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한마디에 쩔쩔매는 어청수
풍전등화 신세 ‘사과 또 사과’, 경찰수장 ‘굴욕’…“예의범절에 어긋난다” 지적까지
2009-09-14 이명신 기자
지난 10일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불교대표자 간담회로 어청수 경찰청장이 ‘느닷없이’ 찾아갔다. 이 때문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어 청장과 악수만 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부 승려와 신자들은 심지어 어 청장과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송안식 상임위원장은 다음 날인 11일 “어청수 경찰청장이 사전에 정식 면담요청을 한 것도 아니고, 사죄하러 가겠다고 미리 언급하지도 않았다. 불시에 와서 사과를 하겠다고 한 것은 예의범절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송안식 위원장은 또 “대한민국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총수가 그런 원칙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려스럽다”면서 “예의범절도 없는 치안총수를 대통령이 굳게 믿고 의지하고 있는 행위를 볼 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어 청장 스스로 사퇴하는 것만이 대통령을 위하는 것이고 기독교를 위하는 것이다”면서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주장했다.위원회 권오국 사무국장도 “일부에서 경찰청장 사퇴요구를 불교계가 하는 것이 총무원장 과잉 검문검색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보다 경찰청장이 앞장서서 법을 어겼기 때문”이라면서 “경찰복음화 포스터도 관례라고 하는데 공보에 게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정 종교집단들이 앞장서 불교계를 폄하하고 있다. 묵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종교 편향 문제로 최근 불교계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이 10일 대구 동화사에서 벌어진 ‘범불교도 대회 대구경북지역 불교 대표자 간담회’를 방문했다가 불교계의 냉담어린 반응에 발길을 돌린 것을 두고 어청수 청장의 ‘사고방식’ 자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들끓고 있다.어청수 경찰청장은 이날 종교 편향에 대한 사과를 하기 위해 동화사를 ‘예고없이’ 방문했고 스님들에게 사과의 뜻을 표현하고 싶다며 만남을 시도했지만 스님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결국 스님들의 ‘저녁식사 자리’에까지 참석하려 했던 것. 결국 불자들과 스님들이 몸싸움으로 막는 등 격렬한 반발이 일자 발길을 돌렸다.스님들과 불교 신자들은 “참석 불가를 정중하게 밝혔는데도 밥먹는 자리에까지 억지로 참석하고자 소란을 피운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어청수 경찰청장이 이처럼 풍전등화 신세에 놓이면서 일선 경찰 분위기는 뒤숭숭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명박 대통령이 9일 국무회의를 통해 종교편향 논란과 관련 불교계에 ‘유감’을 표명하며 어 청장에게 불교계에 사과할 것을 공개 지시한 후 어 청장이 불교계 대표들을 찾아가 사과를 시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는 ‘어청수 청장의 사퇴’를 종교편향 논란사태 해결을 위한 핵심 조건으로 요구하며 공직자 종교편향 근절 입법조치와 시국관련 국민대화합 조치 등 3대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를 열겠다며 강도 높은 압력을 넣고 있다.이같이 경찰수장이 ‘종교 편향 논란’의 한 가운데 놓여 사퇴압력을 받는 것에 대해 일선 경찰들은 ‘자존심이 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찰청장으로서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동정표를 던지면서도 어 청장의 거듭된 사과에 대해서는 “자존심 상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앞서 어 청장은 지난 9일 오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경찰조직을 책임지는 청장으로서 사퇴요구를 받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또 그는 범불교대회를 앞둔 지난달 14일 불교계 300여명의 스님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간의 경찰의 잘못은 모두가 이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제 부덕의 소치”라며 “큰 걱정과 염려를 끼친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전했다.아울러 어 청장은 자신에 대한 사퇴 압력이 거세지자 민주당과 한나라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을 찾아 면담을 요청했다가 거절 당하기를 반복했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차라리 어 청장이 ‘잘못한게 없다’며 사표를 제출하는 편이 더 보기에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와 관련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퇴를 줄곧 반대해온 한나라당 송광호 최고위원은 “한 번 가서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방문을) 중단하지 말고 두번 세번 찾아가야 한다”며 ‘삼고초려’를 주문했다. 송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어 청장이 진정성을 갖고 불자들과 불교계 지도자들의 마음 푸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어 청장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원장님 저 왔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이는 불교예법에 어긋난다”며 “남의 집을 방문할 때도 그 집안의 가풍이나 예절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고 가는 것이 기본예의인데, 하물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할 경우 오히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차라리 총무원장을 만났을 때 조용히 합장하고 목례 정도만 했더라면 더 훌륭한 방문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범불교 종교편향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이들은 일단 추석 이후로 예정된 대구·경북권 대회를 강행하고 나머지 지역별 대회 개최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나가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어청수 경찰청장이 일선 경찰서를 방문, 간부들에게 듣기 거북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이 자리는 경찰서장과 과장급 간부 등 경찰서 직원, 전경 그리고 일반인인 전·의경 어머니회 회원들도 함께 있던 자리여서 어 청장의 언행이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다.경찰에 따르면 어 청장은 추석 연휴를 맞아 직원 및 전·의경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지난 14일 낮 서울 강남경찰서를 방문했다.어 청장은 상황실에서 보고를 받은 뒤 간부, 전·의경 어머니회 회원 등과 함께 한 식사자리에서 경찰서장을 향해 “이 XX야, 똑바로 해, 직원들 교육 똑바로 하란 말이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시 상황실장에게 “이 XX야, 이것도 제대로 몰라”라며 출신 학교를 언급하는 등 듣기 거북한 말로 심하게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당시 어 청장은 상황실장 등에게 경력 배치 등 현안을 질문했지만 상황실장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자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논란이 확산되자 해당 경찰서장 등은 “그런 일 없다”며 직접 해명에 나섰다.정윤호 강남경찰서장은 16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청장께서 화가 나 질책은 했지만 욕설은 없었다”며 “상식적으로 판단해야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굉장히 불쾌하다”고 밝혔다. 정 서장은 “어 청장이 앉자마자 바로 보고를 받아 상황실장이 현안파악이 덜된 상태여서 당황했던 것 같다”며 “어 청장이 ‘업무를 똑바로 해’라고 말했을 뿐 욕설은 없었다. 경찰서장이 판단하기에는 지휘관이 그 정도는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어 청장이 문책 도중 특정 대학을 거론한 것과 관련 “상황실장이 젊어 보여 ‘경찰대 출신인가?’ 이렇게 청장이 물은 것 뿐”라고 덧붙였다. 특히 정 서장은 “원래 어 청장은 목소리 톤이 높다. 전·의경어머니회 회장께서 여자분이라 (높은)언성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식사 때 분위기가 좋았다. 짜증내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전·의경어머니회 한경자 회장도 “과장이나 직원들 호칭을 ‘당신’이나 ‘당신네들’로 부르면서 서장이 중간중간 언성을 높여가며 얘기는 했지만 욕설은 일체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