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찾아 코리아 왔지만 돌아온건 ‘쇠창살’

난민∙불체자 구분 없는 한국, 난민인정 안 돼 불법체류자로…강제구금에 퇴거까지

2008-10-10     류세나 기자

14년간 1,951명 신청했지만 난민 허가는 불과 76명
심사기간 4~5년간 취업은 ‘불법’…“죽으란 소리냐”
교도소보다 못한 보호소, 박해받은 난민에게 ‘이중고’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23만명의 불법체류자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그 중에는 실제 돈을 벌기 위해 국내로 밀입국한 ‘외국인노동자’들도 있지만 난민지위를 획득하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난민’도 포함돼있다. 우리나라는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 이후 지난 5월까지 1,951명의 외국인이 난민신청을 했다. 그러나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단 76명 뿐. 선택받은 76명을 제외한 ‘난민이지만 난민의 신분을 획득하지 못한’ 이들은 우리사회에서 불법체류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노동활동도 보장받지 못할 뿐더러 구금・강제출국 등 이들이 받는 인권침해는 도를 넘어섰다고 인권활동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6일 세계인권선언 60주년 UN 구금자 인권주간을 맞아 ‘외국인 구금과 인권’을 주제로 토론회를 갖고 난민들의 인권보호를 촉구했다.  

‘난민’(難民)은 일반적으로 ‘생활이 곤궁한 궁민’,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에 빠진 이재민’을 일컫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종적, 사상적, 환경적 원인 등으로 타국으로 망명한 사람을 난민이라 칭하고 있다.
1,100만여명의 난민이 고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전세계로 떠돌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76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수치다.

OECD 국가 전체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2006년 기준 250여만명으로 미국 84만명, 독일 61만명 등이고 일본은 그보다 훨씬 적은 1,840명, 한국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슬로바키아 240여명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 때문에 한국은 난민 인권에 관한 한 후진국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사기간 ‘長技’ 생계대책 ‘全無’

난민인정거부처분 취소소송 중에 있던 우간다 출신의 A씨는 지난 9월 8일 취업허가를 받지 않고 일을 한다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 의해 여권을 압수당했다. A씨는 “여권을 찾으려면 직접 방문하라”는 출입국 직원의 말에 다음날 고용주와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했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은 A씨의 방문에 그를 강제구금시키고, 고용주에게는 “A씨는 난민의 특수성 때문에 금방 풀려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는 게 현장에 있던 담당 변호사의 증언. 하지만 ‘금방 풀려날 것’이라던 A씨는 10월 6일 현재까지 화성보호소에 구금돼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소명의 김종철 변호사는 “유럽의 경우 난민 인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난민신청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생계보조비, 거주시설, 취업권리 등을 제공하고 있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난민인정절차에 길게는 4~5년까지 소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난민인정 절차기간 동안 합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는 것. 외국의 경우는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서 난민지위 여부가 결정되며, 이 기간을 넘기면 취업비자를 발급해 준다. 또 심사기간 동안 취업이 금지되는 대신 숙소나 생계비 등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인원부족 등의 이유를 들며 심사기간을 늦추고 있다. 또 생계대책도 전혀 지원되고 있지 않은 상태다.이와 관련 한양대학교 법학과 박찬운 교수는 “아무리 난민이라 할지라도 취업허가 없이 경제활동을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라며 “하지만 우리사회는 그 동안 입법적 불비(제대로 다 갖추어져 있지 아니함)로 인해 난민신청자들의 취업을 묵인해왔다”고 말했다.박 교수는 이어 “난민신청 중에 있는 난민에게 임시로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한다”며 “불체자들이 난민신청을 남용할 소지가 우려된다면 남용소지 그룹, 비남용 그룹 등으로 단계를 나누어 취업기회를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적법한 구금’ 그게 어려운 일인가요”

가나출신의 B씨는 “가나를 떠나야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근대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던 B씨는 한국 입국에 성공했지만 난민신청은커녕 ‘난민’이 무엇인지조차도 몰랐다. 심지어 숫자조차 세지 못했을 정도.

그렇게 한 공장에서 단순노동직으로 4주정도 근무했을 무렵 ‘불법취업’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단속됐다. 그 과정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이 B씨에게 난민신청을 권유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구금 중 신청은 법무부에서 ‘남용’으로 판단하는 전통(?)상 B씨의 난민신청은 거부 당했다.

이에 김종철 변호사는 법원에 거부처분 취소를 하면서 “B씨는 난민협약에 기록돼 있는 난민 요건에 해당되니 자유로운 상태에서 소송을 할 수 있도록 보호일시해제를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이 역시 거부당했다.
그러나 얼마 뒤 1심 법원은 B씨가 난민협약상 난민에 해당된다고 판결, 난민신청 거부처분을 취소해 B씨는 현재 1년 반의 구금생활에서 벗어난 상태다. 결국 정부가 불법체류자 단속 성과를 올리기 위해 난민을 단순 불체자로 취급, 강제구금 했다는 말로 귀결된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이 같은 사례에 대해 법무부측은 ‘보호소에 구금 중인 불법체류 외국인의 경우 구금된 이후에 난민신청을 한 사람들이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이 남용적 난민신청을 한 것이기 때문에 신청을 했다고 해서 모두 풀어줄 수 없는 노릇’이라고 답할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보호해제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구금의 상한을 정하고 정기적인 사법심사를 통해 ‘적법한 구금’을 시키라”고 말했다.

