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계속되는 식언, 박근혜가 시켰나

[진단] 차별화 예상 뒤집고 ‘MB보호’ 나선 새누리당의 속내

2013-07-27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 김경탁 기자] 새누리당이 수상하다. 대표적 친박(박근혜)계로 알려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잇따른 식언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데, 그 식언의 내용들이 주군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명박 대통령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시발점은 ‘만사형통’ 이상득 전 의원 비리와 이명박 대통령 대선 자금 의혹의 연결고리로 알려진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이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을 전후로 불체포특권 등 국회의원의 특권 포기를 약속한 바 있다.이한구 원내대표는 그 첫 시험대였던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밝혔다가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만류가 나오자 사퇴의사를 번복했다. 사퇴할 사안이 아니라는 지침(?)이었다.이상한 점은 사퇴 번복에 대해 소나기 같이 쏟아지던 비판 여론이 한 풀 꺾이자마자 이 원내대표가 내놓은 것들이 19대 국회 첫 개원을 위한 여야간 합의사항 관련 핵심 내용들에 대한 약속 번복이었다는 것이다.박 전 위원장이 ‘나도 피해자’라고 했던 민간인불법사찰 국정조사 추진에 대한 어깃장이 나오더니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 퇴임 후 사저부지 매입과정을 둘러싼 배임 의혹에 대한 내곡동 특검에 대한 물타기 시도까지 나왔고, 현 정부의 무리한 언론장악에서 비롯된 언론파업 청문회도 성사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과 원내대표직 사퇴 번복 기점으로
불법사찰 국정조사·내곡동 특검·언론파업 청문회 약속 파기
친박계로 구성된 새누리 지도부가 MB정권 치부 육탄방어…
이명박-박근혜는공동운명체란 인식? 정권 재창출 위한 밀약?

당초 근소한 패배가 예상됐던 19대 총선에서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활약에 힘입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고 친박(박근혜)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새 지도부 선출이 이어지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명박정부의 레임덕이 심화될 것을 예상했다.18대 국회에서 압도적 숫적 우위를 지켜온 친이(이명박)계가 몰락하고, 그 공백을 이명박 정부 기간 내내 집권세력(친이계)과 반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온 친박계가 세를 잡은 이상 현 정권과의 차별화가 본격화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특히 현 정부 최고위층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박근혜 전 위원장이 ‘피해자’를 자처해온 만큼 19개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집중 추궁에 나설 것이라는 게 상식적인 관측이었다.여론조사에서 “박근혜의 집권은 정권 재창출이 아닌 정권교체”라고 생각하는 숫자가 적지 않을 만큼, 지난 4년여 기간 동안 집권여당의 일원이면서도 야당 행세와 역할을 이어온 친박계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MB정권 보위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러나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러한 모든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해 물타기에 나서는 것은 물론, 자신들과는 직접적 관계도 없는 이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과정에 대한 특검 추진에 대해서도 어깃장을 놓고 있다.

‘MB 보호’라는 한 방향

지난 7월11일 온 나라를 뒤집어놓은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의 경우 그 원인을 놓고 누가 어떤 표를 찍었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무기명 투표라는 특성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난무했다.특권포기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거부감 때문이라는 해석, 절차적 부적절함에 대한 정 의원의 호소가 먹혔다는 해석 그리고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압박에 대비한 민주통합당의 전략적 반대표결이라는 해석 등이다.그러나 부결 이후 흘러온 정치적 상황들을 나란히 세워놓고 다시 그날의 부결 이유를 따져보면, 일련의 가설 위에 이명박 대통령 대선자금 수사 가능성이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이 추가될 필요가 있어보인다.이 대통령 대선자금 수사의 핵심 연결고리인 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현장에 참석하지 않았던 박근혜 전 위원장이 이한구 원내대표의 사퇴의사를 번복시킨 후 이 원내대표가 연이어 내놓은 것들이 한결같이 ‘MB 정부 보호’라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19대 국회 첫 원구성을 위한 여야 합의 중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대법관 임명 동의안 처리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조사 △내곡동 사저 의혹 특검 △언론파업 청문회 등 4가지로, 모두가 이 대통령의 재임 중 혹은 퇴임 후 안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우선, 김병화 후보자의 26일 자진 사퇴에 따라 8월 초 처리가 예상되는 대법관 후보자 3인에 대한 임명동의안의 경우를 보자. 민주통합당이 후보자들에 대한 적극적 검증에 나선 것과 달리 새누리당은 후보자 보호에 나섰고, 일단 통과시키고 보자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현재 총 14인으로 규정된 대법관 중 이번에 퇴임한 4인을 제외한 전원이 이 대통령이 임명했다. 물론 3권 분립 원칙에 따라 ‘제청권자’는 다르다지만 이번에 추가 4인까지 이 대통령이 임명하면 14인 전원이 ‘MB표 대법관’이 되는 셈이다.대법관의 임기는 5년 단임인 대통령보다 1년이 긴 6년으로, 2008년 3월 임명된 양창수 대법관이 가장 잔여임기가 짧아서 2014년 퇴임 예정이다. 즉, 이 대통령 퇴임 후 예상되는 사법처리의 최종심을 모두 ‘MB표 대법관’들로만 구성된 대법원이 맡게 된다는 말이다.대법관 취임을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망신(?)준 민주통합당 등 야당과 자신을 변호해준 새누리당 양자의 입장이 법정에서 대립하게 됐을 때, 대법관들이 ‘법과 양심’이라는 기준에만 맞춰 공정한 판결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계속되는 물타기…밀약 있나?

차기 정권으로 넘어간 이후의 문제는 차치하고, 현 정권 치하에서 국회가 처리해야할 사안에 있어서도 새누리당의 입장은 ‘MB 보호’라는 목적성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당초 약속대로라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이미 지난 5일 구성되고 가동에 들어갔어야 하는 민간인 불법 사찰 국정조사의 경우, 조사 범위를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 넓히자는 새누리당의 주장으로 인해 현재까지 출범 시점조차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명박정부의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전 정부 때리기로 일관해온 새누리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에 관한 특검에 대해서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부지 매입까지 살펴보자는 주장을 새롭게 내놓으면서 파국을 유도(?)하고 있다.언론사 파업 관련 청문회 역시 일정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련 상임위원회인 국회 문방위가 ‘민주당 대표실 도청 사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이 지목해 최소 득표로 상임위원장이 된 한선교 위원장의 자격 논란으로 파행을 겪고 있는 것이다.민주당 대표실 도청사건은 한선교 위원장과 KBS가 일종의 ‘공범’격으로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방송사 파업의 원인인 MB정부의 방송장악과 맞닿아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방송파업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야할 사람이 해당 상임위 의사봉을 잡고 있는 셈이다.일련의 사안들을 각각 개별적으로 보면 사안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항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전체 그림을 놓고 조망해보면 새누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비타협적 태도가 가리키는 방향은 “이명박정부와 새누리당은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여실히 보여준다.정치권 속담에 “현직이 누군가를 차기로 만들 힘은 없지만 누군가를 되지 못하게 할 힘은 있다”는 말이 있다. 87년 대선 이후, 대선 과정에 현 정권 때리기를 통한 적극적 차별화에 나섰던 여당 후보 전원이 낙마해 정권을 잃었던 전례를 상기하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하지만 ‘박근혜 대세론’의 큰 축이 “이명박과 박근혜는 같은 편이 아니다”라는 이미지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친위대인 새누리당 지도부의 최근 태도는 상당히 의외라서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과 박 전 위원장 사이에 ‘밀약’이라도 있었나 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