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12년 협력사 왜 버렸나
4년연속 우수대리점이 ‘불량거래처’ 퇴출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왜 그랬을까….’
‘가전 공룡’ LG전자가 12년 협력사를 버렸다. 4년 연속 종합우승상을 수상했던 대리점이 ‘불량거래처’로 낙인 찍히면서 퇴출돼 불공정거래 시비가 일고 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매출을 앞지르며 우수한 실적을 올렸던 대리점이 판매대행사로 전환되고, 끝내는 그마저도 계약 해지를 당하자 ‘대기업 횡포’라는 지적이 가전유통가에 공공연히 돌고 있다.
심지어 LG전자가 홈플러스 PC매장을 실질적인 직영체제로 전환할 목적으로 계약관계상 대기업의 지위를 활용해 우량 대리점을 3년여에 걸쳐 고사시키는 치밀한 각본에 따라 내쫓았다고 퇴출 기업은 분개하고 있다.
분쟁의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다보면 이를 억지 논리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사연이 담겨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12년간 일궈온 영업권을 포기하고 쫓겨나듯 전국 매장을 고스란히 대기업에 내줘야 했던 협력사의 입장에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인다.
할인마트 홈플러스에서 전국 50여개 PC대리점을 운영하던 신우데이타시스템(주)는 지난해 10월 LG전자를 거래상 지위의 남용과 거래거절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심사 결과는 1월 중 나올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왜 신우를 홈플러스 매장에서 추방했을까. LG전자는 신우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아 해지를 통보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어느 쪽의 주장이 진실인지, 양측 분쟁의 과정과 사연을 들춰봤다.
신우데이타, LG전자 지위남용 혐의로 불공정거래 제소
LG-IBM PC대리점 7년간 백화점·할인마트서 쾌속성장
분할합병 LG전자와 결제조건·담보·여신한도 시비 휘청
2003년 까르푸 25개점 입점 등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신우는 홈플러스에서의 영업 집중을 위해 매장들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최근까지 홈플러스 30여개점을 운영해 왔다.
신우의 영업력은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98년부터 4년간 우수대리점 종합우승상을 받았고, 2003년과 2004년에는 LGIBM으로부터 ‘위너서클’ 업체로 선정돼 부부동반 해외여행의 특전을 누렸다. LG 소속의 다른 업체에 비해 판매실적도 월등히 높았다. 홈플러스 매출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4년 LG의 PC와 노트북컴퓨터 점유율은 30%로 삼성(28%), TG삼보(24%), HP(12%) 등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4년 연속 우수대리점이 ‘불량거래처’ 낙인
하지만 신우의 쾌속행진은 2005년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97년부터 LG-IBM의 PC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해온 신우의 거래처가 LG전자로 바뀌었다. LG-IBM은 LG(49%)와 IBM(51)의 합작법인이었는데 2005년 1월 LG전자가 PC사업을 흡수 합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LG전자는 신우의 여신한도를 문제 삼았다. 신우의 외상매입채무가 과다해 여신한도를 넘어서는 물품거래가 빈번히 이뤄짐에 따라 이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 LG전자의 주장이다.
신우를 비롯한 대리점들은 LG전자 등 제조사로부터 물품을 일정 기간 외상으로 사다가 이를 판매한 대금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이를 외상매입채무라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조사에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신우는 2005년 당시 LG전자에 7억7800만원의 담보를 LG전자에 제공하고 거래를 했다. 2005년 월 평균 월말 잔고는 11억2400여만원이었는데, 나머지 여신은 LG-IBM 시절부터 해왔던 방식대로 홈플러스가 신우에 매월 결제할 매출채권을 LG전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해 이를 충당했다.
