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깡통 아파트’ 은행이 사들인다?
‘하우스푸어 주택’ 공적 매입 추진 ‘논란’
[매일일보=도기천 기자] 정부가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하우스푸어 해법으로 주택 소유권을 금융기관에 매각한 뒤 그 집을 임차하는 ‘세일 앤드 리스백(sale & lease back)’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여기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일부 대선 주자들이 하우스푸어 주택의 공적매입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어 하우스푸어 문제가 정치권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금융당국, 캠코·배드뱅크 통해 ‘한계 주택’ 매입 추진
시민단체 “시장자율 침해… 은행에 부실 자산 떠넘기는 셈”
금융지주들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오기 전에 대책 세워야”
‘악성 하우스푸어’ 실태조사 착수
금융당국은 우선 집값 거품이 꺼지면서 담보인정비율(LTV) 한도를 넘긴 담보물을 보유한 하우스푸어 가구의 실태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통상 하우스푸어란 ‘1가구 주택자 중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비율이 가처분소득의 10%를 넘고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가구’를 지칭하는데, 이 경우는 이보다 심각한 ‘악성 하우스푸어’인 셈이다.이들이 부동산 경기가 최고점인 2005~2007년 당시 2금융권 LTV 최대 한도인 70%(1금융권 50%)로 담보대출을 받았을 경우, 보유한 주택은 현 시세대로라면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 ‘깡통 주택’으로 전락했을 수 있다.당시 담보대출 한도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실거래가격 부풀리기(일명 업계약서), 후순위대출(1금융권 대출 뒤 2금융권에서 추가대출), 담보대출에다 신용대출까지 얹어서 대출해준 관행 등 각종 편법(또는 불법)대출이 횡행했던 것을 고려하면 사태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하우스푸어 대책을 총괄하고 있는 여상규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은 “하우스푸어 TF에서 5개 아젠다와 14개 과제를 정부와 조율하고 있다”며 “당정이 합의하면 입법 사항은 야당과 협의해 법안을 발의하고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 사항은 정부가 개정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빚 없는 사회’를 내세운 민주당 정세균 후보는 최근 토론회에서 “자기 능력보다 더 큰 주택을 소유하다가 거래가 되지 않아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가계들은 배드뱅크를 만들어 이들의 주택을 매입하고 임대주택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앞서 새누리당은 지난 20일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배드뱅크 설치를 비롯,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적 감면 내지 폐지, 신규 주택공급억제 등 14개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이들 과제 중 배드뱅크 설립은 주택 호황기에 담보대출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로 수익을 남긴 금융권이 고통 분담 차원에서 공동 출자하는 방식으로 하우스푸어 주택을 인수해 재임대토록 한다는 내용이다.이와 별개로 추진되는 금융지원 방안으로는 LTV(담보인정비율) 60% 초과대출에 대한 금융권 상환요구 자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재원 확대, 대출구조전환(2금융권→1금융권), 이자 탕감(개인별 채무조정프로그램 도입) 등이 있다.여상규 부의장은 “이자부담이 불가능한 주택 소유자들의 집을 공적으로 매입해 활용하는 방안 외에도 세제·금융 지원과 거래활성화를 위한 대책,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수요에 맞춰 억제하겠다는 과제가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캠코-배드뱅크 이원화 검토
더나가 새누리당은 하우스푸어 주택매입을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맡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새누리당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당정은 캠코가 ‘한계주택공적매입’을, 은행권이 만드는 배드뱅크가 하우스푸어 가구의 채무재조정을 맡는 이원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캠코는 지난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과 개인 신용회복 사업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캠코가 부실기업의 부동산 물건을 매각하는 공매를 해오고 있는 만큼 하우스푸어 주택 매입에도 참여토록 해야 한다는 게 새누리당의 판단이다.현재 정치권이 추진하는 하우스푸어 대책은 정부와 협의를 거치고 금융권의 공감대도 얻어야 하는 만큼 넘어야 할 산은 높다.
다행히 금융지주들은 정부의 하우스푸어 대책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처럼 주택가격 폭락으로 금융권까지 파산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서라도 일정 부분 고통분담이 따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당시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원인이 ‘월가의 탐욕’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다.
경실련의 한 관계자는 “하우스푸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과거보다 가계 부채 규모가 더 커진 데는 그동안 부동산시장 구조조정을 인위적으로 지연시켜온 게 부메랑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는 만큼 (배드뱅크 설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