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 "암투병 직원 퇴직종용" 파문

2005-02-28     파이낸셜투데이
노조, 말기암 환자에 전화해 '명퇴하라' 강요 주장
조흥은행 희망퇴직 신한지주 경영간섭 논란
정부당국 합의서 규정된 경영간섭 여부 검토

희망퇴직을 둘러싼 조흥은행의 노사갈등이 급격히 심화되고 있다.
조흥은행 노조는 사측이 최근 암투병을 이유로 휴직중인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퇴직을 종용, 은행 내부에 파문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유방암으로 투병 중인 서울소재 모 지점출신 김모(36) 과장에게 20일 오후 전화를 걸어 "22일 접수가 마감되는 명예퇴직원을 제출하지  않으면 23일자로 복직명령을 내리겠다"며 "만약 복직하는 길을 택한다면 '신규고객영업팀'에 배치하겠다"고 전했다.
'신규고객영업팀'은 대출과 신용카드 신규고객 모집 등을 담당하는 부서로 외환은행이 현재 운용하고 있는 '특수영업팀'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는 조직이다.
사측은 또 지난주에는 혈액암 말기 투병중인 송모(37) 대리에게도 김모 과장에 전달한 것과 동일한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대해 사측 관계자는 "해당직원에게 전화를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퇴직을 종용한 것이 아니라 이번에 실시하는 명예퇴직의 조건이 역대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엄청난 치료비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당직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언해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은행 노조의 박태윤 기획조사팀장은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더욱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 사측의 행위는 아무리 구조조정이 다급하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만행”이라고 흥분하면서 “정부기관과 인권단체 등에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사측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반드시 제재가 뒤따르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측의 퇴직 종용을 받은 암투병 직원 중 한 사람은 충격에 빠져 아예 연락이 두절됐다”면서 “병세가 더욱 악화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조흥은행노동조합 홈페이지와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조흥은행 사측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노조원들은 “퇴직대상을 찍어놓고 은행장 부행장 지점장 기획담당본부직원까지 모두 나서 퇴직을 종용하고 있다”면서 “이런 분위기 때문에 투병 중인 직원들에게까지 퇴직을 요구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은행 노조원 오 모씨는“겉으로는 희망퇴직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까지 퇴직을 종용하는 것을 보면 사실은 강제퇴직”이라면서 “그렇다 라도 투병 직원들에게까지 퇴직을 강요하는 것은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회사측은 난감해 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명예퇴직하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휴직 직원에게 알려 준 것을 노조가 과잉반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암 투병 중인 직원에게 전화를 한 사실을 시인하면서 “직원들에게는 희망퇴직 등에 대해 공지사항 알려준 내용을 휴직 직원에게는 구두로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어쨌든 조흥은행이 400여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과 관련 당시 합의서 위반 논란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이다. 당시 조흥은행의 대주주였던 예금보험공사와 신한지주, 조흥은행, 금융노조 등은 지난 2003년 6월22일 합의서를 통해 향후 3년간 조흥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하며 조흥은행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인위적인 인원감축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이 합의서는 2003년 6월19일 제38차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조흥은행 지분  매각을 위한 본계약을 승인하면서 고용문제 등 경영계획에 대해서는 신한지주와  조흥은행 등 당사자들이 협의를 거쳐 확정, 보고토록 함에 따라 만들어졌다.이에 대해 조흥은행 노조는 사측이 감원대상자들에게 공문을 보내 퇴직을 권유했기 때문에 2003년 6월22일 노사정 합의서 2항의 3년간 독립경영 보장과 7항의 직원 고용보장 및 인위적 인원감축 금지 사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조흥은행 노조는 또 희망퇴직의 경우 사용자가 노사간 합의에 의해 자율적으로 시행해야 하며 강박행위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단체협약 사항을 위반했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특히 최동수 조흥은행장은 2003년 8월 취임 기자회견 등 10여차례의 행사를 통해 직원들의 고용보장을 확약하고 인위적인 인력감축을 않겠으며 신한은행과 통합해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던 점으로 미뤄 이번 희망퇴직의 배후에는 신한지주의 입김이 작용했다는게 조흥은행 노조의 생각이다.

신한지주는 이에 대해 인원감축을 협의했으며 인원감축 협의는 조흥은행 지분 100%를 보유한 주주의 경영권 관리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조흥은행 노조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그러나 조흥은행 희망퇴직에 대해 "주주로서 은행을 관리하는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전제하고 "어느 선을 경영간섭으로 보는가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희망퇴직은 인수합병후 시행되는 인위적인 구조조정과 다르며 희망퇴직도 조흥은행 스스로 결정한 것을 신한지주가 보고받는 정도의 업무협의만 있었으며 강요는 없었다"고 강조했다.조흥은행도 "운전기사의 연봉이 6천만원을 넘고 영업실적이 떨어져 후선배치된 사람들의 연봉이 일반직원들과 차이가 없어 직원 1인당 생산성이 크게 떨어져 자체적으로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조흥은행은 또 "희망퇴직은 사측이 관련 직원들에게 퇴직을 제안했지만 강제하지는 않기 때문에 인위적인 구조조정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흥은행에 대한 신한지주의 경영권침해 금지, 인력감원 금지 등의 합의서 도출을 사실상 중재했던 정부가 최근의 상황에 대해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는 것도 노조 입장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는 신한과 조흥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미리 유권해석을 내려 `교통정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며 양측의 합의사항이 위반됐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본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그러나 합의사항은 기본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번 400여명의 희망퇴직은 이와 함께 조흥은행의 추가감원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