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개인정보 실시간 유출국’
전자여권 시행 한 달, 전자여권 개인정보 해킹에 무방비 노출…5분 안에 ‘슬쩍’ 가능
인권단체 “리더기ㆍ프로그램만 있으면 신상정보 확인 OK”
외통부 “여권 분실자체가 정보유출…신원정보 빼라는 말?”
여권 생성 인증서, 여권 안에 버젓이…‘마음대로 위조해라?’
[매일일보닷컴] 미국 여행시 無비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미국과의 VWP(Visa Waiver Program) 협정체결을 위해 정부가 서둘러서 도입했던 전자여권이 보안상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단체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에 따르면 전자태그(RFID) 리더기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전자여권 열람프로그램만 있으면 단 몇 분 만에 전자여권 내 칩에 담긴 개인정보를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연석회의는 지난달 30일 종로구 외교통상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까지 발급된 모든 전자여권을 리콜하고 오는 2010년으로 예정된 지문날인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보안의 ‘보’도 안 돼 있는 전자여권”
원거리 전자여권, 지금은 안전하지만…
지문 수록 후 유출시, 평생 악용 위험
발급되기 시작한 지 약 한 달 만에 드러난 전자여권의 이 같은 보안상 취약점은 지금에 와서 갑작스레 제기된 게 아니다. 유럽연합의 펀딩을 받고 있는 보안전문가 그룹 ‘FIDIS’는 2006년 부다페스트 선언을 통해 “유럽 국가들이 추진 중인 전자여권 시스템은 보안공백을 불러올 수 있다”며 전자여권 도입을 철회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전자여권에 담기는 개인정보들은 최대 10m 밖에서도 비접촉식으로 몰래 읽히는 게 가능하다. 또 유출해낸 정보를 다른 RFID 칩에 복사해 복제여권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특히 FIDIS는 전자여권에 ‘생체’ 정보가 기록되는 것에 대해 강력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지문(2010년 도입 예정)과 같은 생체정보는 평생 바뀌지 않아 한번 도둑맞으면 오랜 기간 동안 남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킹에 허술한 전자여권이 도입된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RFID가 지적했듯이 위・변조 가능성이다. 사진전사식 여권의 경우 통째로 잃어버려야만 문제가 됐었지만 전자여권은 누군가에게 잠시 맡기기만 하더라도 쉽게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에 대해 진보네트워크센터 바리 활동가는 “정부는 여권을 개인이 관리하면 정보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사, 가이드, 호텔 프런트 등에 여권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여권주인의 정보를 쉽게 빼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이와 관련 김승욱 활동가는 “리더기를 이용해 정보를 읽어낸 후 사진만 바꿔도 위・변조가 가능하고, 빈 여권이나 빈 RFID 칩에 내용을 담아 새로 여권을 만들 수도 있다”며 “이때 여권 제작 당시의 정보가 변하지 않았다는 인증서 내용을 함께 바꿔줘야 하는데 전자여권 내에 이것을 바꾸는 암호가 버젓이 적혀 있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물론 유럽 등 전자여권을 발급하고 있는 국가 모두에 해당되는 문제점이다.
8월 25일 시행된 전자여권제도는 지난달 16일까지 모두 18만 1,226권이 발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비자면제 혜택 받는 대신 자국민정보 유출(?)
“여권內 주민번호 삭제해라”
기자회견에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 명동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전자여권 해킹 시연회를 가진 연석회의측은 전자여권의 전자 칩에 신상정보 외에 기타 메모리를 저장할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 남아있음을 알아냈다. 이와 관련 천주교인권위원회 조백기 활동가는 “전자 칩 내에 비어있는 저장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아직 기입돼 있지는 않았지만 추후에 머리카락, 눈동자의 색 등을 기입하도록 남겨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전했다.2010년 수록될 예정인 지문과 함께 여권에 머리카락, 눈동자 색 등의 정보까지 더해질 경우 여행자정보 공유협정에 따라 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인적사항은 고스란히 미국 정보기관에 넘어가게 되는 꼴.
또 미국으로 유출되지 않더라도 여권 내에 담겨 있는 개인의 평생고유번호인 주민번호가 국내에 유출될 경우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다분하다.
‘어차피 유출될 거, 그냥 놔둬라(?)’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을 두고 외교통상부 지난달 30일 오후 ‘전자여권 보안성 관련 우려 제기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여권의 신원정보를 모두 없애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통부는 “전자여권이든 비전자여권이든 구분을 막론하고 여권에 수록된 정보는 타인이 취득하는 시점에서 모두 유출되는 것”이라며 “굳이 판독기를 구매하지 않고도 사진촬영, 스캔, 타이핑 등을 통해 정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칩 판독에 의한 추가적인 정보유출’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이어 “이러한 유형의 정보유출은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여권의 신원정보면을 없애야 한다는 불합리한 결론에 도달한다”고 덧붙였다. 또 전자여권 위・변조 및 복제 가능성 주장에 대해서는 ▲신원정보면상의 정보가 칩에 한 번 더 수록돼 칩 판독으로 위변조를 적발할 수 있고 ▲칩에 수동적 인증(PA) 및 칩 인증(EAC CA)기술이 적용돼 있어 내용 변경과 복제시 칩 판독과정에서 자동 적발된다고 설명했다.다만 이러한 기술들은 출입국 창구에서만 가능해 여권의 위․변조 가능성을 여전히 존재한다. 이에 대해 외통부측은 법무부와 지속적으로 협의․시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외통부는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오는 2010년에 시행되는 ‘전자여권 지문수록’의 목적에 대해서는 여권 도용억제를 위해 추진돼 온 사항이라고 일축했다. 지문정보는 여권 소지인과 여권 명의인의 동일성 확인을 위해서만 사용되며 범죄인 수사 등 신원조회 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전자여권제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과 관련 외통부는 전자여권 지문 수록이 VWP와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에 대한 근거로 외통부는 VWP 가입 완료시 지문 수록 전자여권과 지문 미수록 전자여권을 막론하고 90일 내 상용 및 관광을 목적으로 한 미국 무비자 방문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었다.외통부는 이어 “오는 2010년 1월 1일부터 지문수록 전자여권이 발급된다”며 “확장접근통제(EAC CA) 기술에 의해 여권이 분실되는 경우에도 지문정보는 안전하게 보호되며, 우리 정부가 허가한 국가의 판독기에서만 판독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