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거짓말이 내 아들 죽였다”

인간광우병으로 자식 잃은 英 크리스틴 로드씨의 ‘경고’

2008-11-14     류세나 기자

“유해 ∙ 값싼 광우병 쇠고기 학교급식이 아들 죽여”
영국정부나 한국정부나…난처할 땐 ‘모르쇠’ 일관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인간광우병(vCJD·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코브 병)으로 사망한 앤드류 블랙(당시 24세)의 어머니 크리스틴 로드(51)씨가 인간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방한했다.

(사)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등 국내 시민사회단체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로드씨는 지난 12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에서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처음 만나는 낯선 해외 취재진들 앞에 떨릴 법도 했으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엄마’ 크리스틴씨의 어조는 분명하고도 강했다.

“내 아들은 마지막 4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눈을 감았습니다. 앤드류는 고통 때문에 침대가 흔들리도록 몸부림쳤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기 때 안고 달래줬던 것처럼 아들을 꼭 안아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인간광우병’ 판정을 받고 3달이 지난 12월, 아들은 시력과 청력을 완전히 잃고, 웃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심지어 가족들까지 알아보지 못했죠. 건강한 젊은이였던 내 아들은 정부가 묵인한 인간광우병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담담한 어조로 광우병의 폐해를 설명해나가던 크리스틴씨는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설명하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인간광우병, 세계적 ‘현재진행형’ 문제”

크리스틴씨는 이날 간담회에서 “인간광우병에 대한 영국 정부의 거짓말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며 “영국정부는 광우병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축산업자 ∙ 정부의 이윤을 위해 이 같은 사실을 은폐, 유통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인간광우병은 내 아들에게만 발생한 ‘개인적인’ 병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가족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전세계적인 ‘현재진행형’ 문제”라고 주장했다.앤드류의 어머니 크리스틴 로드씨는 영국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아들의 죽음 이후 인간 광우병 전문가이자 운동가가 됐다. 아들의 죽음이 크리스틴씨를 ‘인간광우병 투사’로 만든 것.크리스틴씨는 “아들의 사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80~90년대 영국정부가 광우병이 인체에 치명적이며 인간의 식품체계를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은폐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며 “특히 영국정부는 소의 척수, 소의 사체에 남겨진 부스러기 등 광우병 위험성이 가장 높은 물질로 만든 ‘기계적 회수육’을 학교급식, 유아식품 등에 사용해 인간의 식품체계에 침투하도록 허용했다”고 주장했다. 광우병 위험물질이 섞여있는 학교급식을 5세 때부터 먹은 자신의 아들이 잠복기를 걸쳐 24세의 나이에 숨지게 됐다는 게 그녀의 논리다. 또 그녀는 “광우병에 감염된 소의 태아에서 뽑아낸 혈청으로 만들어진 아동용 백신(디프테리아, 파상풍, 소아마비)을 접종한 아이들도 인간광우병에 감염됐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꿈 많던 언론인, 발병 6개월만에 숨져

현재 영국은 총 167명을 인간광우병 피해자로 공식인정하고 있다. 이중 앤드류(163번째 사망자)를 포함한 164명은 사망했고, 3명만이 생존해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3월 체중감소, 균형감각 상실 등 이상증상을 보이기 시작해 병원 진단을 받은 앤드류는 같은 해 6월인간광우병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6달이 지난 12월 16일 영국포츠머츠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앤드류는 기자인 엄마를 보고 자란 탓인지 어릴 때부터 언론인을 꿈꿔왔다. 17세 어린나이부터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 연출을 맡아 ‘언론계의 전설’로 불리는 등 장래가 촉망되는 언론인이었다. 이후 앤드류는 BBC방송국 PD로 입사했지만 날개를 채 펴보지도 못하고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크리스틴씨는 “앤드류는 아주 밝고 똑똑하며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젊은이”였다고 회상하며 “정부가 안전하다고 말했던 그 음식을 먹고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게 됐다”고 흐느꼈다.그녀는 이어 “내 아들은 자라나는 동안 아주 건강해 보였지만 아이의 몸속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인간광우병, 그리고 모든 뇌세포를 죽게 만드는 프리온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며 “인간광우병의 위험은 현재진행형이고 전 세계적인 문제지만 세계적인 전문가들도 아직 언제, 누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인지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의 구체적 정보 알 수 있어야…

이를 위해 크리스틴씨는 우리들이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한 충분한 교육과 정보만이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녀는 “나 외의 또 다른 어머니가 인간광우병에 걸린 자식을 지켜보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며 “내 아이는 이미 죽어 손을 쓸 수 없지만 전 세계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구체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얻어 아이들을 위험에서 보호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과연 무엇이 평범한 어머니였던 그녀를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의 위험을 알리는 데 앞장서게 만든 것일까. 머나먼 한국 땅까지 와서 이처럼 목소리 높여 외칠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이를 잃은 지 채 1년이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이와 관련 크리스틴씨는 “앤드류는 침대 위에 누워 죽어가면서도 ‘내가 이렇게 인간광우병으로 죽어가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그것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 ‘이런 일이 결코 다시는 일어나서 안 된다’고 말했다”며 “아이의 부탁이 슬픔을 딛고 이 자리에 서서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릴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아들의 죽음 이후 크리스틴 로드씨는 인간광우병의 위험을 알리고 영국정부의 책임을 묻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차례의 사과도 받은 적이 없다. 책임이 없다거나 관심 없다는 태도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틴씨는 내달 16일 아들의 기일에 맞춰 고든 브라운 총리를 찾아가 공직자들의 책임을 촉구하는 청원을 내고, 이후로도 영국의 각 대학, 지역 등을 돌아다니며 지속적인 ‘인간광우병 진실규명 캠페인’을 벌여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가족이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겪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어머니 크리스틴 로드가 인간광우병의 위험을 알리고 아들의 죽음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