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총학생회, 수년간 교내 식당 업주로부터 금품 수수

일부 교직원 연루 의혹… 학생들 “구조적인 비리 사건”

2012-05-25     도기천 기자

[매일일보=도기천 기자] 대구의 한 사립대학 총학생회가 최근 수년간 교내에 입점한 업체로부터 1300만원에 이르는 금품을 받아온 사실이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일부 교직원이 입점 업체로부터 명절 때마다 정기적으로 상품권, 홍삼 등을 받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대구 성서경찰서는 지난달 18일 계명대학교 공대 식당을 운영했던 박모씨로부터 이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접수받아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의 진정서에 따르면 이 대학 45대(2008년), 46대(2009년), 47대(2010년) 총학생회의 임원(총무부장, 인권복지위원장) 계좌로 송금한 내역 및 현금으로 건넨 내역 등 총1310만원의 금품 전달 사실이 적시돼 있다.

입금표 등 금융거래자료에는 2010년 3월에 300만원, 5월에 400만원을 총학생회 간부인 B씨 명의의 대구은행 계좌로 입금했다. 이에 앞서 2009년(46대 총학생회)에도 3월과 5월에 걸쳐 학생회 간부인 L씨에 현금 180만원을 지급했다. 또 2008년(45대 총학생회)에는 3월 50만원, 4월 30만원, 5월 50만원, 10월 300만원 등 모두 430만원을 당시 인권복지위원장 S씨, 총무부장 L씨 등에게 지급한 사실이 명시돼 있다.
 

학교 비호받는 총학생회가 입점업체 재계약 심사 관여
일부 학생들 “학교-학생회 결탁한 구조적 비리” 주장

학교측 “단순한 행사 협찬 성격일 뿐… 자체 조사 중”
경찰 “금품 사용처 수사 중, 어디에 썼는지가 핵심”

박씨는 <매일일보>과의 통화에서 “총학생회 측에서 위생문제, 식대인상 등으로 시비를 걸어올 때마다 금품제공으로 입막음을 해왔다”며 “총학생회와 학교측이 결탁해 교내 임대업체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라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학교 측과의 마찰로 재계약이 무산돼 지난 4월11일 식당 경영을 그만둔 상태다. 박씨는 학교 측과의 계약이 해지된 이유에 대해서도 “학교측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업체를 들이기 위해 총학생회와 공모해 자신을 내쫓았다”며 “이미 2010년경부터 계약이 해지될 조짐이 보여 이때부터는 (금융거래) 증거를 남기기 위해 (총학생회 측에) 계좌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계명대는 교수, 교직원,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후생복지위원회’에서 식당, 매점 등 교내 입점업체에 대한 감시․감독, 재계약 적정 평가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 기구의 평가결과에 따라 2년에 한 번씩 수의계약 형태로 입점업체들의 계약 시한을 연장(재계약)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복지위원회는 입점업체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는 기구다.

박씨는 “학생대표 2명이 후생복지위원회에 소속돼 있어 총학생회 측의 요구를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학 측은 <매일일보>과의 통화에서 “학교(학생처)에서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신입생 환영회, 대동제 등 학교행사와 관련한 협찬금 성격이었다”며 “박씨 식당이 계약 해지된 건 화장실에 식당 물품을 놔두고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를 사용해 한 학생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등 수차례 위생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학생들이 식당 측으로부터 받은 금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라 말할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 이같은 사실이 학교게시판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자 현 총학생회 측은 “전임 학생회장단이 협찬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학교 행사에 쓰인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공대 식당 뿐일까? 의혹 증폭

이번에 문제가 된 공대 식당 외에도 상당수 입점업체들이 학교 행사 협찬 명목으로 상당액의 금품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매일일보> 취재 과정에서 일부 교직원들이 공대 식당 등으로부터 설, 추석 등 명절 때마다 상품권과 홍삼 등 20~30만원대의 물품을 떡값 성격으로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총학생회 선거 때 학내비리 문제를 지적하며 출마했다 낙선한 김인(24) 씨가 공대 식당 주인 박씨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추석과 설 명절 때마다 일부 교직원들에게 수십만원대에 이르는 홍삼세트와 상품권을 지급한 내역이 명시돼 있다.

