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건설사들 괴담에 ‘벌벌’

‘사옥괴담’ 망령에 흉흉한 건설업계
사옥의 저주에 걸려 또 쓰러지나

2010-02-09     이광용 기자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구조조정 대상에 걸린 건설사들이 일명 ‘사옥괴담(社屋怪談)’에 벌벌 떨고 있다.
사옥을 구입하면 퇴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옥의 저주’가 다시 회자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의 분위기가 흉흉하다.

유동성 위기를 맞아 구조조정 대상에 들어간 건설사들은 사옥을 다시 처분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 사옥 가진 대우·동아·현대건설 등 위기 겪어
“사옥 갖고 있으면 망한다” 망령 되살아날까 분위기 흉흉
구조조정 대상 월드·우림 괴담 시달리며 사옥 매각 움직임
“건설경기 호황기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를 불렀다” 일침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는 최근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C등급 11개사와 D등급 퇴출 대상 1개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이나 워크아웃 대상 기업이 된 중견 건설사 가운데 몇몇은 구입한 사옥 때문에 고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사옥괴담은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자금난에 빠져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건설사들이 대부분 사옥 때문에 부도를 내거나 유동성 위기에 시달린 것을 빗댄 표현이다. 당시 사옥을 갖고 있었던 대우건설, 동아건설, 현대건설, 극동건설, 벽산건설, 청구 우방, 건영 등이 부도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사옥 지은 건설사들 구조조정 ‘좌불안석’

공교롭게도 최근 건설업계는 위기설이 돌았던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인 경기침체 국면에 빠져들면서 외환위기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됐다. 건설업계가 외환위기 이후 살아나 호황기를 누리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사옥을 짓거나 매입한 건설사들이 예상치 못한 글로벌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건설사들은 IMF의 시련을 거치면서 원활한 자금 유통을 위해 사옥을 마련하기보다는 ‘셋방살이’를 주로 해왔다. 그러다가 2000년 이후 건설업계에 훈풍이 불면서 그간의 보유자금으로 재투자를 단행해 사옥을 매입하거나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공격경영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사옥을 갖게 된 건설사들 가운데 공교롭게도 12개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괴담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 건설사는 당분간 유동성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사옥의 저주’라는 괴담에 걸려 시련을 겪고 있는 셈이다.


우림건설은 330억원에 사옥을 매입해 현재 500억원대로 시세가 상승했다. 그러나 회사가 최근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되면서 사옥을 매각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

지난 2007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인근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의 사옥을 매입했지만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해 11월 아크로 사옥을 임대로 전환하고 경기도 성남 아파트형 공장으로 회사를 이전하는 자구책을 마련했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서초동 건물을 매각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월드건설도 지난 2007년 강남에 사옥을 마련했다가 자금난에 빠져 이를 처분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 교보생명 4거리의 1만400여㎡의 지하 4층, 지상 7층 규모의 빌딩을 매입해 사옥으로 쓰면서 이 회사는 성장세를 달렸지만 최근 워크아웃 대상에 이름을 올리는 굴욕을 맞아 위기 탈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IMF 교훈 잊었나” 자성론

사옥괴담이 일부 실제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워크아웃 대상이 아닌 건설사들에도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지난 2007년 경기도 분당에 ‘에버빌타워’를 신축해 사옥을 옮긴 현진은 자금난 때문에 자사 소유 부동산 자산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두바이 오피스빌딩 부지를 1500억원에 처분하는 등 유동성 확충에 힘쓰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밖에도 태영건설, 성원건설 등 몇 년 전 사옥을 신축해 이전한 건설사들도 불황기를 맞아 자금 유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 건설사들이 ‘사옥의 저주’라는 덫에 걸려든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그동안 건설경기 호황기를 맞아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사업 확장에 무리하게 나선 것이 화근을 부른 것으로 분석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불도저식으로 주택사업을 전개하는 등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경영전략의 부재가 괴담까지 낳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