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생긴 판잣집 아이들… “달라진 게 뭐야?”

貧아동 주거지원사업 공공·민간 통틀어 3개뿐
예산마저 부족해 지원 후에도 지하쪽방 신세

2009-12-19     류세나 기자

“밀린 월세 내놔라” 걱정 없지만 채광∙통풍∙배수시설 낙후 여전
전문가 “소년소녀가장뿐 아니라 빈곤아동 위한 정부정책 절실”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공공∙민간 단체의 주택∙주거비 지원으로 긴급 위기상황에서 벗어난 ‘주거빈곤’ 아동들이 심리적 안정은 되찾았지만 정작 물리적 주거환경은 이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홍인옥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 16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한국도시연구소․오사카시림대학도시연구프라자 주최로 열린 ‘빈곤과 커뮤니티’ 국제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밝히고 빈곤 아동들의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위한 현실적 보완 및 근본적 개선책의 필요성 피력했다. 

“친구들에게 (이사하기 전)집이 어디라고 말한 적은 있었는데 한 번도 찾아온 적은 없어요. 오지 말라는 소리도 안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서 좋아요.” (한부모 가정 子)

“최악의 상황에 닥쳤을 때 좁지만 비빌 곳(집)이 생겼다는 게 밑바닥에 있던 사람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되죠. 딴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한부모 가정 母)

“이 정도로 만족해요. 더 바라고 그런 건 없어요.” (한부모 가정 父)

전세금 및 주거공간 제공, 임대료 대납 등 주거지원 사업의 혜택을 받은 수혜자들의 증언이다. 하지만 지원대상자들의 진술은 ‘응급상황에서 벗어난 것에서 온 만족감일 뿐 대다수 수혜자들의 주거환경의 질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주장은 한 할머니의 진술에서도 드러난다. 이 할머니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 손자와 둘이 살고 있다가 주공의 전세지원을 받아 새집으로 이사하게 됐다. 그는 이전에 살던 집을 ‘거지같은 방’이라고 표현했다.

“산 밑에 있는 집에 살았는데 산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우리 방으로 다 흘러 들어왔어. 여름에는 곰팡이 냄새나고, 비라도 오면 방바닥은 물바다 되고 아주 말도 마. 누가 큰 침대를 하나 갖다 줘서 손자하고 그 위에 올라가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했지. 또 비가 새서 벽지가 누렇게 변하고 벗겨져서 복지관에서 도배를 해줬는데 물이 들어오니까 새로 해도 아무 소용없지 모. 완전 거지같은 방에서 살았었어.”

전문가들은 이 같은 까닭에 주거지원을 받은 가정들이 새로 이사한 ‘좁은 집’ ‘채광∙환기 안 되는 집’이 건강∙심리적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거지원만족도와 질적만족도 달라”

홍인옥 연구원 등 한국도시연구소는 지난 10월부터 두 달간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 전세주택지원 사업 2가구)와 아름다운 재단(주거비 사업 4가구, 희망둥지사업 7가구)에서 주거지원을 받은 13가구를 표본조사했다. 조사 결과 조사대상자 모두는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이와 관련 홍 연구원은 “조사대상자들은이 오랜 빈곤, 이혼으로 인한 갑작스런 경제적 부담감 등 갖가지 이유로 일정한 거처가 없던 상황에서 주거지원을 받아 이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다.

홍 연구원은 이어 “주공의 소년소녀가정지원 사업의 경우 가구당 5천만원(수도권), 아름다운재단의 희망둥지 사업은 1천5백만원의 한도액이 책정돼 있다”면서 “때문에 그 액수로는 자연스레 채광과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지하방이나 지나치게 좁은 집, 노후한 설비의 거주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도시연구소 조사결과 거주지원 사업에 높은 만족감을 드러내던 수혜자들은 질적만족도에서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거주층, 즉 ‘지하거주’에서 물리적 불만감을 드러냈다. 지하층의 경우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고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습기가 많고 곰팡이 문제가 심해 해충이나 벌레가 많다는 응답이 높았다. 또 아이들이 충분하게 쉬고 학습하기에 다소 면적이 좁다고 꼽았다. 꼭 필요한 가구도 들여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하지만 면적에 대한 불만은 긴급한 상황을 모면했다는 점에서 강하게 제기되지 않았다는 게 조사관들의 얘기다. 일부 조사대상자들은 하수시설의 노후로 인한 침수의 문제, 난방 등 기본설비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복지정책서 소외된 ‘보호자 있는’ 빈곤아동

하지만 이 같은 ‘주거빈곤’에 따른 영향은 성인보다 아동에게 크게 미친다. 이미 여러 연구보고서를 통해 주거여건은 아이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특히 아동에게 ‘집’은 심리∙정서적 기능뿐 아니라 사회성, 자율성을 처음으로 익히게 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일정수준의 주거공간과 주거시설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미래의 꿈나무’들은 성장∙발달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 아이가 ‘아동실’을 갖고 있을 경우, 아이는 자신의 흥미와 취미를 개발할 기회를 얻게 된다. 또 개인생활의 보장으로 타인의 생활도 존중할 줄 알게 되고 침해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게 기존에 발표된 연구보고서들의 주요 골자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 방’ ‘내 물건’을 소유하게 됨에 따라 소유감과 소속감, 책임감 등을 배우게 된다는 점.

하지만 이 같은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빈곤아동을 대상으로 한 주거지원 사업이나 프로그램의 수는 극히 제한돼 있는 실정이다.

공공부문에서는 주공이 2004년부터 소년소녀가정 세대를 대상으로 한 전세지원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유일한 사업이다. 그리고 공공임대아파트 추첨시 가산점을 주고 있을 뿐이다. 민간부문 사정 역시 비슷하다. (재)아름다운재단이 2004년부터 소년소녀가정 대상으로 솔기금 사업(주거비 지원), 2006년부터는 소년소녀가정뿐 아니라 빈곤아동 가구까지 확대시킨 희망둥지 사업(전세금∙보증금 지원, 집수리) 등 두 가지 지원을 하고 있는 게 전부다. 이에 대해 한국도시연구소 홍인옥 책임연구원은 “정부의 주거복지정책이 아동이 있는 빈곤한 가구들에 대한 배려가 상당히 부족하다”며 “주거문제는 민간이 독자적으로 전담하기에는 상당히 벅차다”고 말했다.

홍 연구원은 이어 “민간에서는 주거비 지원사업과 사회복지가 연계된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정부는 주거정책의 대상자를 ‘아동이 있는 빈곤가구’로 확대시키는 등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