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순번 낙찰되면 급전 챙기고 뒷번호는 수익 ‘짭짤’
‘破契’ 피해 예방 불가능…노출 꺼려 사후처리 ‘골치’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다복회’ 사건에서 드러난 ‘강남 귀족계’의 파국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돈 굴릴 데가 마땅찮은 현대판 귀족부인들에게 ‘계(契)’는 수익률이 높아 쉽게 눈을 돌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따금 계가 깨지기도 해 꼭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되지만은 않는다. 사고 위험성이 상존하는데도 상류층 부인들은 왜 이 같은 ‘머니게임’에 빠져드는 것일까. 이유는 낙찰계가 품고 있는 ‘+α’ 시스템 때문이다. 계원들은 경쟁 입찰에서 낙찰가를 제대로 써내면 소액을 내고도 다른 계원들보다도 먼저 불입한 곗돈의 수십배에 달하는 목돈을 챙겨갈 수 있다. 여윳돈을 넣는다면 후순위를 선택해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는다. 여기서 계주의 역할이 막중한데, 아무나 계주가 될 수는 없다. 우선 충분한 재력을 갖추고 있어야 계원 모으기가 용이하다. 돈을 맡겨도 떼먹지 않을 정도의 재력이 있고, 부인들 사이에서 ‘신용도’를 다진 인물이어야 곗돈을 빠짐없이 모을 수 있다. 다복회 계주 윤모씨의 경우처럼 부유층이나 정·재·법조계, 연예계를 망라하는 두터운 인맥을 갖추고 있어도 가능하다.강남을 중심으로 고수익을 보장하는 ‘낙찰계’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활개치고 있다. 심지어 사무실을 운영하는 이른바 ‘곗방’들도 수백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가 만난 강남 모 낙찰계의 계주 박모씨(68·서울 서초구 양재동)는 이렇게 전한다. “월 1000만원씩 36개월짜리를 30여명이 돌리는데, 급전이 필요한 계원은 상위순번을 낙찰받기 위해 낮은 가격을 써내 곗돈을 먼저 타갈 수 있다. 몇 달간 수천만원만 불입하면 2억~3억원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여유자금 굴릴 곳을 찾는 상류층은 하위순번을 받아 3년 뒤 두 배 가까운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박씨는 강조했다. 하지만 가끔씩 사고를 내는 계가 있다고 박씨는 시인했다. 계원을 잘못 받아 곗돈을 붓지 않고 연락을 끊을 경우 계주가 이를 채워 넣거나, 자금관리능력이 부족한 계주의 경우 돈을 챙겨 달아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주들은 계원을 가려서 영입하고, 계주도 아무나 할 수 없다고 한다. 계주들은 대부분 강남의 건물주가 많다. 재력을 담보로 계원들이 곗돈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최근 떠들썩한 다복회도 계주의 부실한 관리능력 탓이라고 박씨는 지적한다. 눈앞의 돈맛에 길들여진 계주가 사채업자를 계원으로 잘못 영입해 ‘만세’를 부른 전형적인 사건이라는 것. 이런 ‘파계(破契)’ 사건은 강남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속 잣대가 애매해 사법당국도 난처하다. 사전 예방은 불가능하고, 사후 처리도 골칫거리다. 계원들 대부분이 신분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박씨는 “그래도 낙찰계 잘 나가요. 건설경기가 얼어붙어 부동산엔 투자 가치가 없죠. 주식은 폭락하고 펀드 가입도 위험한 상황인데, 강남 아줌마들의 여윳돈이 어디로 가겠어요.” 다복회 사건에도 불구하고 불황의 골이 깊게 패이고 있는 요즘, 강남 귀족계원들은 여전히 돈 세는데 분주하다고 박씨는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