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미안해…죽어줘”

비정한 엄마의 양육방식, 8살 아들 질식사 시킨 후 도주…1년여 만에 붙잡혀

2009-10-10     류세나 기자

소득활동도 안하고 “생활고 탓에…” 변명만
‘살려 달라’ 버둥대는 아들 ‘본체만체’ 살해
사체와 보름간 동거, 친구 만나 태연히 ‘깔깔’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지난해 10월 경기도 광명시 소재의 한 여관에서 초등학생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종결된 것은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08년 10월. 1년의 수사 끝에 경찰이 붙잡은 피의자는 놀랍게도 숨진 아이의 엄마였다. 한 순간에 평범했던 가정주부에서 아들을 살해하고 도주한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엄마가 된 김모씨(37). 그녀의 범행은 우발적인 실수도, 그렇다고 치밀하게 계획됐던 범행도 아니었다. 사건 발생 후 찜질방, 병원 환자대기실 등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이어오던 김씨. 경찰의 급습에 “두렵기보다 홀가분해진 느낌”이라며 그 동안의 죄책감을 드러낸 ‘비정한 엄마의 아들 살해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경기도 광명경찰서는 지난 4일 자신의 아들을 숨지게 하고 사체를 유기한 김모씨에 대해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10월 중순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 소재 한 여관에서 8살 난 친아들이 잠든 사이 베개로 눌러 질식사 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숨진 아들을 방안에 방치한 채 생활하다 같은 달 28일 오전 6시경 여관을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아들의 시신은 김씨가 도주한 뒤 3시간여 만에 여관 주인에 의해 발견됐다.이에 경찰은 A군이 6개월 전부터 어머니 김모씨와 단둘이 장기투숙 해왔다는 여관 주인의 증언과 김씨의 행적이 돌연 묘연해진 정황상 김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끈질기게 수사를 이어 왔다. 그 결과 경찰은 김씨가 최근 자신의 어머니 명의로 휴대폰을 개설한 사실을 알아내고 위치추적, 제보 등을 통해 지난 2일 피의자 김씨 검거에 성공했다. 이와 관련 김씨는 경찰에서 “먹고 사는 게 힘들어 아들을 죽이고 나도 따라 죽으려 했는데 의지가 약해 자살에 실패했다”고 진술했다.

남편 실직 후 가세 기울고 가정폭력까지

지난해 10월 28일 여관주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담당경찰에 따르면 범행이 일어난 객실 밖 복도에서부터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날씨가 쌀쌀해 난방을 했다손 치더라도 냄새만으로도 숨진 지 열흘은 족히 지났을 것으로 짐작됐다는 게 해당 형사의 말이다. 발견당시 이불 속에 ‘가지런히’ 눕혀져 있던 A군(당시 8세)은 그의 짐작대로 이미 눈이 함몰되고, 몸에서 진물이 나오는 등 부패가 심하게 진행돼 있었다. 방 밖으로 냄새가 새어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김씨는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외아들을 살해하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썩어가도록 방치해 두었던 것일까. 또 숨진 아들과 함께 보름간 생활하다 돌연 잠적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에 따르면 2004년 김씨의 남편 B씨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B씨는 갑작스레 실직자 신세가 됐다. 이후 B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무렵 얻은 알콜중독 탓에 소득의 대부분이 술값으로 지출됐다. 또 술만 마셨다하면 아들을 구박하고, 아내를 구타하는 등 전에 없던 행동까지 보였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한 가정이 가장의 실직으로 ‘불행’의 길을 걷게 된 것. 이 같은 상황에서 김씨 가족은 B씨가 충북 천안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10여년간 뿌리를 내리고 살던 구로구 개봉동을 떠나 지난해 초 천안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김씨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이사 한 달 만에 아들과 둘이 개봉동 근처의 경기도 광명으로 올라오게 됐다. 개봉동 집을 처분하면서 쥐게 됐던 전세자금은 그동안의 빚 청산, 생활비, 이사비용으로 지출되고 김씨부부에게 남아 있는 돈은 없었다. 김씨가 어린 아들과 여관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된 이후 B씨는 술에 더 의지해 살았다. 그만큼 김씨에게 송금되는 생활비의 액수도 줄어들었고 이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경제활동에 나서지 않았다. 아이를 직접 등 ∙ 하교시키고,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봉∙광명동 등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수다를 떠는 게 김씨 일과의 전부였다. 돈이 떨어지면 친구에게 빌리고, 끼니도 친구의 집에서 해결했다. 그렇게 빚은 점점 쌓여만 갔고 이에 참다못해 아들과의 동반자살을 결심하게 된 것.

동반자살 시도했지만 의지 약해 ‘실패’

사건이 벌어지던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온했다. 8살짜리 아들은 김씨의 옆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김씨는 잠들어있던 아들이 숨을 쉬지 못하도록 얼굴을 자신의 베개로 눌렀다. 갑작스런 신변위협에 놀란 아이가 잠에서 깨 양 팔을 흔들며 버둥댔지만 재차 베개를 세게 눌렀다는 게 김씨의 진술이다.이와 관련 김씨는 경찰에서 “평소 ‘죽어서 홀가분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했다”며 “홀로 남겨져 고생할 아이를 생각하니 ‘함께 죽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가 숨을 멈춘 것을 확인한 후 벽에 걸려있는 못에 줄넘기를 걸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거울에 얼굴이 점점 시커멓게 변해가는 모습이 비쳐 의지가 약해졌다”며 “거울을 피해 침대에 누워 손목도 그어봤지만 깊게 벨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이후 김씨는 약 보름간 아들의 주검과 동거했다. 평소 아들을 끔찍이도 아꼈던 김씨는 매일같이 숨진 아들에게 이불을 고쳐 덮어줬다. 또 사체가 부패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냄새는 물론 썩어 들어가는 것조차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게 경찰에서 밝힌 김씨의 이야기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달랐다. 이와 관련 여관주인 C씨는 “방에서 음식 썩는 듯한 냄새가 나 ‘음식물을 쌓아두지 말고 밖에다 버리라’고 주의를 줬다”며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해 김씨가 방을 비운 틈을 이용해 들어갔더니 아이가 이불에 덮인 채로 죽어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아이를 살해한 이후에도 늘 그래왔듯 매일같이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에게는 “아이를 친정언니 집에 며칠 맡겼다”고 속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살해 후 보름여가 지난 사건접수일 오전, 여관을 빠져 나간 뒤로 종적을 감춘 김씨는 도주기간 중 처음으로 광명동 소재의 친구 집을 찾았다가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도주기간 동안에도 광명∙개봉 일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고 구로와 영등포에서 식당보조 일을 하며 찜질방, 병원 대기실 등에서 노숙 아닌 노숙 생활을 했다”며 “건강한 몸을 가진 피의자가 생활고를 비관하기보다 좀 더 일찍이 소득활동을 시작했더라면 한 생명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