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관리 들어간 ‘神의 직장’

거래소 ‘공공 회오리’ 맞는 증권기관들

2009-12-15     이광용 기자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증권선물거래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예정인 가운데 증권 유관기관들의 표정이 요즘 밝지 못하다.

고액 연봉으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거래소를 비롯한 유관기관들은 정부의 공공기관 지정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바짝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권이 가뜩이나 구조조정에 휩싸인데다 방만 경영 개선을 지적했던 감사원 감사에 이은 최근 금융감독원 검사로 몸을 낮추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내년 1월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을 앞둔 이들 기관들의 표정은 처한 위치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감지되고 있다.

전반적인 위기론이 퍼지면서 증권 유관기관들은 최근 임직원들의 임금삭감을 발표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같은 행보는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나오고 있는 전반적인 금융권의 움직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거래소 공공기관 1월 지정 앞두고 유관기관들 손익계산 분주
금융위기 파고·정부 압력 가중되자 ‘신의 직장’들 자구책 눈치
고액연봉 공공1위 예탁결제원 등 방만경영 여론 튈까 숨죽여
업계 “민간기관 정치적 입김에 좌우되면 시장자율 훼손” 우려

금융위원회는 증권선물거래소(KRX)에 대해 공공기관 지정 대상이라고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통보했다.
거래소와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만 감사원의 지적에 이어 금융위까지 나선 터라 공공기관 지정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금융위는 공공기관 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거래소를 포함한 지정요건에 해당하는 금융위 소관의 30여개 기관을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 통보한 상태다.

재정부의 실질 심사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통보되면 내년 1월 중으로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거래소는 지난 2007년과 2008년에 공공기관 지정 대상에 포함돼 있었지만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제외된 바 있다.

거래소 공공기관 1월 지정될듯

거래소의 자회사인 증권예탁결제원과 코스콤(옛 증권전산)이 준공공기관과 기타공공기관인데도 모회사가 민간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지정 방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앞서 감사원의 지적사항도 여기에 영향을 미쳤다. 감사원은 거래소가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감독 및 견제장치가 부족해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거래소가 법률상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아 공기업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감독 장치가 미흡하고 내부감사도 허술하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감사원은 또 거래소의 평균 인건비가 과다하다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7년 기준 거래소 1인당 평균 인건비는 1억1700만원이다. 이는 증권예탁결제원, 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의 평균 인건비(8천850만원)의 1.3배에 달한다.

거래소가 사실상의 공적인 업무를 하지만 내부감사는 부실하고 금융감독원 검사를 통한 외부감사도 직접적인 처벌 조항이 없어 방만 경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감사원의 시각이다.

거래소가 현재 독점으로 인한 고리의 증권매매 관련 각종 수수료를 받고 있는데 공공기관이 되면 국민들의 수수료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감사원을 보고 있다.

거래소는 그러나 세계적으로 거래소들이 기업공개(IPO)를 통한 M&A(인수합병)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증권 선진화에 역행한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거래소 본사가 위치한 부산지역의 반대여론도 거세다. 부산 출신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 등 22명은 복수 거래소를 허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 거래소 독점 논란을 해소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는 경쟁체제 도입에도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본시장 규모를 볼 때 복수거래소는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일단 (KRX) 민영화 전에 준공공기관으로 지정해서 경영, 가격상의 규제를 하고 민영화가 본격 시작되면 이 (허가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생각중”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선 자율성 훼손 우려 목소리

이처럼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가운데 유관기관들은 물밑에서 지정 이후의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향후의 변화가 어떻게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자칫 여론마저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몸을 움츠리고 있다. ‘신의 직장’이라는 오명을 받는 터에 금융위기까지 몰려온 상황이라 예전처럼 ‘온실’에만 안주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변화에 직면하게 될 유관기관으로는 예탁결제원과 증권업협회, 증권금융, 코스콤 등을 꼽을 수 있다. 금융위 방침 대로라면 자회사인 코스콤도 대주주인 거래소를 따라 기타공공기관에서 공공기관이 되고, 증권업협회 등에도 파급효과가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 금융권 전반에 대한 변화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다. 거래소 공공기관 지정에 대해 업계 인사들은 “정부의 입김에 따라 추진되는 인상이 짙다”고 지적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관기관이나 각 증권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거래소는 그동안 민간이 운영하던 기관인데, 관의 통제를 받으면 자율성을 훼손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거래소를 기준으로 연봉 등을 올려온 것으로 알려진 이들 유관기관들은 앞으로 거래소가 임직원 급여 삭감이나 감원, 사내복지 축소 등을 추진할 수 있어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다. 모기업인 거래소가 몸을 사리게 되면 자신들도 임금이나 복지 수준을 하향시켜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 유관기관들은 안팎의 악화된 여건에 부응해 잇따라 임금삭감에 나섰다. 이같은 분위기는 하나대투, 미래에셋 등 증권업계 전반에도 퍼지고 있다.

특히 금감원 정기검사를 마치고 다음달 발표를 앞두고 있는 증권예탁결제원과 증권업협회의 자구노력 강도가 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구책 내놓고도 노심초사

예탁원은 지난해 ‘공공기관 임금 1위’를 기록하며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거래소가 공공기관에 지정되면 고액연봉 1등은 거래소로 넘어가 임금삭감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예탁원은 지난 10월부터 임원들의 임금 31.5%를 삭감하는 한편 최근 노사합의를 통해 임금을 10% 가량 반납할 계획이다. 조직도 종전 24부서 53팀에서 26팀으로 축소하고 올해 20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거래소도 10월부터 등기임원의 연봉을 20% 줄이고 간부들도 10% 삭감을 단행했다. 부서장들의 임금 반납을 유도하고 노사 협의를 통해 직원들의 반납도 이끌어내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거래소의 구조조정에 공공기관에 지정되면 연봉 1위에 올라설 기관의 면모치고는 약하다고 평가한다. 20% 삭감한 연봉으로 따질 때 거래소 이사장은 성과급 포함 4억5000만원에 달해 사장 연봉을 올해 1억6000만원 수준으로 낮춘 예탁결제원과 격차가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최근의 미묘한 시각에 대해 “어려운 시기에 모든 금융기관이 군살 빼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 동참하는 차원에서 자구노력을 하는 것”이라면서 “임금 반납에 대한 노사간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연말 쯤 큰 문제없이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도 그동안 조직에 골깊게 퍼져있는 군살을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체 운행하고 있는 통근버스의 경우 출퇴근 시간 이용하는 임직원이 수명에 불과해 운행을 중단하고 일반 대중교통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업계에 불어올 변화 조짐에 대해 “모기업인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놓고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밝힐 위치에 있지 않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자구책에 대해서는 “자구안은 정부의 삭감 방침과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해 단행한 것”이라며 “공공기관 연봉 순위가 1위부터 5위까지 200만원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예탁원만 엄청난 임금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