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으로 시작해 끝까지… 또 우스운 국회 “이래서야”

국회는 파행, 행정부 불성실… 쌀 직불금이 최대성과

2008-10-27     서태석

[매일일보=서태석 기자] 지난 6일 시작된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는 멜라민 파동,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부적절한 선거자금, 대통령 친인척 증인채택, 답답한 대북관계,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 쌀 직불금 문제까지 다양한 현안을 다루면서 국민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특히 수만 명의 공무원들이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보조금을 불법·편법으로 가로챈 사실이 밝혀지고, 그것도 모자라 온통 전·현 정권의 책임공방만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국감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결산해봤다.

이번 국감은 ▲멜라민 식품 문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선거자금 문제 ▲KBS표적감사 논란 ▲YTN사장의 노조 해임 ▲쌀 직불금 파동 등 여러 현안을 국감에서 다뤘다. 이 중에는 멜라민 파동과 같이 여·야가 현안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한 사안도 있었지만 상당수 현안에서 한나라당은 ‘좌파정권’의 실정을,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7개월간의 실정’을 집중적으로 따지면서 이른바 ‘정쟁국감’을 벌였다. 이 때문에 이번 국감은 온통 파행으로 시작해 파행으로 끝났다. 어청수 경찰청장 증인채택 무산을 이유로 야3당 의원들이 국감을 거부하면서 파행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여야 대치는 지난 6일 국감 첫 날부터 시작됐다. 멜라민 사태 확산,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선거자금 문제, 사이버 모욕죄 논란, KBS 표적감사 논란에 대한 여야 공방이 국감장을 뜨겁게 달궜고, 국회 문방위는 올해에도 ‘파행상임위’라는 불명예 별칭을 얻게 됐다. 7일에는 YTN 사태에 대한 상임위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요구하는 민주당 의원들과 이를 거부한 한나라당 의원들 간에 공방이 벌어졌으며, 9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국감 생중계 여부와 방통위 건물 앞 ‘전·의경 배치’ 문제 등을 놓고 국감은 파행을 맞았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는 국감 첫날부터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놓고 여야 간 공방을 벌였고, 국회 정무위는 국무총리실에 대한 국감에서 이명박 정권의 코드인사 및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3개 국책연구기관의 기관장 교체 및 통폐합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잇따른 정쟁으로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라는 국감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여야 내부에서는 위기의식이 확산됐지만 결과적으로 국감의 질은 떨어졌다는 평가다.

여야 간의 충돌 뿐만 아니라, 피감기관인 행정부가 의원들의 자료제출 요구에 ‘나몰라라~’함으로써 국감의 질이 더욱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초선)은 “지난 정부의 흠결 들춰내기로 가다보니 행정부 통제가 잘 안되고 있다”고 비판했고, 같은 당 박선숙 의원도 “요청한 자료를 부처가 성실하게 제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국감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긍정적인 평가도 물론 있다. 이번 국감을 통해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선거자금 문제가 철저하게 파헤쳐졌고, 쌀 직불금 이슈화를 통해 공무원 사회와 정부 지도층의 도덕불감증에 경종을 울리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바로 이 것이다.

쌀직불금 이슈화는 누가 뭐래도 국회가 국감 과정에서 일궈낸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여야는 쌀직불금 불법수령사건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를 오는 11월10일부터 12월5일까지 26일간 열고, 정치인·고위공직자·공기업임원·언론인·고소득전문직업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명단을 우선 공개하기로 합의까지 이뤄내기도 했다.
 
◇ ‘공정택 파문’ 교과위 =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선거자금 파장으로 국감 기간 내내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았다.

