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에 반기든 현대백화점, 이제와 '전전긍긍' 왜?
[매일일보 황동진 기자] 하병호 현대백화점 사장의 발언이 업계 ‘불편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의 수수료인하 요구와 관련해 “백화점이 떼돈을 버는 게 아닌데, 수수료 추가 인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올해 공정위의 요구가 더 많아졌는데 지금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 사장의 발언이 있은 직후 얼마 안 있어 공정위는 현대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의 납품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 관행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다. 때문에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하 사장의 발언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한 게 아니냐며 업계 전체로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공정위, 지난 3일 2주 계획으로 현대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 거래 관행 조사 착수
업계 일각, 백화점협회 회장 지낸 하병호 현대백화점 사장의 발언에 대한 보복성아니냐 우려
요즘 유통업계가 좌불안석이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백화점과 마트를 찾는 소비자 수가 줄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가 이들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 거래 관행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함에 따라 추석을 앞두고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공정위 이번 조사 배경을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하병호 현대백화점 사장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정위의 이번 조사가 하 사장의 발언이 있은 직후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하 사장 발언에 대한 괘씸죄 적용?
5일 공정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판매촉진비와 물류비 측면에서 중소 납품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현대백화점과 신세계의 판매수수료율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지난 3일 밝혔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에서 현행법상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5대 5로 규정된 판촉비용이 제대로 부과되고 있는지 등 부당 거래 관행을 집중 단속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판매수수료율 추가인하 요구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사실상 수수료율 인하에 대한 압박 차원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하 사장의 발언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냐며 괜히 공정위를 자극시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냈다면서 불평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 하 사장은 지난달 23일 충청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공정위의 수수료인하 요구에 대해 “백화점이 떼돈을 버는 게 아니다”라며 “수수료 추가 인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백화점 업계 평균 이익률이 4.7%가 나왔는데 이 정도는 돼야 재투자를 할 수 있다”며 “백화점 매출을 올리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당시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공정위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통화에서 “영업이익률이 4.7% 라는 (하 사장의) 말은 잘못됐다. 백화점업계 영업이익률은 7~8%”라며 “일반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에 비하면 2배가 넘는다”고 꼬집었다.
또 “수수료로 영업이익률을 따지면 수치는 상당히 올라간다”며 하 사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일각, “괜한 긁어 부스럼 만들어”
당시 업계에서는 하 사장의 발언에 대해 대체로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얼마 전 대형 백화점과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물품이 10%나 줄고, 백화점은 한 달 동안 장기 세일을 해도 매출이 제자리걸음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듯이 사실상 추가 수수료 인하는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하 사장의 발언은 누가 됐든 간에 영향력 있는 업계 관계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정부 압박에 대해 항변을 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사실상 정부의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수수료 인하 등 압박이 시작된 이래 대형 유통업체 현직 최고 경영자가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쓴 소리를 내뱉은 적은 처음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하 사장의 발언이 있은 직후 공정위가 발칵 뒤집혔다는 후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하 사장의 지적대로 업계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추가로 수수료를 내리기는 힘든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공정위에 반기를 들 듯한 하 사장의 발언은 괜한 자극을 불러일으켜 업계 전체로까지 역풍을 맞게 된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매일일보>과 통화에서 “이번 공정위 조사에 대해서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공정위는 현재 이들 대형 유통업체의 판촉비 인상에 위법성이 있는지를 따져보고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과징금을 비롯해 시정명령을 내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