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소매치기 할머니 정체를 밝혀라’

소매치기 인생 47년, ‘호적 2개’ 악용해 붙잡힐 때마다 이름 번갈아 사용

2008-11-07     류세나 기자

A 이름 집행유예 기간엔 B 이름대고 계속해서 범행
전과 30범 ∙ 감옥살이 30년…짜릿한 손맛 못 잊어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이중호적을 이용해 47년간 소매치기를 일삼아 온 60대 할머니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지난달 30일 남대문시장 일대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엔화 등을 소매치기한 혐의(절도)로 조모(여ㆍ64)씨와 김모(여ㆍ42)씨를 구속했다. 그런데 이들을 조사하던 경찰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앉아있는 조모씨가 몇 년 전 똑같은 혐의와 수법으로 입건됐던 김△△씨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닮은 얼굴이라고 하기엔 너무 똑같고, 쌍둥이라 하기에는 혈연관계를 나타내주는 이들의 성이 달랐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조씨를 상대로 집중 조사에 들어갔고 이중호적자 임을 밝혀냈다. 경찰에 따르면 행정착오로 두 개의 호적을 갖게 된 조씨는 이 같은 점을 악용, 경찰에 붙잡힐 때마다 중형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번갈아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결과 조씨는 ‘조○○’와 ‘김△△’라는 두 개의 호적을 갖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연인 즉 이렇다. 6 25 당시 부모를 잃어버린 조씨는 이모네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힘들고 가난하던 시절이었던 터라 입 하나가 늘어난 게 못마땅했던 이모가족들은 조씨를 천덕꾸러기인양 대했다. 이에 참다못한 조씨는 17세 때 무작정 가출을 했고, 먹고 살기 위해 소매치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버스 안내원으로 취직한 조씨는 같은 회사 동료와 사랑에 빠졌다. 7~8때 부모와 헤어진 탓에 그때까지 자신의 이름이 김△△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주민등록번호를 몰랐던 조씨는 혼인신고를 위해 조○○이름으로 새로운 호적을 얻었다. 결혼을 하고 자녀까지 낳은 조씨는 1970년, 전쟁통에 잃어버렸던 부모를 만나 원래의 이름인 김△△ 호적을 되찾았다. 하지만 담당행정관의 실수로 조○○ 이름의 호적이 말소되지 않아 조씨는 김△△, 조○○ 등 두 개의 호적을 갖게 됐다. 그때까지도 어린 시절 익힌 ‘손맛’을 잊지 못하고 소매치기꾼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있던 조씨에게 때마침 얻어진 ‘이중호적’은 신이 내린 선물과도 같았다.

“에이…설마 할머니가 소매치기?”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오래 전부터 남대문 일대에서 ‘소매치기’로 유명세를 떨쳐왔다. 남대문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탓에 타인과 부딪쳐도 아무런 오해를 받지 않는다는 이점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한번의 ‘작업’(?)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빈번하게 조씨의 먹이사냥터로 선정돼 왔다. 또 피해자가 뒤늦게 소매치기를 당한 사실을 알아채더라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고령의 할머니’라는 점은 조씨가 용의선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최대의 장점으로 작용했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조씨는 소매치기 세계에서 ‘상당한 실력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숭이가 나무에서 너무 자주 떨어진 것일까. 그의 수감史는 ‘상당히’ 화려했다. ‘백따기’ 47년 세월 중 전과기록 30범에 감옥에서 지낸 시간도 무려 30년에 달한다. 그중 3년 반은 일본 원정 소매치기 중 적발돼 일본 철창에서 지냈다.     

하지만 30년의 수감생활도 조씨를 새사람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오히려 ‘교도소’는 조씨로 하여금 더욱 고급기술을 익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부방’ 역할을 했다. 소매치기 기술이 있는 수감자들과 어울려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고 출소이후의 범행을 계획하기도 했던 것.조씨는 자신의 화려한 손놀림을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과시했다. 한창 ‘작업’을 벌이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된 조씨는 조○○ 이름으로 처벌을 받고 한국으로 추방됐다. 다음엔 김△△ 이름으로 여권을 만들어 원정을 떠났다가 또 다시 적발, 추방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부터 일본이 외국인 출입국자에게 지문을 찍도록 하면서 원정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주무대인 남대문으로 컴백, 실력발휘를 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日원정 때도 이중호적 악용해 범행

조씨의 이 같은 ‘이중호적을 이용한 감형 작전’은 남대문 경찰서 오연수 경위에 의해 들통 났다. 이에 대해 오 경위는 “경찰서를 여러 차례 들락거렸던 조씨가 자신의 이름을 때로는 조○○로, 때로는 김△△로 말했던 게 생각나서 확인해보니 이중호적자였다”며 “형을 적게 살 목적으로 조○○가 집행유예 기간일 때 경찰에 체포되면 김△△ 이름을 대는 식으로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조씨의 전과 기록은 조○○라는 이름으로 24범, 김△△라는 본명으로 6범이다.경찰은 이중호적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한 위법성과 처벌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만 적당한 기준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다. 오 경위는 “이중호적을 범행에 이용한 전례가 없어 마땅히 처벌할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중호적인 것이 적발됐더라도 본인이 직접 말소시키지 않는 이상 강제로 호적을 없앨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한편 현행범으로 현장에서 붙잡힌 조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붙잡힐 당시 조씨의 몸에서 피해자의 지갑이 발견되지 않고 인근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던 것.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당시 조씨는 범행을 위해 바람을 잡고 지갑은 함께 작업한 김모씨가 갖고 달아났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조씨가 검거된 후 인근에서 혼자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다 붙잡힌 김씨는 현재 범행 일부를 시인한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