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의 힘…‘도가니’ 실제 성폭행범, 7년 만의 중형

인화학교 성폭행 행정실장 64세 김모씨 징역 12년 선고

2012-07-05     신재호 기자

[매일일보] 영화 ‘도가니’의 실제 배경인 광주 인화학교에서 청각장애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교직원이 범행 7년 만에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검찰 구형인 7년보다 5년이 더 많은 12년을 선고하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광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이상현)는 5일 청각장애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범행 목격자를 폭행한 혐의(강간치상 등)로 기소된 인화학교 전 행정실장 김모(64)씨에 대해 징역 12년에 전자장치 부착 10년, 신상정보 공개 10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김씨에 대해 징역 7년에 전자장치 부착 10년을 구형했었다.

“영화 ‘도가니’가 결국 진실 밝히는데 결정적 역할 했다”

장애인 특성 인정한 판결, 향후 유사 사건 좋은 선례 기대

재판부는 “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지나 피해자가 인화학교의 다른 성폭행 사건과 혼동하고 있어 피해 상황과 경위 등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과장된 면이 있지만 범행 장소와 양손을 끈으로 묶었다거나, 당시 상황의 감정, 가해자 등을 일관되게 진술한 점 등에 비춰 장애 내용과 특성을 감안하면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유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해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염원에 따라 지난해 국회는 ‘도가니법’을 개정했다”며 “우월적 지위에 있는 김씨가 보호하고 교육시켜야 할 어린 청각장애인을 외부에 피해사실을 알리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범행한 것은 매우 불량한 죄질”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재판부는 “김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목격자인 장애인을 음료수병으로 여러차례 내리쳐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도 폭행을 계속했다”며 “성폭행 피해자와 목격자 모두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최근까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데다 용서받지도 못하고 있고 범행을 부인하면서 뉘우치거나 반성하지 않고 있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지난 2005년 4월께 인화학교 행정실에서 당시 18세인 청각장애 여학생의 손목을 묶은 채 성폭행하고 이를 목격한 또 다른 학생을 음료수 병으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는 2007년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으로 마지막 재판을 받았던 인물이며 지난해 영화 ‘도가니’ 상영 이후 경찰 재수사로 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2006년에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도가니의 힘’

“영화 도가니가 결국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5일 오전 10시께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 재판부가 검찰 구형량 보다 5년이 더 높은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하자 법정 안은 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피고인석에 서 있던 인화학교 전 행정실장 김모씨는 고개를 숙인 채 휘청거렸다. 재판이 끝나고도 한동안 말없이 움직이지 않던 김씨는 교도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법정을 빠져나갔다. 김씨가 지난 2006년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이번 사건은 어떻게 7년이 지나 유죄가 됐을까? 광주 인화학교성폭력 대책위위회 관계자들은 “영화 도가니의 힘이 컸다”고 입을 모았다. 광주 여성의전화 채숙희 대표는 “전국적으로 도가니 열풍이 분 뒤 당시 성폭행을 목격하고 폭행까지 당했던 목격자가 나왔기 때문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채 대표는 “수사 과정에서 사실확인과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었다”며 “도가니 개봉 이후 목격자가 나타난 것이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 2006년에도 이번 사건으로 입건됐으나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데다 목격자도 없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지난해 영화 개봉 이후 전국이 ‘도가니’ 분노로 들끓면서 당시 행정실 성폭행을 목격했던 학생이 목격자로 나선 것이다. 당시 이 학생은 범행을 은폐하려는 김씨로부터 음료수 병으로 마구 폭행당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자살까지 시도했었다.

재판부도 “성폭행 피해자의 진술이 다소 일관되지 않고 과장된 면이 있지만 범행 장소와 상황을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목격자도 피해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2005년 4월께 행정실에서 청각장애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목격자를 음료수 병으로 마구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대책위 "장애인 특성 반영 판결" 환영

김용목 대책위 상임대표는 “재판부가 검찰 구형인 징역 7년 보다 5년이 높은 12년을 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한 것은 지적장애와 청각장애에 대한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며 “이번 재판이 앞으로 있을 미성년 장애인 대상 성폭행 사건의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용목 상임대표는 인화학교 전 행정실장 김모씨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재판장 밖에서 즉석 기자회견을 갖고 “피해자가 그동안의 억울함을 풀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들이 김씨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징역 12년은 별 것 아닐 수도 있다”며 “하지만 재판부가 검찰 구형 보다 높은 형을 선고한 것에는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피해 여성은 법정에 나와 격한 감정을 표현할 정도로 아직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목격자도 폭행당한 후 자살을 시도하는 등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 등 3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3월20일 성폭력 피해자 8명을 대리해 국가와 광주시교육청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광주지법으로 이송을 결정했으나 원고측 대리인이 항고해 현재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