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가 곧 기회”… 경영권 승계 가속도

재벌 2,3세들 지분 확대·초고속 승진 잇따르는 사연
반토막 주식장서 감세 노린 富대물림 정지작업

2010-01-28     이광용 기자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와 주가 하락기를 이용한 재벌가 2,3세들의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국내 재벌그룹의 정기인사에서 오너일가가 속속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반토막 주식장세에서 계열사 주식 매집에 주력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경제 한파와 주가 폭락의 난국을 틈타 재계 2,3세 시대를 활짝 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기침체를 호기로 삼아 재벌들이 경영권을 자녀들에게 넘기는 정지작업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주요 그룹들은 그동안 상속이나 증여, 합병 등의 방법으로 2,3세들에게 핵심 계열사 지분을 늘려줬다. 최근엔 특히 재벌그룹 총수 자녀들이 임원에 오르는 나이가 30대 초반으로 줄고, 승진 연한도 빨라지고 있다.

이같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일부는 증여세나 상속세를 물지 않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눈총을 받기도 한다.

재벌총수 자녀들 31세 임원 달고 2년이면 승진
LG, KCC, 동양, 효성 등 지분변화 ‘눈에 띄네’
승계과정서 대림 편법합병 의혹 등 눈총받기도
“매입가 싸고 증여때 주가 반영 감세 노린 것”


국내 핵심기업의 지분율 변화를 발표하고 있는 재계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재벌가 2,3세를 중심으로 한 친인척들이 최근 들어 핵심 계열사 지분을 집중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그룹 내에서의 승진도 최근 몇 년간 초고속으로 이뤄지고 있다. 재계와 재벌닷컴 등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 자녀들은 평균 31세에 임원이 되고, 임원이 된 후 평균 28개월마다 상위 직급으로 승진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전자공시시스템에 최근 몇 달간 올라온 재벌그룹 2,3세 지분율 변동은 동양, LG, 한진, 효성 등의 그룹에서 두드러졌다.

대림, 이해욱 부사장 4년만에 2대주주로

4년간  경영권 승계를 발 빠르게 진행한 곳은 대림그룹으로, 이준용 명예회장의 장남 이해욱 부사장의 지분율 상승이 가장 눈에 띈다.

이 부사장은 현재 대림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32.12%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대림코퍼레이션이 물류 계열사인 대림H&L을 흡수 합병해 이 부사장은 이 명예회장에 이어 대림코퍼레이션 2대주주로 올라섰다.

하지만 합병 비율이 구설수에 올랐다. 대림H&L은 해욱씨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 대림코퍼레이션과 매출이나 순이익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데도 1대 0.78이라는 합병비율을 산정해 뒷말을 나았다.

대림H&L은 그룹 계열사 물량으로 성장한 회사인데, 무리하게 해욱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꼼수’를 부려 경영권을 편법 승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한전선 3세인 설윤석씨의 지분율 상승도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윤석씨는 지난 2005년 대한전선에 입사해 경영전략실 차장, 부장 등을 거쳐 지난해 9월 전력사업부 해외영업 부문 상무보로 초고속 승진했다. 윤석씨는 고 설원량 회장의 지분 30%를 상속받아 최대주주로서 실질적인 오너로 부상했다.

동양, LG, 효성, KCC 등 지분확대 주목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외아들 승담씨(동양메이저 차장)도 최근 지분을 늘렸다.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동양메이저 주식을 꾸준히 매입했다. 이로써 그의 보유주식은 0.87%(74만1644주)에서 0.97%(83만1754주)로 증가했다.

동양그룹 인사에서 현 회장의 장녀인 정담씨는 동양매직 부장에서 상무보로 승진해 입사 2년 만에 임원이 되기도 했다. 현 상무보는 동양매직 지분 4.57%를 보유하고 있어 승계 과정의 일환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자인 광모씨도 자난해 12월 지주회사인 LG 주식 8만2000주를 사들였다. 광모씨는 앞서 지난해 8월27일과 10월27일에도 각각 5만5000주와 9만4000주씩을 매입했다. 광모씨의 지분율은 연초 4.36%에서 4.50%로 뛰어올라 구본무 회장(10.31%) 등에 이어 4대 주주로 올라섰다.


한진그룹도 지난 인사에서 오너 3세 경영인들을 핵심 보직에 앉혔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 조원태 상무가 여객영업본부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조 상무는 또 조현아 대한항공 상무, 조현민 대한항공 과장 등과 함께 최근 대한항공 주식을 잇따라 매수해 그룹 승계에 한발 다가섰다. 보유주식 면에서는 지난해 10월말 현재 세 남매는 6만4225주(0.09%), 6만3364주(0.09%), 6만1934주(0.09%) 등을 각각 확보하고 있다.

한진의 항공업계 맞수인 금호아시아나의 승계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박삼구 회장의 장남인 세창씨는 지난 연말 인사에서 전략경영본부 상무보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박 상무는 최근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 주식 4만1810주(0.07%)를 매입해 앞으로 그룹 경영을 맡게 될 것으로 재계는 관측하고 있다.


2월 정기 인사를 맞는 효성그룹의 경우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인 현준, 현문, 현상씨 세 형제가 섬유, 무역, 중공업, 전략 등의 부문을 나눠 운영하고 있어 그룹 경영권이 어디로 쏠릴지가 관심사다.

삼형제의 지분구조도 눈길을 끈다. 조현문 부사장과 조현상 전무는 지난해 말 자사주를 각각 2만주와 1만주 매입했다. 조 부사장의 경우 14만9370주를 장내 매수했던 것을 합쳐 보유주식 비율이 6.99%로 조현준 사장의 지분율(6.94%)을 앞서고 있다. 


SK, 현대중, CJ 등 “승계는 아직”

KCC그룹은 지난해 3세 미성년자에게 주식을 물려줘 주목을 받았다 정상영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진 KCC 회장의 아들 명선군(15)이 4만4996주(0.43%)를 물려받아 미성년자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정몽익 KCC 사장(정 명예회장 2남)의 아들 제선 군(11)은 2만2781주(0.26%), 정몽열 KCC건설 사장(정 명예회장 3남) 아들 도선 군(14)은 1만8197주(0.17%)의 KCC 주식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2세인 정몽진 회장(49)은 17.76%의 KCC 주식을 갖고 있으며, 정몽익 사장(47)과 정몽열 사장(45)의 KCC 주식 보유율도 각각 8.81%, 5.29%에 달해 승계구도가 굳건하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몽근 명예회장이 물러난 이후 정지선 부회장 체제를 갖췄다. 정 부회장과 동생 정교선 현대홈쇼핑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각각 승진하면서 상실상 승계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장남 인근씨, 현대중공업 정몽준 대주주의 장남 기선씨,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선호씨 등은 핵심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의 한 인사는 “새해 들어 그룹의 2,3세들이 경영 일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면서 “최근 주가가 떨어진 틈을 타서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증여나 매수가 활발해진 것은 매입가격이 싼데다가 세금이 증여당시의 주가를 반영해 책정되기 때문에 감세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