LG전자의 2005~2006년 자료에 따르면 이로써 당시 신우에 부여된 사용가능여신은 담보와 매출채권 양도를 합쳐 14억1300여만원이었다. 2005년의 경우 신우의 월 평균 잔고(매입채무잔고)는 11억2400여만원으로 여신한도 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자료는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LG전자는 2005년 6월 신우 측에 여신한도 이상의 물품거래를 하려면 추가 담보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LG전자는 이에 대해 “담보 이내에서 물품을 공급할 수 있는데 2005년 2월의 경우 16억9800여만원의 매입채무잔고가 쌓이는 등 여신을 초과하는 경우가 있어 시정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김 사장은 이를 ‘신우 죽이기 음모의 시발’이라고 간주한다. “유통관행 대로 LG-IBM 때부터 해왔던 방식의 여신을 받아 2005년 초에 원만히 LG와도 거래를 지속했는데 하반기부터 LG가 태도를 바꿔 신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비상식적 매출채권양도 해지 거부
신우는 LG전자의 요구를 납득할 수 없었지만 대기업과의 원만한 거래를 위해 2005년 추가로 5억원의 담보를 제공했다.
이에 따라 신우가 추가 담보 5억원을 제공하면 기존의 매출채권 양도는 불필요하므로 양도계약을 해지하기로 양사는 약속했지만, 이를 LG전자에서 지키지 않아 신우의 현금 유동성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 신우 측의 주장이다. LG전자는 매출채권을 1년여 동안 확보하다가 신우가 판매대행사로 전환된 이후인 2007년 8월에서야 양도계약을 풀어준다.
LG전자는 여신한도 여력이 충분한데도 매출채권을 그대로 가져간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에 대해 “외상거래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입장을 전했다. LG전자 법무지원그룹 관계자는 “신우가 상습적인 거래대금 연체나 담보를 초과한 신용여신의 비율이 높았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그는 “신우의 경우 연체기간이 길었고, 판매직원들의 급여 체불, 내부 부채로 인한 금융이자 등으로 추정되는 자금난 등이 심각해 거래관계를 지속하는데 고충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왜 30일 결제조건 강요했나…
유통구조 무시한 연체 함정?
LG전자는 신우를 불량거래처로 분류한다. 유통업계 선두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던 전문 PC 판매업체가 LG-IBM에서 LG전자로 거래처가 바뀌면서 거래대금을 상습 연체하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LG전자와 신우가 맺은 결제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신우는 LG-IBM과의 거래 시절 30~90일의 선택적 조건으로 거래대금을 자유롭게 결제할 수 있었다. LG전자와도 거래 초기에는 같은 결제조건으로 거래를 해왔다.
그런데 LG전자는 2005년 9월 거래대금 결제를 물품판매 후 30일 이내로 해줄 것을 강제했다고 신우 측은 주장하고 있다.
연체 이유 대행사 전락… “수수료 후려치기에 당했다”
H사 직영체제 전환 위해 3년간 협력사 죽이기 작전?
LG電 “상습연체·클레임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
LG전자 관계자는 이같은 배경에 대해 “신우가 IBM때 결제기간을 넉넉하게 갖고 운영하다가 LG로 넘어오면서 30일로 단축돼 자금운용에서 어려움을 감당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LG전자의 기존 대리점 거래기준이 센 편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LG전자의 일반적인 대리점 결제조건인 30일로 하되 2%의 할인율을 적용받는 것과 할인율 없이 60일 결제조건으로 하는 것 가운데 30일로 하겠다고 신우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해 매출할인 약정서를 체결했다는 것이 LG 측의 소명이다.
김 사장은 그러나 “LG전자 자료를 보면 당시 575개 LG전자 대리점들은 30~120일로 결제조건이 폭넓었는데, 30일 이내에 결제하는 업체는 10% 정도에 불과했다”며 “LG전자의 2005년 상반기 대리점 신용등급 기준에 의하면 신우가 A~D등급 가운데 최우수 거래선인 A등급을 받았는데도 극악의 결제조건을 강요해 유통구조상 결제일을 맞추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운영난이 가중됐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신우 측이 증거로 제시한 LG전자의 자료에 따르면 신우는 2005년 상반기 A등급의 우수거래선으로 분류됐지만 결제조건에서는 최하위권에 속하는 30일 이내로 책정돼 그 배경이 의혹에 휩싸일 소지를 안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이같은 지적이 언급되자 “2005년 당시나 지금이나 LG전자의 대리점 약 700곳은 90% 이상이 30일 이내에 결제하도록 약정돼 있어 신우에만 불리한 조건으로 거래한 것은 절대 아니다”면서 신우 측이 제시한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홈플러스는 순기(10일)별 결제가 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데 LG전자에 30일 결제를 신우가 맞추지 못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신우 내부의 부채 문제 등으로 인한 연체이지 결제기간이 촉박해서 생긴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상습 대금연체 이유로 물품공급 중단
결국 대행사 전락… 수수료 후려치기까지?
