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진실 못 밝힌 246人 장병 恨 어이 풀꼬

내달 말 활동기간 끝나는 군의문사위 존폐 놓고 한나라당-유족간 신경전 ‘팽팽’

2009-11-21     류세나 기자

<군의문사위 미제 사건 남겨두고 ‘존폐위기’>

접수사건 600건 중 246건 미해결…유가족 “폐지 철회하라”
잔여사건 진실화해위로 강제 이관…전문인력 없이 해결될까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가 존폐 기로에 놓여있다. 지난 2006년 1월, 정부는 3년이라는 활동기간을 명시해두고 군대에서 영문 모를 죽음을 맞은 이들의 사망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군의문사위를 출범시켰다. 정부는 약 250~300건의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올 1월까지 접수된 사건은 총 600건으로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돌았다. ‘3년에 300건 해결’ 시스템으로 조직된 군의문사위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였고, 18일 현재 246건의 사건이 미결상태로 남아있다.

오는 12월 31일 군의문사위 활동종료 시점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와 유가족들은 “잔여사건과 미처 등록하지 못한 군의문사 사건들의 진실을 규명해야한다”며 활동연장을 요구하고 있고, 여당은 예산절감효과 등을 주장하며 군의문사위 등 14개 과거사위원회를 통∙폐합하는 법안을 지난 20일 국회에 발의했다. 군의문사위원회가 해체되면 아직 풀리지 않은 246명 장병들의 죽음에 얽힌 사연은 그 이유가 억울하든 아니든 사실상 고스란히 역사 속에 묻히고 말 가능성이 크다.

“아들을 먼저 보낸 지 2년이 지났는데 우리 집은 아직도 초상집 분위기예요. 동네 사람들이든 회사동료든 웃고 떠들다가도 우리 가족만 보이면 웃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입을 닫아버려요.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게 힘들어졌어요. 우리아들은 군대에서의 구타와 성추행 탓에 억울하게 죽음을 택한 건데 세상 사람들은 ‘자살자’로만 치부하고 있어 가슴이 아픕니다.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위원회가 없어지면 우리아들 가슴에 맺힌 한은 이제 어떻게 풀어줍니까, 그 희망만 갖고 살았는데…. 아비가 돼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괴롭고, 아직도 차가운 냉동실에 누워있는 우리 아들을 보면 가슴만 더 찢어집니다.”

눈물바다 된 국회 의원회관

지난 18일 오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103호 회의실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한 군인의 아버지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지면서부터다. 이날 의원회관 103호에서는 민주당 안규백 의원 주최, ‘진실과 정의’ 포럼 주관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왜 연장이 필요한가’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과 유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군의문사위의 활동기간 연장과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건국대학교 이재승 법과대학 교수는 “현재 군의문사위에 신청된 진정 중 절반만 처리된 상황에서 조직을 진실화해위로 강제 통합추진하는 것은 조직의 효율성이나 업무의 연속성 관점에서 불합리하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똑같이 사건 진상조사를 신청하고 아직까지 처리결과를 통보받지 못한 유가족들은 헌법상의 평등원칙에도 위배된다”며 “유가족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현재의 조직을 유지해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실용과 효율을 강조해왔다”며 “군의문사위를 없애고 진실화해위로 통합하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김 사무국장은 이어 “군의문사위도 처음 1년은 틀을 잡아가고 합의해나가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를 담당했던 숙련된 직원들을 함께 통합하는 것이 아닌 ‘이름만 합치기식’ 통합은 그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며 “이는 전체 공무원 수 몇 명을 줄이는 것과 비교도 안 되는 경제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군의문사 잔여사건 영원히 묻힐 판

이날 자리에 참석한 유가족들도 전문가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한 60대 할머니는 “군의문사위에서 조사를 했던 조사관들은 단 한명도 고용되지 않은 채 사건만 이관된다면 잔여사건이 얼마나 제대로 해결되겠는가. ‘과거사’라는 명목으로 적당히 통합해 ‘바늘 따로 실 따로’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냐”며 “군대 의문사 사건은 과거문제가 아니라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현재 진행형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이야기는 회의실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담당 기관이 제대로 조사도 안 끝낸 채 무책임한 일이 어디에 있느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아들을 잃게 된 부모들이 자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달라는 호소를 외면하지 말라” 등 울음 섞인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韓, 부끄러운 과거, 아예 감춰두자?

하지만 이 같은 유가족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 20일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14개 과거사위원회를 통∙폐합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신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올 12월로 기한이 만료되는 군의문사위원회는 기한도래에 따라 폐지하고 미결사건만 진실화해위로 이관하도록 했다”며 “행정지원 인력 및 예산 감축 등 조직운영 효율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는 다음날인 21일 ‘한나라당은 과거사위원회 통폐합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진실규명 및 과거청산 작업을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 “억울한 죽음과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는 과거청산 작업을 중단시키려는 한나라당은 피해자들과 유가족들 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했다.계획대로라면 군의문사위는 오는 12월 31일 군의문사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해체된다. 이에 유가족 등은 “국가가 억울한 죽음에 대해 나 몰라라 한다면 누가 국가를 믿고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있겠냐”고 군의문사위 활동연장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