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권력 먹이사슬 농협비리 또 불렀다
2009-12-01 이광용 기자
[매일일보 이광용 기자] ‘공룡 농협’이 비난 여론의 도마 위에 또 오르내리고 있다.
세종증권 비리 수사에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이 수십억을 받아 챙긴 혐의가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농협은 그동안 조직이 비대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중앙회장과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 방만 경영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정 전 회장의 경우 현재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또 다시 비리 혐의를 받고 있어 농협에 커다란 오명을 안겨주고 있다.
농협은 2005년 농협법을 개정해 그동안 절대권력을 갖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중앙회장의 권한을 축소했지만 농협비리는 계속 터지고 있다.
농협은 농민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목표로 태어난 조직이다. 그러나 본분엔 충실하지 못하고 각종 이권과 부정·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농협이 근본적인 개혁을 자발적으로 도입하지 않는한 ‘비리농협’의 오명을 떨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막강권력 직선제 민선 중앙회장 3명 줄줄이 구속돼
정부지원 특혜 업고 신용사업 몰두… 농민복지 뒷전
회장에서 직원까지 횡령, 불법대출 등 비리 도 넘어
“지배구조 개편·개혁 통해 농민복지 충실해야” 지적
최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정대근 전 중앙회장은 구속 상태다. 그는 지난 2005년 현대자동차로부터 농협 하나로마트 부지 매각과 관련해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번엔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서 정화삼 형제로부터 로비를 받아 거액의 금품을 챙기고, 본인도 박홍수 전 농림부장관을 상대로 세종증권을 농협이 인수할 수 있도록 로비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막강권력 중앙회장 잇따라 ‘쇠고랑’
검찰에 따르면 농협은 2003년 11월 증권사를 세우려다 2005년 1월부터 인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농협의 증권사 인수 문제를 두고 농림부가 처음에는 난색을 보였지만 그해 11월 찬성으로 입장을 뒤집었다.
검찰은 이 과정에 정 전 회장이 고 박홍수 장관을 비롯한 농림부 고위 간부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정황을 잡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실명과 차명 거래를 합쳐 세종증권 주식에 110억원(197만주)을 투자해 178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또 한가지는 농협의 휴켐스 매각 과정이다. 박 회장은 당시 농협 자회사였던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정 전 회장이 도움을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같은 중앙회장들의 잇따른 구속은 농협의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앙회장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돼 구속이라는 멍에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앙회장의 막강한 인사권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인사권을 기반으로 권한을 행사하면서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얘기다. 중앙회장은 현재 경제·신용 등 주요 부문 대표에 대한 추천권을 갖고 있으며 감사위원의 절반을 선임할 수 있다. 농협법 130조에 따르면 사업전담 대표이사와 전무이사를 추천할 권리를 갖고 있다. 경제·신용 등 주요 부문 대표도 오직 회장을 통해서만 추천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용사업에 혈안… 모럴해저드 만연
회장 직선제로 인해 중앙회와 지역조합이 유착관계로 묶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회의 지원을 받는 지역조합장들이 회장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농협은 중앙회장을 비상근으로 바꾸고 사업부문별 업무 결제나 예산권을 부문대표에게 모두 넘겼다. 그러나 농협법은 아직도 중앙회장에 부문대표 인사권을 부여함으로써 인사권 통제를 통해 농협 실무 전반을 중앙회장이 주무를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조합장들은 대의원회의에서 중앙회장의 의견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 없어 한번도 회장추천 인사가 대의원회의에서 거부된 경우가 없다.
비단 회장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최근 3년간 각종 비리 연루에 따라 징계 처분을 받은 농협중앙회 임직원도 4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협 직원들이 짜고 건설사에 편법 대출을 해주는가 하면, 12억원을 횡령하고 명품을 사재기한 여직원도 있었다.
농협의 문어발식 방만경영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농협은 경제부문과 신용부문으로 이원화돼 있는데, 신용사업에서 낸 수익을 경제부문에 지원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농협은 그동안 수익성 있는 신용사업을 무차별적으로 벌여왔다. 최근 게이트로 번지고 있는 세종증권 인수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밖에도 농협은 로또 사업권에 손을 댔고 외환은행, LG카드 등의 금융사들 인수에 공을 들였다.
수신액 40조원에 달하는 전국 공공금고 사업도 농협이 70%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총 수신액 114조원의 30%에 달한다. 정책자금 혜택을 얻는 대출업무가 전체의 20% 이상인 20조원이 넘어 매년 수천억원의 이자율을 보전받는 것이 농협이다.
‘조합장-대표-중앙회장’ 먹이사슬 지배구조 끊어야
축협과 통합한지 9년째가 되지만 농협 조직은 여전히 2개로 분리돼 축산경제 대표와 농업경제 대표로 나뉘어 있다. 통합 의견이 높지만 축협 출신들의 반대로 형식적인 통합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농협 본연의 업무인 농민을 위한 사업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농업과 관련된 사업에서는 막대한 적자를 내고 농민 지원은 등한시한 채 각종 혜택을 받아 상대적 우위에 있는 신용부문을 키워 몸집만 불렸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농협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비대한 중앙회 조직과 회장의 막대한 권한이 농민과 조합원을 위해 존재해야 할 농협이 돈벌이에만 연연하고 각종 이권사업에만 몰두하도록 만들었다”면서 “지역조합장에서 중앙회장에 이르는 먹이사슬 구조를 끊는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