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줄 놓은 근로복지공단’ 산재근로자 ‘불법사찰’ 논란

장애등급 의심해 ‘몰카’ 촬영… 법원 “불법행위 증거 못돼”

2012-08-30     도기천 기자
[매일일보=도기천 기자]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수억원대의 산재보험료 구상금을 청구해 물의를 빚은 바 있는 근로복지공단(이사장 신영철)이 이번에는 산재 근로자의 장애 등급을 의심해 몰래카메라로 뒤를 쫒다 발각돼 충격을 주고 있다. 근로자들의 산재 대책과 복지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의 잇단 기행(奇行)을 두고 비난여론이 커지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에 ‘수억원 내놔라’던 공단, 이번에 ‘몰카’ 논란
산재근로자 장애등급 의심해 미행·도촬…재판서 동영상 덜미
불법사찰 피해자 오씨 “공단 행태에 경악, 진실 밝혀 달라”

일부 보도에 따르면 사건 내막은 이렇다. 지난 2002년 회사 근무 중 ‘제5중족골 골절’을 입게 된 오모(52)씨는 2009년 5월 치료 종결된 후 그해 7월 근로복지공단에 장해보상을 청구했다.이에 근로복지공단은 ‘일반적인 노동능력은 있으나 심한 동통 때문에 때로는 노동에 지장이 있는 사람’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산재 장해등급 12급을 결정했다. 전체 14급으로 분류되는 산재 장애등급 중 12급은 경미한 상태에 해당된다.이에 오씨는 ‘장해등급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당시 재판부는 ‘원고의 신체 상태를 종합해 볼때 장해등급은 최소한 제5급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오씨의 손을 들어줬다.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항소를 제기했으며, 항소심 첫 변론기일인 지난 5월30일 증거자료로 동영상 CD를 법원에 제출했다.동영상에는 오씨가 지팡이를 짚고 여자아이를 차량에 태우고 내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동영상을 보면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오씨를 따라가고 있어 공단 측이 오씨의 장애 정도를 의심해 미행, 몰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단 측은 오씨 신체 상태로 볼 때 산재등급 5급 판정이 의심스럽다는 취지로 법원에 동영상을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공단 측은 이 동영상에 대해 CCTV로 촬영된 것을 입수한 것이라고 했다가 최근에는 ‘직원이 우연히 촬영한 것’이라고 진술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 측의 이같은 행위는 ‘불법행위’(몰카)를 증거로 인정하는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에 반(反)하는 데다, 민간 보험회사도 아닌 공공기관에서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실례로 지난 2006년 10월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보험회사가 소송의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 피해자의 일상생활을 몰래 촬영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 행위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당시 대법원은 교통사고 후 상대측 보험사 직원들로부터 집과 회사 주변에서 몰래 사진을 찍힌 방모(43)씨 가족이 S보험사 등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당시 보험사는 직원 2명을 동원해 방씨 집과 회사 주변에서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거나 고개를 숙이는 장면, 허리를 돌리는 장면 등 사진 54장을 찍은 뒤 ‘꾀병 환자’라며 법정에 증거로 제출했고 이에 방씨 측은 사생활 침해라며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었다.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개된 장소에서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었더라도 초상권 및 사생활 자유의 보호영역을 침범한 것은 불법행위”라며 “부당한 손해배상청구 행위를 밝혀내려는 보험사측의 이익이 방씨 등의 인격적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공단 상식밖 행동 계속돼

더구나 공단이 문제의 동영상을 법원에 제출한 지난 5월은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때였다.이런 때에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보험급여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산재근로자를 미행, 도촬한 자료를 스스로 법원에 제출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공단 측의 상식 밖 행동은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지난 달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는 2009년 77일간의 쌍용차 옥쇄파업 기간 당시 파업에 참여했던 해고자와 정직자 57명에게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거센 사회적 비난에 직면해 이를 철회 한 바 있다.파업 기간 중 노조원과 충돌했던 회사 직원과 용역 경비업체 직원에게 지급한 치료비(산재급여) 2억6500만원을 해고자와 정직자에 요구한 것. 일자리를 잃고 벼랑 끝에 몰린 이들에게 근로자들의 실업대책과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공단이 ‘가혹한 처사’를 행했다는 점에서 당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앞서 지난해 연말에는 산재 및 고용보험료를 낮춰주는 댓가로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근로복지공단 지사장급 K(57)씨, 부장급 C(49)씨 등직원 6명이 구속기소됐으며, 이와 별개로 인사청탁과 함께 금품을 챙긴 혐의로 근로복지공단 경인본부장과 공단 본부 이사 2명도 구속된 바 있다.한편 오씨는 모일간지 보도를 통해 “몰카를 촬영했다는 자체도 경악스러운데다 해당 영상은 최근도 아니고 3년 전에 신경시술을 받으면 15일 정도 통증이 완화돼 지팡이에 의존해 걸을 수 있었던 시절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오씨는 현재 신체 상태가 더 악화돼 걸을 수 없는 상태로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현재 오씨 측은 항소심 재판부에 이 동영상의 촬영자, 촬영일자, 촬영장소 등을 밝혀달라는 구석명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구석명신청서는 소송당사자가 상대방 진술에 모순이 있거나 주장사실이 모호해 그 진실을 알 수 없을 때 이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입증책임이 있는 상대방에게 입증을 촉구할 때 취하는 조치다.

<매일일보>은 이번 사건과 관련, 근로복지공단에 수차례 해명을 요구했지만 공단 측은 “담당 부서에서 진위를 파악 중”이라는 짧은 답변만 되풀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