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3월 위기설’ 현실로?

“내년 상반기 최악의 국면 온다”… 위기감 증폭

2008-12-08     이광용 기자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의 비관적인 내년 경기 전망이 현실로 드러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우리 경제가 최악의 국면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3월 위기설’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다.

아울러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버블세븐’ 지역의 아파트값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미네르바가 예언한 ‘집값 반토막’ 전망도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3월 위기설의 근거로 금융권에서는 일본계 은행들이 결산을 위해 투자금을 한꺼번에 회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에 실물경제가 침체 국면을 맞고 성장률도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건설·조선·자동차 업종에서는 실적부진이 현실화하고 있어 위기설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9월 위기설’에 이어 ‘3월 위기설’이 떠돌자 정부는 근거 없는 낭설이라며 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내년 3월에 파국 온다” 위기론 수면 위로
3월 결산기 맞아 일본 은행들 한국내 투자자금 회수 가능성 최대 변수
강남 급매물 반토막 위기… 가용 외환보유액 400억 달러 추정 분석도
정부 “자본이 다 빠져나간다고 보는건 지나친 예단” 위기설 진화 나서


3월 위기설의 근거는 9월 위기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위기설의 발단은 3월에 도래하는 외채 만기에서 출발한다.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가 내년 3월에 한꺼번에 몰려 있는데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어서 만기연장이 어려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3월이 일본은행들의 결산시점과 맞물려 지난 몇년간 엔저와 낮은 금리로 급증했던 엔화 대출이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한국내 투자자금을 일본 금융기관들이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3월에 만기 도래하는 외채규모는 410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1년 이하 단기외채는 2000억 달러 규모다.

외환보유액 2000억弗… 문제 없나?

최근 발표된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000억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 금액이 실제 사용 가능한 것이냐는 것이다. 일시에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대처할 수 있지만, 최근 시장 유동성 공급추세를 감안할 경우 가용 외환보유고는 수백억 달러에 불과할 것이란 관측이 있어 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매달 200억 달러가 외채로 나가는데 일본의 3월 결산시점 때문에 위기설이 돌고 있는 것이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은행권에 1000억 달러를 지급 보증해줌에 따라 단순히 계산하더라도 가용 외환보유액은 나머지 1000억 달러에 불과하다”며 “각종 유동성 지원책이 쏟아지고 있어 사실상 가용 외환보유고는 400억 달러밖에 안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한미 통화스와프 300억 달러, 한중일 통화스와프 800억 달러 등을 감안할 때 큰 문제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현재 외환보유고를 합치면 3100억 달러 규모인데, 단기외채 2000억 달러가 한꺼번에 다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 위기로까지 번질 일은 아니라는 논리다.

내년 3월을 전후로 국내 경기가 최악일 것이라는 전제도 위기의 징후로 읽힌다. 수출증가율, 성장률 모두 내년 상반기에 마이너스가 점쳐지고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들의 재고가 늘어나는 시기도 내년 상반기로 예상돼 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미네르바와 경제평론가 ‘시골의사’ 등의 논객들이 3월에 최대 고비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위기설을 확산시키고 있다.

3월 위기설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미국 투자은행(IB)인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사태 등을 정확히 예측해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네르바다. 그는 <신동아> 12월호 기고를 통해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을 맞이하는 정부의 대응기조가 현재처럼 이어진다면 내년 3월 이전에 파국이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경고했던 ‘노란토끼’의 의미에 대해 “일본 환투기 세력”이라고 밝히면서 “일본의 IMF 외환보유고 제공 등 일본계 자본의 저의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년전 외환위기 당시 환율을 끌어올렸던 바로 그 세력이 노란 토끼이며, 외양은 미국 헤지펀드지만 그 배후에는 일본 앤캐리 자본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이들은 원화 약세와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을 틈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달러를 빼내가기 위해 한국을 주 타깃으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시골의사’로 유명한 경제평론가 박경철씨도 최근 강연에서 “한국 경제의 최대 문제점은 부동산 거품 붕괴와 가계 대출로 부동산 시장이 연착륙하지 않으면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최대 고비는 내년 2~3월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증권도 가세했다. 삼성증권은 국내 증권사로는 처음으로 한국이 내년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삼성증권은 지난 1일 “내년 3월 일본은행들의 결산기를 앞둔 자금회수 시기에 환율이 달러당 1500~1700원으로 폭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2일 “세계경제의 동반침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큰 걱정거리”라며 “내년 상반기가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특별한 비상대책이 요구된다”고 걱정한 바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도 최근 한 라디오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외국금융기관들이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우리나라에 빌려준 돈을 일시에 회수할 수 있다”면서 “특히 3월 말은 일본 은행들이 결산을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최근 강연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는 진행형으로 앞으로 2~3달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정책대응에 실패하면 경제파국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실물경제지표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이같은 위기설은 더욱 힘을 얻는다. 수출증가율이 지난달 18.3%로 떨어져 상반기에는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른 경제성장률도 올 4분기나 내년 1분기에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불황의 여파가 건설사와 조선소에 이어 자동차나 반도체 업종으로 확산되고 이는 산업계 전체에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위기설의 근거로 꼽을 수 있다.