정부차원 관심 ‘절실’

하지만 이러한 강제구금 문제도 난민에 대한 지위획득이 현재보다 유연하고 신속하게 처리된다면 어느 정도의 변화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인권활동가들이 한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 ‘절차상 소요되는 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시일이 오래 소요되는 것만큼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람의 숫자 또한 많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 역시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무엇 때문에 난민지위 부여에 야박한 것일까. 

우선적으로 한국은 난민 인정에 정부 차원의 관심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UN은 지난 1951년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HCR)를 설치했지만 우리 정부는 1992년 12월에서야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이후 2년 뒤인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또 전문가들은 한국의 난민 심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신청자 1,951명 중 1,228명이 심사대기 중에 있다. 난민협약에 가입하기 전 법무부는 난민을 포함한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단속하고 추방시키는 기관이었다. 이들의 눈에 비친 유색인종들은 인도적 처우나 대우를 받아야 할 권리는 물론 이동, 거주, 노동의 자유를 보장해 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세계의 사람들이었을 것. 거기다 난민신청을 남용하는 ‘가짜 불법체류자’들로 인해 법무부측도 골머리를 앓았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에 법무부는 과거에 탄압을 받았었던 ‘명백한’ 증거를 심사의 주요수단으로 삼고 있다. 신청자들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 등은 정부의 심사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와 관련 국제엠네스티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굳이 정치적인 핍박이 아니더라도 다른 이유로 ‘난민’ 개념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정부는 소극적인 시각으로 난민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 역시 “미국, 영국 등 난민지위 부여에 적극적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인식의 출발부터 체류 지원까지 국제적 기준과 너무나 다르다”며 “난민 지위 인정은커녕 오히려 강제 감금・출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VS 캐나다 ‘달라도 너무 달라’

우리정부는 무엇 때문에 외국인 구금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법무법인 위너스 한태희 미국・캐나다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첫째로 외국인이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추방명령을 고지 받은 후 도주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구금을 할 경우 강제퇴거 등의 법 집행이 용이해진다. 둘째, 공공안전에 위협이 되는 경우다. 외국인이 테러리스트라던가, 폭력을 수반한 범죄 경력이 있을 경우에 해당된다.한 변호사는 세번째 이유로는 정부의 숨은 의도가 있음을 지적했다. 아직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난민을 구금함으로써 ‘한국정부의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는 게 한 변호사의 주장이다. 보호소에 구금돼 있을 당시 작성된 난민신청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할 만큼 효력이 약하다.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캐나다는 이민/난민보호법(IRPA)에 난민신청자를 포함한 외국인과 영주권자에게 모두 적용되는 ‘구금과 구금해제 결정시 고려해야할 요소’를 명시해 놓고 있다. IRPA는 외국인에 대한 체포와 구금이 가능한 경우를 외국인과 영주권자/난민인정자의 경우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의 경우 영장 없이도 공공에 위협이 되거나 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 신원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체포・구금할 수 있다. 반면 영주권자의 경우에는 영장을 반드시 필요로 하고 공공 위협・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체포・구금이 가능하다.    캐나다와 우리나라의 확실한 차이점은 ‘구금 후’에 있다. 일단 외국인/영주권자의 구금이 결정되면 구금 후 48시간 내에 구금 지속 여부에 관한 심사를 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구금지속’ 결정이 내려지면 이후 7일 이내에 또 다시 지속여부 심사가 이뤄지고 그 이후에는 매 30일마다 심사가 이뤄지도록 시스템이 구성돼 있다. 또 구금당사자가 구금지속 결정에 대해 반박할 새로운 사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이전에도 구금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너무도 다르다.

외국인 보호소를 가느니 교도소를 가겠다(?)

이와 관련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한 처우는 교도소 안에 있는 죄수들보다 못하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도소와 이주노동자들이 구금돼 있는 보호소는 ‘갇혀 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며 “그러나 교도소의 경우 일정 기간 구금돼 있다가 사회로 복귀되는 날이 약속이 돼 있다. 그런데 보호소의 경우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어 한번 보호소로 들어간 이주 노동자들은 무기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구금처리 방식에 명문화가 필요하다는 것. 박찬운 교수는 관료들에게 박혀 있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 질책을 가했다. 박 교수는 “이주민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사고가 출입국 관련 법규나 이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의 머릿속 깊이에 깔려 있다”며 “이 같은 사고는 우리나라 헌법은 물론 우리가 가입한 각종 인권조약의 틀에서 생각할 때 유지될 수 없는 비인권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어 “이주민 단속과정에서 헌법 및 국제인권법에 위반되고 비인권적인 방법으로 단속이 이뤄질 경우 이를 사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