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명 “돈아...돈아...돌아”

2004-01-08     파이낸셜투데이
군납비리사건 정치권·방산업체 확대 파문 막후
심은하와 염문 정호영연루 ‘방산게이트’는 빙산의 일각
국방부, 비리연루 업체 우수업체로 선정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파헤치고 있는 군납 비리 사건이 정치권과 방산업체로 확대되고 있다.
유보선 국방부 차관이 무기거래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최근 구속된 정호영씨가 군납업체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그러나 유 차관은 지난 16일 국방부 출입 기자들과 만나 육군 소장으로 전역한 뒤 한동안 정씨 소유의 군납업체인 H통신사에서 감사로 근무한 적이 있으나 실제로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유 차관은 “우연히 알게 된 정씨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고 98년 말부터 2000년 중반까지 H통신사의 감사로 재직한 바 있다. 하지만 특별히 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보수는 받지 않고 교통비만 얻어 썼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과 관련해 “정씨가 2년 동안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았다. 나는 기갑장교 출신이라 획득 업무를 전혀 몰랐다”며 군납 로비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일축했다.

특히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현재 수사중인 저고도 대공포 오리콘포 성능개량 사업과 관련해 “정씨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들어갔으며, 그 때 이미 오리콘포 성능개량 사업이 진행중이었다”고 유 차관이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H통신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다른 예비역장성들은 군을 드나들며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88년 국방부 국외정책과장(현 미주정책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정씨가 고교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찾아온 것을 계기로 알게됐다. 정씨는 나뿐만 아니라 군 인사들과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때 톱스타 심은하씨와 결혼설이 오갔던 정호영씨는 지난 98년부터 2002년까지 23차례에 걸쳐 오리콘포 성능개량사업과 관련, 이원형 전 국방품질관리소장에게 1억3,1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업계에서는 정씨가 그간 명문 서울고 동문, 정·관계 인사들과 폭넓은 친분을 유지한 점으로 보아 ‘정호영 방산게이트’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

경찰은 군납비리의 ‘고리’로 추측되는 정씨의 계좌추적에 힘을 쏟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00년 여배우 심씨와 결혼을 발표했다가 파혼하면서 세간에 알려진 인물.  서울고, 美 시카고대, 일리노이공과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신규사업팀장 등을 거친 뒤 지난 87년 한국레이컴의 전신인 케이원전자를 만들었다. 

무기분야에 뛰어든 것은 90년대 초반으로 군용 레이더와 전자광학설비 등을 전문 생산하면서 91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됐다. 그후 한국벨통신과 한림에스티 등의 업체를 추가로 설립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찰의 수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군납업자들의 설명이다.
오리콘포 개량사업자로 선정돼 500억원 이상의 물품을 납품했고, Y사 역시 최근 수년간 수입품보다 10배가량 비싼 통신 케이블 수백억원어치를 군에 제공해 온 점으로 미뤄 로비가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M사는 지난해 어뢰공격 방어장비를 기한 내에 군에 납품하지 못해 13억원의 지체금을 부과 받기까지 했으나 최근 국방부에서 우수 군납업체로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금품 로비의 덕분으로 보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통상 무기구매는 군사비밀로 처리되므로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군 관계자들에게 업자들이 집중적으로 로비를 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정씨의 실. 차명 계좌 10개의 거래 내역을 집중 추적하고 있다. 계좌에서 2~3명의 전. 현직 군 고위 관계자에게 돈이 유입된 사실이 나와 이 돈의 성격을 확인 중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정씨는 천용택 전 국방부 장관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또 2조원대의 아파치 헬기 납품을 추진했던 A사 대표 이씨가 다른 군 관계자에게도 금품을 제공했는지도 캐고 있다. 국방을 담보로 돈을 챙긴 군 관계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웃기는 얘기는 국방부와 국군기무사령부가 무기도입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방산업체를 우수업체로 선정했다가 취소하는 소동을 빚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지난 17일 국방회관에서 열리는 조영길 장관과 방산업체 간의 연례 방산 간담회를 앞두고 10개 방산업체를 우수업체로 선정했었다.

그러나 총리 표창업체인 Y사(경영혁신)와 국방장관 표창업체인 E사(우수보안업체)가 이번 군납비리 사건에 연루돼 표창이 전격 취소된 것이다. 

Y사와 E사는 두 곳 모두 대표가 이원형 전 국방품질관리소장(예비역육군소장)에게 각각 3400여만원과 1200여만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지난 12일과 16일 새벽 경찰에 각각 긴급 체포되었기 때문. 

어찌 보면 정보의 핵심인 국방부가 경찰수사 사항도 파악을 못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12월 초 방산업체 대표들로 구성된 방산진흥회로부터 우수업체 후보들을 넘겨받아 선정작업을 벌였다”며 “선정과정에서 경찰수사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E사는 장성급 2명을 포함, 예비역 장교 11명이 근무 중이며, 지난해 국방부로부터 연구개발대상 사업자로 선정돼 음향탐지기와 수중감시 체계, 저고도 레이더, 무인항공기 사업 등 3개 분야 사업을 맡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무기거래 스캔들로 이원형 전(前)품질관리소장이 구속되고 천용택 열린우리당 의원이 소환통보를 받은 것과 관련해 군납비리 근절책을 마련키로 했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군사정관계관 회의를 긴급 소집해 국방획득업무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근본적인 부조리 예방 및 근절 대책을 강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