양측은 이후 2006년까지 여신한도, 매출채권양도, 거래대금 연체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분쟁의 골을 더욱 키웠다.
LG전자는 급기야 신우가 상습적으로 결제대금을 연체한다면서 2007년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물품공급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LG전자는 신우가 여타 대리점들에 비해 거래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운영난에 빠져 물품을 공급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 사장은 정상 운영을 할 수 없는 대리점 구조를 LG가 강제하면서 신우를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에 따른 ‘12년 협력사 죽이기’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은 이후 2007년 8월 1일부터 2008년 1월말까지 한시적인 판매대행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신우가 대리점에서 판매대행사로 그 지위가 격하된 셈이다.
김 사장은 불공정 계약이지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행사 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한다. 홈플러스 매장 영업이 수개월간 이뤄지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으로 내몰려 터무니없이 낮은 판매대행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계약에 응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몇 개월 운영해보고 수수료 등 수익구조를 따져본 뒤 수수료를 재조정하는 조건에서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신우가 받았던 수수료는 판매대금의 6%였다. 김 사장은 신우의 수수료가 경쟁업체인 삼성전자나 TG삼보는 물론 LG전자 판매대행을 맡고 있는 용역사의 수수료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고 주장한다. 경쟁사의 경우 대부분 10%가 넘고 LG전자 용역사는 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LG전자 마케팅 담당자와 신우 측에 보내온 ‘대행수수료 관련’ 이메일에 따르면 지급수수료를 판매사원 인건비(급여+인센티브+4대보험)와 간접비·관리비로 이원화하고 경상이익 옵션도 1~2%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밝혀 LG 측이 타 판매대행사와 형평을 맞추려는 노력을 했던 것으로 짐작돼 의혹을 품게 한다.
하지만 LG전자 관계자는 “6%라는 것은 기준 수수료일 뿐이며 대부분 그 이상을 지급했고 10%까지 준 적도 많다”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신우에서 제시했다는 자료가 조작된 것이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안다”면서 자료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LG의 ‘직영심기’ 작전” VS “불가피한 조치”
양측의 골깊은 갈등의 원인을 지적하는 시각도 이미 정상궤도를 벗어나 있다. 신우는 직영체제를 갖추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반면, LG전자는 홈플러스 매장의 정상 영업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한다.
신우는 LG전자가 12년간 협력한 우수 협력사에 대해 담보를 더 요구하고, 매출채권을 넘겨주지 않고, 불공정한 결제조건을 강요하고, 물품을 공급하지 않고, 수수료를 후려치는 등의 수법으로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결국엔 백기를 들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김 사장은 “홈플러스 전국 매장에서 신우가 떠난 이후 LG전자의 용역사인 H사가 입점해 운영하는 것을 보면 애초부터 각본에 따라 우리를 쫓아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12년간 쌓은 영업망을 아무런 보상도 없이 고스란히 LG전자에 넘겨준 꼴”이라고 분개했다.
김 사장은 “공정위에 이같은 정황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첨부해 불공정거래행위를 신고한 만큼 LG의 대기업 횡포가 조만간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LG전자의 입장은 이와는 상반된다. 신우가 일터를 떠나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홈플러스 PC매장의 판매여건이 정상영업을 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바닥을 기고 있어 계약해지 통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오랫동안 거래했던 신우를 배려하면서 각종 조치들을 취했지만 연체가 지속됐고, 대행사로 바뀐 이후에도 정상영업이 안되고 급여체불 등에 따른 판매인력 공백 사태 등이 빚어지면서 홈플러스로부터 지속적인 클레임이 들어와 고심 끝에 거래를 종료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