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은 ‘○○구 휴대폰 바바리맨’의 ‘음란 노다지’

서울 모 구청 환경미화원, 폐기물접수증에 적힌 여성번호로 음란 영상전화 ‘덜미’

2008-11-21     류세나 기자

6개월간 178명 여성에게 490여 차례 걸쳐 ‘따르릉’
피해여성 가족 ‘내연남 소행’ 오인 가정파탄 위기도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구에 사는 권모(35) 주부는 지난 6월 잊고 싶은 ‘억울한’ 경험을 했다. 같은 달 10일 밤 9시경 시아버지, 남편, 자녀 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권씨의 휴대전화로 ‘발신자표시제한’의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전화를 받은 그 순간 권씨와 그의 가족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대폰 너머로 누군지 알 수 없는 남자가 자위행위를 하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 깜짝 놀란 권씨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지만 며느리의, 엄마의 내연남 소행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가족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남편과의 불화로 수개월간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구의 또 다른 주부 임모(38)씨 등 수십 명의 비슷한 또래여성들도 비슷한 시기에 이와 똑같은 일을 겪었다. 휴대전화의 보편화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국적으로 휴대전화 사용인구가 늘고 있는 가운데 ‘휴대폰 바바리맨’이 특정지역에만 자주 등장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성적취향의 여성은 ‘○○구 30대’였던 것일까. 이 사건의 내막을 <매일일보>이 취재했다. 
 

지난 10월 ‘○○구 휴대폰 바바리맨’ 사건을 접수받은 서울 강서경찰서 사이버범죄수사팀은 약 한달 반간의 통신∙출장 수사 등을 통해 피의자 한모(50ㆍ남)씨 검거에 성공, 피의자가 지난 6개월간 490여 차례에 걸쳐 178명의 여성에게 음란영상통화를 걸어 온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조사결과 피의자 한모씨가 특정지역 여성을 대상으로 모바일 성폭력을 휘두를 수 있던 ‘비밀’은 놀랍게도 무심코 버린 ‘대형 쓰레기’ 때문이었다. 피해여성들은 하나같이 해당 동사무소에 대형폐기물 배출 신고를 했던 여성들로 피의자는 해당지역 대형 폐기물 담당 환경미화원이었던 것. 서울 강서경찰서는 지난 17일 동사무소에 접수된 대형폐기물배출 신고접수증에서 여성의 전화번호만을 골라 자신의 휴대폰으로 영상통화를 시도, 신음소리와 자위하는 모습 등을 보인 혐의(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로 한모씨를 구속했다.

음란 영상통화하려고 휴대폰까지 구입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한모씨는 서울 모 구청 청소행정과 소속 환경미화원으로 20년째 일해오고 있다. 그의 업무는 동사무소로 접수된 대형폐기물을 수거하고 처리하는 것으로 동사무소측은 민원인이 작성한 폐기물 배출 신고서를 미화원들에게 배부해 해당주소지에서 폐기물을 실어 오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신고서 내에 민원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주소, 전화번호 등과 같은 개인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는 것. 한씨가 특정 지역 여성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같은 까닭에서다. 이와 관련 한씨는 경찰에서 “‘음란 영상전화를 받았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지난 3월 영상통화폰을 구입했다”며 “평소 관리하던 폐기물 신고서에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있던 게 생각나 그 뒤로 여성 민원인들에게 음란전화를 걸었다”고 진술했다.경찰에 따르면 폐기물신고서에 적힌 여성 민원인들의 번호를 얻은 후 한씨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해당번호로 발신자표시 제한 일반 ‘음성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여성이 전화를 받는 것을 확인한 후 한씨는 곧바로 발신자제한 ‘영상통화’를 걸어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는 방식으로 모바일 성추행을 일삼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영상통화의 가장 큰 장점은 한씨의 범행에 더욱 부채질을 가했다. 카메라를 통해 비쳐진 상대 여성의 외모가 자신의 마음에 들 경우 수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음란 영상통화를 시도했던 것. 때문에 여성들은 잊혀질만하면 걸려오는 한씨의 음란전화에 시달려야했다.  

무작위로 전화 걸어 여고생에게도 ‘생쑈’

한씨가 경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폐기물배출 신고서는 주로 가구의 세대주 이름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아 보통 남성의 이름이 많다고 한다. 여성이름으로 접수되는 신고서는 일주일에 3~4건에 불과했다는 것. 그 수가 너무 적었던 것일까. 경찰조사결과 한씨는 폐기물 배출서에 적혀 있는 번호 외에도 무작위로 번호를 눌러 음란영상통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한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서에는 휴대폰 맨 뒷자리 번호가 ‘2277 ‘0009’와 같이 반복되는 번호로 영상통화를 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4492’로 끝나는 휴대전화 번호로 6월 16일 하루에만 48회에 걸쳐 영상통화를 했다는 점. 총 통화시간은 40여분에 달한다. 이는 분명 한씨 혼자서 ‘생쑈’를 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긴 시간. 이에 경찰은 해당번호로 전화를 걸어 휴대폰 주인이 울산에 사는 여고생 김모(16)양 임을 확인, 호기심에 전화를 받게 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김양은 경찰조사에서 “야간 자율학습 시간 중에 음란영상통화가 걸려와 교실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봤다”며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면 전화를 끊고 나가면 (전화를) 또 다시 받았다”고 밝혔다.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비슷한 피해사례를 모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며 “이 같은 모바일 피해는 신고만하면 발신자가 누구인지 추적해낼 수 있다. 피해자들의 신고정신이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폐기물배출 신고서에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번호까지 기재하게 돼있어 한씨와 같은 ‘휴대폰 바바리맨’ 사건이 쉽게 발생할 수 있었다”며 “행정서류에 불필요한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것을 과감하게 줄여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해야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