’이 이명박 정권의 시각대로 공정성의 기준을 정해 방송법에 명시된 제작·편성의 자율권을 짓밟겠다는 월권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사원행동은 “이 사장이 ‘미디어 포커스’ ‘시사 투나잇’ ‘시사기획 쌈’ 등 정치·경제 권력과 보수언론의 잘못된 행태와 실정을 지적해온 탐사보도·시사 프로그램들을 폐지 1순위로 삼을 것임을 사실상 밝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리꾼들은 곧바로 “이명박 정부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왜 바른 말을 하는 프로그램을 폐지하느냐”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장악, 해도해도 너무한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싫어하는 프로그램들”이라고 주장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쇠고기 파문에 이은 제2의 촛불집회가 예상되는 대목이다.경남 거창 출신인 이병순 신임 KBS 사장은 보수적 성향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대통령의 처남인 김재정씨 등과 경북고 동기동창으로 친분이 있다. 또 강재섭 전 대표는 물론 같은 KBS 보도국 기자 출신으로 지난해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선대위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김인규씨와도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핵심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점이 ‘인선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설상가상으로 부하직원들과도 잦은 마찰을 야기하는 등 ‘사장’으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주장마저 취임 첫날부터 제기되고 있어 순탄한 임기가 가능하겠냐는 우려도 있다. KBS 보도국의 한 간부는 한 언론과의 접촉에서 “부하 직원들과 잦은 마찰을 야기해와 조직 인화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사내에서 나온다”면서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진보·보수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사회 변화상을 담아내기에는 시야가 부족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