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세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

단속…자살…복수…장안동 업주들, “‘性상납 경찰 명단공개’…공권력과의 대전쟁 막 오르나

2009-09-05     류세나 기자

경찰 “작살날 때까지 지독하게 단속할 터” 엄포
업주 “빚내서 장사, 사채업자 협박 심하다” 울상
일각 “경찰과 업주들과의 유착 관계 폭로” 협박
경찰의 실적 올리기로 ‘은밀한 성매매’ 더욱 확산

[매일일보닷컴] ‘환락의 거리’로 불야성을 이루던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성매매업소들의 불이 20여년 만에 꺼졌다. 지난 7월 동대문경찰서에 이중구 신임서장이 부임하면서 ‘장안동 윤락가 해체’를 최고 역점시책으로 선언한 후, 이곳에는 경찰과 업주들 사이에 소리 없는 총성이 계속되고 있다. 안마시술소, 휴게텔 등 윤락업소 70여개가 밀집해 밤이면 취객들과 호객꾼으로 붐비던 장안동 사거리. 그러나 ‘불야성 장안동’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관할서인 동대문경찰서에서 매일 밤 최대 50여명의 경찰을 투입해 장안동 일대를 집중단속하고 있어 취객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 상태다. 사실상 영업이 중단된 것.

이 서장이 부임한 뒤부터 현재까지 이 지역 윤락업소 업주 6명이 구속되고 여성 종업원과 성매수 남성 140여명이 입건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29일 경찰의 단속에 못 이긴 C안마 업주 최모씨(48・남)가 자살, 업주들은 경찰에 대한 복수의 날을 세우고 있다. 심지어 성 상납, 금품 상납을 받은 경찰의 명단이 있다고 주장하며 폭로를 검토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성로비의 진실을 <매일일보>이 직접 업주들을 만나 파헤쳐봤다.

기자가 성매매 업소들이 즐비한 장안동 거리를 찾은 지난 2일, 몇 발자국 걷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위를 순회하는 여러 대의 경찰차와 그런 순찰차를 독기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업주들로 장안동 일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과거 성매매업소가 단속의 대상이 됐을 경우, 업주를 구속시키고 5천~7천여만 원의 추징금만을 부과했던 것과 달리 경찰은 이번 단속에서 업소들이 아예 영업을 할 수 없도록 안마용 침대, 월풀 욕조, 심지어 샤워용품까지 압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 식으로 7월말부터 지금까지 100t이 넘는 분량이 압수됐다. 이는 “장안동 일대의 성매매업소를 뿌리 뽑겠다”는 이 서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 서장은 또 집중 단속에 앞서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안전과 내 생활질서계·여성청소년계 소속 직원 18명 중 내근직을 제외한 15명을 물갈이했다. 일각에서 제기될 수 있는 단속경찰관과 업소 사이의 유착 의혹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끊을 수 없는 ‘빚’의 악순환 때문에…

내부시설 공사에만 수억 원을 쏟아 부은 업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것.

취재과정에서 만난 업주 김모씨(49・남)는 “불법인 것은 우리도 알지만 최소한 정리할 기회와 시간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낭떠러지로 몰아붙이는 식으로 단속을 벌이면 앞으로도 자살을 선택할 제2, 제3의 최모씨가 나타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업주가 말한 ‘정리할 기회와 시간’은 장안동을 떠나겠다는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달라는 것.업주들에 따르면 대형 불법 안마시술소의 경우, 하룻밤에도 수천만 원의 거래가 오간다. 때문에 영업을 하루만 쉬어도 타격은 상상이라고 한다. 사행성 게임장, 성매매업소들이 경찰의 단속을 당하고도 불법영업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 한 업주는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떼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들 ‘속빈 강정’들 뿐이다. 이곳 업주들 대부분이 자신의 돈이 아닌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끌어다 업소를 차린다”며 “장사를 하루 쉬면 하루에 몇 백만 원씩 하는 이자를 감당해낼 수 없다. 또 단속이 강화됐다는 말에 돈을 받아내려는 사채업자들의 협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없는 돈을 끌어들여 투자한 이곳 ‘장안동’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사채업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이 업주는 “지금 가게 영업을 못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업주 역시 투자한 돈이 많아 안마업에서 쉽게 발을 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화려한 시설을 갖춘 불법 성매매 업소들이 많다. 하지만 이게 다 돈을 잘 벌어서 꾸민 게 아니”라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객 입맛에 맞추다 보니 투자에 투자를 거듭해 빚만 몇 억”이라고 말했다.

이 업주는 이어 “‘업소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일을 해서는 몇 억이나 되는 큰 빚을 갚을 수 없다”고 전했다.이들은 동대문경찰서의 장안동성매매업소 단속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C안마 업주가 목을 매 자살한 이유도 ‘끊을 수 없는 빚’이라는 악순환의 고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대문署, 사람 죽어 나가도 상관없어(?)

