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 찾았다가 ‘이혼남 딱지’만
<결혼중개업법 시행 6개월차>
현행법 곳곳에 구멍… 표준약관도 없어
회원정보 사실 확인 의무화 조항 없어 애꿎은 소비자만 ‘사기결혼’
가입비 챙기고 ‘대충’ 알선한 뒤 “맞선 3번 봤으니 환불금 없어요”
보건복지가족부 “표준약관 내년께 만들어진다…실태조사도 할 계획”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지난 6월 자유업종이던 결혼중개업을 신고∙등록제로 전환하는 ‘결혼중개업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직업소개소, 근로자파견업, 해외이주알선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 자가 결혼중개업을 병행하면서 인권침해 문제와 이에 따른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로 인한 피해를 감소시키고 업체들의 건전운영을 유도하기 위해 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청사진과 달리 실제 결혼중개업을 이용하는 소비자와 시민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무책임한 결혼중개로 인한 피해를 막기에는 법이 허술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매일일보>에서 결혼중개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취재했다.
“지난 3월에 베트남 며느리를 들였는데 새 아가 얼굴색이 안 좋은 거야. 그래서 결혼식을 치르고 3일 뒤에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글쎄 의사 말이 소아당뇨하고 췌장염에 걸렸다지 모야. 결혼정보회사는 분명히 고향에서 받은 건강검진에 아무 이상 없었다고 했는데…. 의사 말로는 임신도 하면 안 된대. 그러면 새아가 목숨이 위험하다고. 손자 녀석 하나 얻어서 대 이으려고 외국인 며느리 들였는데 이걸 어쩌면 좋수….”
이와 비슷한 사례는 천안에서도 접수됐다. A씨 역시 결혼중개업소의 주선을 통해 필리핀 여성 B씨를 만나 지난 가을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건강하다던 신부가 다리를 조금씩 저는 것.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한 달 여가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A씨의 이야기다. 이에 A씨의 형이 나서서 B씨의 건강검진을 의뢰한 결과 소아마비를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A씨와 B씨를 연결시켜 준 결혼중개업체는 필리핀 현지업체에서 B씨의 건강검진을 실시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필리핀에서 검진 받은 결과를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믿은 것. 결국 중개업체의 부정확한 정보제공이 이들의 불행을 부채질하게 된 셈이다.학력∙건강상태 등 회원이 제공한 정보
사실여부 확인 의무화 조항 없어 ‘당혹’
회원관리 유통기한은 ‘맞선 2회’까지(?)
올 한 해 동안 한국 YMCA 전국연맹에 접수된 결혼중개업 관련 피해상담 사례는 1,100여건으로 결혼시즌인 봄∙가을인 5월, 6월, 9월에 가장 많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YMCA에 따르면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한 소비자들은 결혼중개업에 대한 정보요청(312건), 법령기준 관련(265건), 사기결혼∙주선횟수 등 불공정계약(180건), 가격요금(105건), 서비스 불만(97건), 결혼상대자 불만(62건) 등의 이유로 상담∙피해구제를 요청했다. 피해사례 접수결과 대다수의 결혼중개업소 이용자들은 “업체들이 딱 2회까지만 열심히 주선한다”고 주장했다.C씨는 한 결혼정보회사 영업사원의 권유로 3번 주선 받을 것을 약속하고 120만원에 회원가입을 했다. 담당 매니저도 C씨의 성혼을 위해 일주일에 2번이나 맞선을 주선해주는 등 열심인 것 같았다는 게 C씨의 이야기다. 그러나 매니저는 이후 한 달간 연락이 없었고, 회사에 연락했더니 퇴사했다는 말만 돌아왔다. 결혼정보업체는 퇴사한 매니저의 회원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방치해뒀던 것. 이에 C씨는 가입해지를 요청했고, 업체측은 자신들의 불찰에도 불구하고 남은 1회분에 대해서만 위약금 20%를 공제하고 돌려주겠다고 했다.또 다른 피해자 D씨는 국내 유명 결혼정보회사에 500만원을 지불하고 8회 주선 받을 것을 계약했다. 그런데 2번의 주선을 받은 후 D씨의 매니저가 교체되더니 업체로부터 “더 좋은 조건의 상대를 소개받을 수 있는데 그러려면 돈을 더 지불해야한다”며 ‘좋은 상대’를 빌미로 추가비용을 요구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자의적 해석 가능한 약관조항으로
이리저리 피해가는 결혼중개업체들
표준약관 없어 업체마다 규정도 제각각
서비스 기간∙내용 명시 없는 불공정 계약
업계 “국제결혼 성사비용 1천만원이 비싸다고?”
절반 이상의 업체들이 계약서와 약관상에 주선 횟수, 방법 등을 명시하지 않은 반면 회비 및 수수료, 환불규정에 대해서는 기록해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회비의 사용내용에 대한 설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불의 경우에도 3~4회 이상 만남을 가진 경우 단 1%도 환불하지 않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게다가 국제 결혼 후 신부가출에 대해 책임을 묻는 항목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는 소수에 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성혼이 이뤄진 후 일정한 기간 내에 폭언, 폭행, 도박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신부가 가출한 경우 중개업체의 책임에 대한 항목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는 단 15.9%에 불과했다. 이 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한국결혼상담소협회 권혁선 경기지부장은 “조사결과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100% 믿을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국제결혼을 하려는 남성들에게 1천만원 이상의 비용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권 지부장은 “전혀 높은 금액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권 지부장은 “국제결혼의 경우 현지 중개업소와 현지브로커 수수료, 국내 직원 월급, 광고비, 항공료 등을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또 1달에 1건이 성사될지 3달에 1건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1천만원이 넘는 금액을 받는다고 해서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견해를 내비쳤다.이와 관련 보건복지가족부 다문화가족과 관계자는 “결혼중개업에서 윤리∙인권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인지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법률제정과 업체 등록 및 신고를 받는 데에 모든 시간을 투자해 실태조사를 벌이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이어 “내년에는 표준약관도 만들고 오는 2월부터는 접수된 자료를 토대로 전산시스템을 가동할 계획이다. 또 업체들이 꼭 지켜야할 윤리 등을 목록화해 교재로 만들어 배포할 계획도 갖고 있다”면서 “내년께에는 검찰 등과 합동으로 법률을 지키지 않는 업체들을 단속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이에 대해 부산 YMCA 황재문 간사는 “연애결혼이든, 중매결혼이든 결혼식을 올린다는 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사람과 남은여생을 함께 하겠다’는 공표하는 자리”라며 “결혼중개업체들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의해 두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 않도록 정확하고, 공정한 내용을 담은 결혼중개업 표준약관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지난 10월말 기준 현재 국내에 신고․등록된 국내결혼 중개업체는 546개, 국제결혼 업체는 모두 794개 업체다. 그러나 국내․국제전문 업체를 따로 신고․등록해야하는 현행법상 이들 중 약 30~40%가 같은 업체일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결혼중개업법은 지난 6월 15일부터 시행돼 국제결혼 중개업자는 일정한 기준을 갖춰 시·도지사에게 등록하고, 국내결혼 중개업자는 시·군·구청장에게 신고해 등록증 또는 신고필증을 발급받은 후 영업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