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담시티의 슈퍼맨
공감과 위로에 대한 두 철수씨 이야기
2013-07-27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 김경탁 기자] 민주통합당 대선 예비후보인 손학규 상임고문이 안철수 서울대 융학과학기술대학원장을 ‘배트맨’에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안 원장에 대해 사회 병폐라는 바이러스를 치유해줄 백신이나 ‘정의의 사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설명 과정에 나온 말이다.개인적으로는 안철수라는 인물의 대중적 이미지가 배트맨보다 슈퍼맨에 가깝다고 보지만 ‘영웅’을 갈구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슈퍼맨의 메트로폴리스보다 배트맨의 고담시티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손 고문의 비유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갖게 된다.무기력하고 부패한 공권력, 활기 없이 늘 지쳐 보이는 사람들의 축 쳐진 어깨 그리고 지금보다 미래가 나을 것이란 희망이 부재해 늘 어두운 고담시티는 MB시대 대한민국 사회와 어딘지 많이 닮아 있다.사실 ‘캐릭터 이미지’면에서 안철수는 어려서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와 고독과 어둠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브루스 웨인(배트맨)보다 양부모지만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다재다능한 모범생으로 자라난 클라크 켄트(슈퍼맨)에 가깝다.그리고 고담시티에서 배트맨의 활약은 악순환에 빠진 사회구조를 바꾸고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무언가보다 당장 악당들로부터 안전을 위협받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구하는 소소한 것이 전부인 반면 사람들이 안철수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슈퍼맨에 가깝다.지구정복을 노리는 악당을 막아낼 정도의 막강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스스로는 지구정복을 꿈꾸지 않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모순적 자아’를 가진 메시아가 되어줄 선량한 슈퍼맨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희망 그리고 공감
문제는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들이 ‘슈퍼맨’이 등장했다고 해서 해결 가능한 것이냐는 점. 지배층의 사적욕망을 노골화시킨 MB시대로 인해 쌩얼이 드러나버린 대한민국에 과연 희망이 있기는 한지, 온화한 얼굴로 미소를 띠고 있는 슈퍼맨 안철수에게 기대를 걸기에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속병이 너무 깊고 지독하지 않느냐는 의문 말이다.그래선지 SBS TV <힐링캠프>에 출연한 슈퍼맨 안철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공감’과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철수씨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다.‘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연재(2011.7.23.~2012.4.8)됐던 웹툰 <김철수씨 이야기>의 주인공 김철수씨는 모든 면에서 안철수와 정반대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로, 지구 종말(혹은 그에 가까운 파국)을 가져올 인물로 예고된다.3부 연재 재개가 무기한 지연되고 있는 이 웹툰이 현재까지 보여준 내용은 김철수씨가 태어나면서부터 유년기까지 겪은 절대 불행 혹은 절대 고독에 대한 묘사로, 고문과 구타가 일상화되어있던 70년대 유신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국군에 의한 국민 학살’로 요약되는 5·18 광주의 비극적 거리가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한다.그런데 주인공 김철수씨로 하여금 세계의 종말 혹은 그에 가까운 파국을 가져오도록 만든 근본 원인은 엄혹한 시대 환경 자체가 아니라 세상 누구와도 공감하지 못하고 누구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했다는 절대고독에 있었다.그리고 단 한 사람이라도 김철수씨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위로했다면 전 인류적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복 강조하는 작가의 외침은, 대한민국을 억누르고 있는 사회구조적 절망에 대한 대책이 ‘공감(Empathy)'이라고 강조하는 안철수의 주장과 다시 연결된다.그런데 ‘공감과 위로가 있었다면 인류적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김철수씨(작가 혹은 화자)의 외침에 전율·공명하던 필자가 ‘공감으로 사회구조적 절망을 치유할 수 있다’는 안철수 원장의 거의 유사한 주장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평소에도 메시아보다 안티히어로에 더 끌리는 개인적 취향 때문일까? 아무튼 이상하고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