박씨는 총학생회에 지급한 금품내역서와는 별도로 교직원들에게 제공한 물품내역을 작성했으며, 경찰에 진정서를 넣을 때 교직원 부분은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매일일보>에 “진정을 낸 목적은 총학생회의 금품수수 관행으로 많은 입점업체 사장들이 시달리고 있어 이같은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총학에 제공한 1300만원을 돌려받으려는 취지다”며 “명절 때 일부 교직원들에게 선의로 준 물품까지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씨로부터 물품을 수수해온 교직원들은 식당․매점 등 교내 입점업체를 관리․감독하는 부서의 직원들인 것으로 밝혀져 도덕적 논란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계명대에는 학교 내에 입점한 식당과 매점 등이 30여곳에 이른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 측과 총학에 금품을 제공한 사례가 이번 공대식당 뿐이겠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상태다. 계명대 홈페이지 비사광장에는 학교와 총학생회를 비난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고 일부 학생들은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집회 등을 벌이고 있다.

김인 씨 등은 게시판, 이메일 등을 통해 학교 비리를 제보 받고 있다. 김씨는 반값등록금 투쟁에 나서는 등 학교 측과 갈등을 빚어 왔으며, 지난해 11월 ‘학교 개혁’ 등을 내세우며 총학생회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김씨 등은 ▲학교 측이 자신을 장학금으로 회유하려 했다는 녹취록 ▲총학생회 선거부정 의혹 ▲과거 총학생회 간부 출신들이 현재 교직원으로 특채됐거나 학교식당 등 이권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 등을 꾸준히 제기해 오고 있다.

이번 총학생회 금품수수 사건을 수사 중인 성서경찰서 관계자는 “일단 연루된 총학생회 전직 간부들을 소환해 조사했고, 식당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금품이 단순한 협찬 성격인지 개인적인 성격인지를 규명하기 위해 용처를 밝히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정식 고소가 아닌 진정서 성격이라 수사범위는 한정돼 있다”며 “교직원들에 대한 수사는 진정서 범위에 없어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학교-총학생회 ‘끈끈한 관계’가 화근

한편에서는 이번 계명대 파문이 학교 측과와 총학생회 간의 오랜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계명대는 지난 1988년 제4대 총장에 신일희 박사가 취임한 뒤 2004~2008년을 제외한 20년간 신 총장이 총장직을 유지해 오고 있다. 신 총장 연임에 반발하던 일부 교수들이 재임용에서 탈락하면서 2004~2005년까지 극심한 학내분규를 겪어왔다. 당시 계명대 교수협의회, 학생, 지역 시민단체 등 30여개 단체로 꾸려진 ‘계명대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가 결성돼 총장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학교 측과 극심한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도 둘로 나눠졌다. 학교 측이 지원하는 소위 ‘비운동권’ 학생 조직과 교수협의회 등의 지원을 받는 ‘운동권’ 학생들이 극심히 대립하며 전국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치열한 총학 선거를 치러왔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의 측면 지원을 받아 당선된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교내 입점업체들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후생복지위원원회에 들어가 학교 측과 협력해 왔으며, 이런 과정에서 입점업체들이 총학생회에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해 왔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총학생회 회계를 감사해야할 대의원회나 학교 측도 수년간 지속돼온 금품수수 관행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매일일보>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홍보실, 학생처, 복지과 등 학교관계자들도 한결같이 총학생회를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취해 이같은 주장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였다.

대구참여연대 장지혁 간사는 “계명대 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일희 총장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어용 총학생회를 세우고, 식당․매점 경영권을 독식해오다시피 하는 과정에서 생긴 구조적인 비리 사건”이라며 “참여연대 차원에서도 명명백백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