현실로 다가오는 ‘집값 반토막’

부동산 가격 하락세도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지역의 급매물 가격이 2006년 최고 거래가와 비교할 때 40% 이상 하락하는 등 ‘집값 반토막’ 전망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네르바는 위기 징후 가운데 하나로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파급효과를 우려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GDP 대비 부동산 비중이 89%에 육박한다.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절반 수준, 강북도 추가 하락해 반토막 이상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 2010년까지는 불황이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면서 본격적인 거품 붕괴를 예고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112㎡ 형이 7억9000만원에 거래돼 지난 2006년 12월 13억6000만원에 비해 42% 하락했다.

송파구 신천동 장미2차 아파트 29㎡는 6억5000만원 짜리 급매물이 나오면서 2006년 거래된 최고가(12억5000만원) 대비 48%가 추락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02㎡도 2006년 11억6000만원에서 현재 7억8000만원으로 33% 하락했다. 112㎡는 2006년 최고 14억원에서 현재 9억5000만원으로 32% 가량 떨어졌다. 개포 주공6단지 고층 102㎡는 과거에 최고 11억원에 거래됐으나 현재 6억8000만원 짜리 매물이 등장하며 38% 하락했다.

송파구 인근 A중개업소 관계자는 “급매물이 쏟아진다 하더라도 정작 매수자가 없다보니 가격하락은 지속될 것”이라며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주택시장 불황으로 집값 반토막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향후 집값 향배는 실물경기와 금융시장 불안 지속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실물경기 회복이 빨라진다면 부동산도 빠른 시일내 안정될 것이고 이에 반해 회복이 늦어진다면 불안감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 “근거없는 루머” 위기 가능성 일축

위기설이 불거지자 정부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위기설은 근거 없는 루머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지난 4일 “9월 위기설도 근거 없는 루머라는 것이 밝혀졌듯이 국민들이 불안한 심리를 틈타서 위기를 조장하고 여기에 무책임하게 편승하는 것이야말로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금융회사들이 자본을 회수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내년 1분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일본계 외채규모를 파악해본 결과 10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다”면서 “이 수치만 봐도 3월 위기설이 얼마나 과장됐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제1차관도 내년 3월에 해외금융기관의 자본이 다 빠져나간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예단이라며 위기설을 진화했다. 그는 “금융기관들이 3개월마다 한번씩 보고서를 내도록 돼 있는데 그런 문제는 없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 차관은 “국제금융 상황이나 국제공조 노력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 우리의 정책적 노력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위기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어려울수록 유언비어가 회자되는 법”이라며 “경제가 어려워지자 지난 9월 위기설에 이어 최근 내년 3월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숫자상으로 봤을 때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일본은행이 자금을 회수해 감에 따라 내년 3월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하는데, 국내 은행이 일본계 은행에서 차입한 규모가 106억 달러로 전체 은행권 외채 차입규모(1245억 달러)의 9%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내년 1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이 11억 달러에 불과하다”면서 위기설을 반박했다.

전문가들도 위기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전 세계적으로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3월에 급격히 변하거나 특정국가의 투자자금이 회수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시간효과가 크다보니 내년 3~4월 체감경기가 최악의 국면을 맞을 가능성은 높지만 이같은 상황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이미 위축된 상황에서의 위기설은 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