업주들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입장은 확고하다. 불미스런 일은 벌어졌지만 불법 행위에 대한 단속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이 서장은 지난 1일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동대문경찰서 전 직원이 달라붙어 장안동 일대의 성매매 업소가 ‘작살’날 때까지 지독하게 단속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기자가 장안동을 찾은 지난 2일 역시, 단속을 받은 한 안마시술소의 침대, 월풀 욕조 등이 구청직원들에 의해 압수당하고 있었다. 기자가 둘러본 해당 업소는 20여개가 넘는 밀실로 꾸며져 있었다. 각 방마다 이미 침대, 월풀 등이 모두 빠져나간 상태였지만 한 방에서 손님에게 안마부터 샤워까지의 서비스를 제공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또 여전히 방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붉은색 조명은 안마용품이 모두 제자리(?)에 있었을 당시의 야릇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이날 해당 업소에서 압수된 내부물품만 1t 트럭 5대 분량. 이를 지켜보던 해당 업주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불법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면서도 “남의 가슴 아픈 장면을 왜 지켜보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윤락업소 단속하니 모텔로 이동해 ‘성매매’

경찰의 계속되는 ‘장안동 성매매 업소 죽이기’에 업주들의 불만은 폭발 일보직전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업주들은 하나같이 “동대문구의 다른 성매매 밀집 지역들은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데 그 곳은 손도 대지 않고 장안동만 심하게 단속을 하느냐”며 “서장이 자신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업주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중구 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대문서의 관할 내 또 다른 집창촌인 ‘청량리 588’의 경우 재개발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2010년께 모든 철거작업이 마무리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업주들은 “경찰의 단속이 더욱 은밀한 성매매를 부추기고 있다”며 경찰의 단속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한 업주는 “장안동 윤락업소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이 인근 모텔, 호텔 등에 방을 잡아 놓고 대포폰 등을 이용해 성매매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가게를 나간 아가씨들이 현재 어디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있다고 연락이 오지만 그것까지는 말해줄 수 없다”고 전했다. 이 서장의 ‘전투적인’ 단속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또 다른 업주는 “이 서장이 다른 성매매지역의 업주로부터 뒷돈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이 업주는 이어 “장안동 밤거리를 지나다 보면 아직도 호객꾼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장안동 지역이 아닌 타 지역 호객꾼”이라며 “장안동에 집중단속이 시작된 소식을 듣고 타 지역 호객꾼들이 대기하고 있던 차에 손님을 태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고 주장했다.

‘같이 죽자’ 물귀신작전 돌입하는 성매매업주

그렇다면 업주들이 앞서 언급했던 ‘정리’는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것일까. 장안동 안마시술소 업주 50여명은 2일 밤 10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모씨의 업소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경찰 단속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대책회의 결과 업주들은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호객행위와 전단 살포 행위를 중단하겠다” “간판 네온사인도 작게 만들고, 간판의 수도 줄이겠다”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 또 기존에 1년에 2~3차례에 걸쳐 이뤄지던 단속에도 ‘순순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찰과의 대화통로가 열리지 않고, 집중단속이 계속된다면 性・금품 등을 상납 받은 경찰들의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실제로 이 같은 논의가 이뤄지기 전, 같은 날 낮에 만난 한 업주는 “일반인이 경찰들의 이름과 연락처 등이 적혀 있는 명단을 갖고 있는 게 무엇을 뜻하겠느냐”며 “말 한마디만 잘해도 주차단속 딱지의 액수가 달라지는 데 하물며 이쪽 일은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업주 역시 “경찰들에게 로비를 했다고 현재는 직접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우리를 계속해서 낭떠러지로 밀어붙인다면 우리만 죽을 수 없다”면서 “물귀신 작전에 돌입할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젊은 시절부터 안마업에 종사했다고 밝힌 한 업주는 “경찰에 대한 로비는 이 지역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며 “전국에 분포해있는 성매매업소들과 연대해 우리나라 경찰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도 안마시술소 업주와 안마용품이 압수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복경찰 간에 눈인사가 오가는 장면을 목격했고, 업주는 해당 경찰에게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경찰세계 쑥대밭 될까
 
성매매업소의 경찰로비는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공공연히 비쳐진 적이 있지만 이들 업주들의 주장대로 비리경찰의 존재가 전국에 걸쳐 드러날 경우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단속에 앞장서야 할 경찰이 오히려 업주들로부터 상납을 받고 성매매를 묵인해 온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동대문경찰서 소속 경찰이 불법 성매매업소로부터 단속 무마를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 서장이 취임한 후 성매매업소 단속의 주무부서의 소속 경찰관을 교체한 뒤 단속에 나선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러나 안마업주들의 초강수에도 불구하고 이 서장의 결의는 확고하다. 이 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명단이 있다면 차라리 빨리 공개하라”며 “이로 인해 단속이 중단되거나 약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못 박았다. 또 “만약 성상납이 사실이라면 시도한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이 서장의 뜻대로 불법 성매매업소가 즐비한 장안동 거리가 이전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지, 아니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지 장안동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