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식 살해하고 행복을 꿈꾸다니’
가족 버리고 사랑 택한 前 대학교수 ‘잔혹사’

내연녀에 ‘콩깍지’, 이혼 요구하다 살인… 일본 도피 9년 만에 검거

2008-11-03     홍세기 기자

아내 목 조르고 아들은 비닐 씌워 질식사
사건 은폐위해 불 질러 사체 손괴후 도주

[매일일보 = 홍세기 기자]


사랑 때문에 ‘대학교수’라는 보기 좋은 명함을 버린 것은 물론, 심지어 가족까지 살해하고 ‘불법체류자’로의 삶을 택했던 ‘그들만의 로맨스’가 9년 만에 끝이 났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26일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후 내연녀와 일본으로 출국, 9년간 도피생활을 해 온 전직 대학교수 배모(45)씨를 살인 및 사체손괴 등의 혐의로, 그의 내연녀 박모(38)씨를 범인 도피 혐의로 각각 구속했다.

경찰조사결과 배씨는 이혼문제로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다 자식까지 참혹하게 살해하고 사건은폐를 위해 집에 불까지 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배씨는 99년 12월 31일 오전 7시께 서울 노원구 중계동 자신의 자택인 S아파트에서 아내 박모(당시 32세)씨와 이혼문제로 1시간여 동안 부부싸움을 벌인 끝에 목 졸라 살해했다.

배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배씨는 옆방에서 자고 있던 아들(당시 6세)를 집밖으로 데리고 나와 놀이터 등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 오후 3시경 귀가해 아들을 숨진 아내 옆에 눕혔다. 그리곤 머리에 비닐봉지를 쓰면 잠이 더 잘 온다고 아들을 꾀어 질식사 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그는 범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체 위에 이불을 덮고 식용유 등을 뿌려 불을 지르는 등의 잔혹함을 보였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조사결과 배 씨는 범행 다음 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츠쿠바시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던 내연녀에게 부인과 아들을 살해한 사실을 털어 놓았다.

이후 3~4일 뒤 내연녀와 함께 국내로 들어와 아파트 대출과 등으로 1억3,000만 원가량의 자금을 마련해 같은 달 11일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최근까지 도피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불체자 신분으로 교통사고 ‘덜미’

당시 경찰은 약 한달 뒤인 2월 10일 배씨 등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전국에 수배조치를 내렸으나 이미 배씨와 그의 내연녀 박씨는 일본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외국인등록증을 위조해 자신들의 신분을 감춘 채 9년간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식당 종업원, 주방장 등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최근에는 일본 후쿠오카현 고쿠라시에서 타인 명의로 소규모 프랜차이즈 식당을 차려 운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당시 이들의 해외도주 사실을 눈치 채고 이후 인터폴과 공조해 이들의 행적을 추적해 왔다. 그러나 이들 내연커플의 도피생활은 9년이란 세월에 비해 ‘의외로’ 허무하게 끝이 났다.

배씨가 지난달 2일 일본 나고야에서 교통사고를 낸 탓에 현지 경찰에 의해 외국인등록증 위조 및 불법체류 사실이 발각된 것.

현지 경찰에 체포된 배씨 등은 범죄인인도협약에 따라 같은 달 24일 국내로 송환되면서 이들의 도피생활은 영원히 종지부를 찍었다.

“난 조교, 넌 학생” 눈 맞아

경찰에 따르면 배씨의 그의 내연녀 박씨는 지난 92년 대학원 조교와 입학 준비생 사이로 처음 만났다.

그로부터 2년 뒤인 94년 박씨가 일본에서 유학 중일 당시 배씨가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서 본격적인(?) 애정관계가 시작된 것.

이후 수년간 내연관계를 유지해오던 중 배씨의 외도사실이 아내에게 발각된 후 배씨는 아내에게 줄기차게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의 이혼요구에 부인은 이를 거부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 부부는 심각한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배씨는 경찰에서 “6년간 만난 내연녀와의 사이를 눈치 챈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며 “도피생활을 하는 내내 마음이 너무 무겁고 후회스러웠다. 내가 왜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됐는지 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연방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홍세기 기자<hong@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