공 교육감이 지난 7월 선거에서 선거비용을 대부분 사학이나 학원 관계자들에게 의존한 사실이 상당수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지면서 교과위 국감은 시작부터 ‘공정택 선거자금 관련 의혹’으로 불붙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여야간 공방이 벌어져 국감은 온통 파행으로 치달았다. 중앙선관위를 대상으로 한 국회 행안위 국감에서도 공 교육감 선거비용 문제는 도마 위에 올랐다. 공 교육감이 출석한 가운데 열린 지난 7일 서울시교육청 국감에서는 선거자금 문제에 대해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집중됐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상당수 의원들이 공 교육감이 학원 관계자 등에게 돈을 빌린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8일 서울대학교를 상대로 한 국감에서부터 시작해, 24일 교과부 종합감사까지 공 교육감은 증인으로 채택돼 여야간 충돌은 이어졌다.공 교육감은 선거자금 22억 중 18억원을 사학 및 학원 관계자들에게 받은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일선 학교 교장, 급식업자, 은평뉴타운에 자사고를 세울 예정인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 등에도 격려금을 받아 논란이 끊이질 않았고, 이외에도 친척에게 학교공사 수주토록 하고, 선거비용을 지원받은 사학에 공사비 특혜를 줬다는 등 의혹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바람에. 국감이 끝났지만 검찰 수사와 함께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차분했던 ‘외통위, 국방위, 국토위’ =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와 국방위, 국토해양위원회는 다른 상임위와는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정책 국감이 진행된 상임위들로 꼽힌다.

국회 외통위 국감의 화두는 단연 전임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었다. 한나라당은 6일 통일부에 대한 국감에서 참여정부가 북핵문제를 도외시하고 대북정책을 ‘퍼주기’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반면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 성과를 무시하고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펴는 바람에 남북관계가 경색, 인도적 교류마저 중단됐다고 비판하고 ‘10·4남북정상선언’의 이행을 통해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반박했다.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우려를 표시했지만, 해결책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을 제시했다. 한나라당은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전격 중단하는 등 ‘벼랑끝 전술’을 펴고 있는데 대해 ‘행동 대 행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유연한 사고로 북핵문제를 견인해야 한다고 맞섰다.국회 국방위에서는 군이 추진 중인 ‘국방개혁 2020’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공방이 재연됐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국방개혁 2020’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안보불안을 초래했다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국방획득제도 개선안’이 무기 구입 관련 국방비리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토해양위원회의 14일 서울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뉴타운 사업의 폐해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수도권 규제 완화 발언을 둘러싼 추궁이 이어졌다.

◇ 최대 격전지 ‘법사위’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번 국감 내내 여야간 치열한 공방이 이뤄졌던 곳이다.

법사위는 감사원의 쌀 직불금 감사 결과 은폐 의혹,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의혹, KBS 표적 감사 논란,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처형 김옥희씨 공천비리 사건과 사위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 노무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각종 공기업 비리 사건을 비롯해 여야 간 굵직굵직한 핵심 쟁점들을 두루 다뤘다.이 가운데 최대의 현안은 역시 쌀 직불금 감사 결과 은폐 의혹을 놓고 여야간 벌인 전·현 정권 책임 공방이었다.법사위는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직불금 부당 신청 사실이 밝혀지면서 촉발된 직불금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지난 17일 감사원에 대한 긴급 추가 국감을 실시하고 감사원의 명단 폐기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이날 국감에서 법사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 비공개 결정 한달 전, 김조원 당시 감사원 사무총장으로부터 감사 결과를 사전 보고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여야는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감사원으로부터 직불금 감사 결과를 사전 보고받았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했지만 해석과 평가에 있어서는 의견이 크게 갈렸고, 급기야 국회 국정감사에 전·현 정권의 은폐 의혹이 조사 대상에 포함되기까지 했다.한나라당은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비공개하기로 의결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감사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개선 지시를 분명히 내렸다며, 인수위 시절 관련 사항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로 역공세를 취했다.

정무위원회는 금융위기 확산에 따른 기획재정부의 경제 안정화 정책에 대한 검증 작업을 다각도로 벌였지만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근본적인 한계를 동시에 노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당은 국감 내내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감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의 미숙한 대응과 정책 실패가 금융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며 경제팀 전면 개편과 경제정책의 궤도 수정을 요구했지만, 한나라당은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은 국내 경제 정책보다는 세계적인 금융위기 등 대외 경제 여건 악화에 있다며 현 경제팀의 안정적인 경제 운용을 주문했다.

재정위는 이번 국감 기간 동안 민감한 경제 현안을 폭넓게 다루면서 강만수 경제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낱낱이 분석하는 예리한 지적이 잇따르고, 여야가 한 목소리로 강만수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실물 경제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보다는 정치 논리에 치중된 탓에 여야 공방으로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개선안을 도출하는데는 상당 부분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는 평가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정무위원회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문제, 키코(KIKO) 사태, 산업은행 민영화 등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당은 금산분리 완화는 재벌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시켜주는 친재벌 악법이라고 맞서 여야간 날선 신경전이 벌어졌다.산업은행 민영화 문제에 대해선 한나라당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세계 투자은행 산업 재편 등을 감안할 때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은행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조속한 민영화 추진을 주문했으나, 민주당은 세계적 금융위기로 국내 시장에 유동성 위기가 도래하고 있는 상항에서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맞서 첨예한 공방이 이어졌다.

◇ 얼룩진 기록 ‘문방위’ =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18대 첫 국정감사에서 잦은 파행과 정치 공방으로 얼룩진 기록만 남겼다는 평가다.

문방위는 국감 기간 동안 KBS 사태와 첫 국감 파행을 몰고 온 YTN 노조 대량해고 사건 등으로 국민적 관심사를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여야 간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여부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펼쳐짐에 따라 국감중단 사태가 잇따랐다.이번 문방위 국감은 이른바 ‘YTN 국감’이라고 할 정도로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논란이 큰 이슈로 부각됐다.민주당은 “5공 이후 최대의 언론인 해직사태의 장본인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구본홍 사장을 압박했으나, 한나라당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선임된 구 사장의 지위를 문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KBS를 상대로 열린 국정감사도 여야간 공방은 치열했다. 한나라당은 국감 내내 방만한 부실경영으로 KBS 사장 교체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민주당은 이에 대해 정 전 사장의 해임 절차에 대한 부당성과 함께, 이병순 사장의 취임 이후 탐사보도팀에 대한 인사 등 ‘코드방송’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의 민영화 논란도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았다. 민주당은 “코바코를 경쟁체제로 바꾸면 광고와 제작사가 실제 방송에 영향력을 미치고 방송을 장악할 우려가 있다”고 따졌고, 한나라당은 “코바코는 공공기관 중 수익면에서 전체 9위이지만, 평균 임금은 최상위 수준”이라며 ‘도덕적 해이’를 문제시했다.

고 최진실씨 자살로 불거진 사이버모욕죄 처벌 논란도 관심사로 등장했다. 정부와 여당은 모욕죄 신설을 추진해왔지만 최씨의 사망사고 전까지 여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러나 이후 급반전 되자 문방위 국감 초반 대형 이슈로 등장, 여당 의원들은 모욕죄 추진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 국감의 모든 것(?) ‘복지위’ =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으로부터 시작된 쌀 소득보전 직불금 파문은 농수산식품위원회와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포함한 이번 국감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장이 컸다.

이들 상임위는 쌀 직불금 수령자 명단공개와 이 전 차관에 대한 증인채택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가 여야 간 고성을 주고받는가 하면 야당 의원들이 집단퇴장을 하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감을 치렀다.
복지위의 ‘스타’는 단연 이봉화 전 차관이었다. 국감이 시작될 즈음에 언론을 달궜던 멜라민 파문에 따른 정부의 책임논란이 이번 국감을 장식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 전 차관의 직불금 신청 사실이 드러나면서 멜라민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농식품위에서도 역시 쟁점은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몫인 직불금을 고소득자·고위공직자가 가로채 간 쌀 직불금 사건이었다. 한편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 조현범씨가 부사장으로 있는 한국타이어 국감이 관심을 모았지만 노동부의 국정원과 경찰청에 대한 감사결과 보고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문제가 환노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