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사장 “정부 입맛 따라 달라요”

2005-03-22     파이낸셜투데이

“사상최대 흑자에 해고?” …가스공사 노조 “법적대응할 것”

 

오강현 사장, 주총전 자진사퇴 할 듯
산자부 ‘가스공사 길들이기 나섰나?’

한국가스공사 비상임이사회가 임기의 절반을 남겨둔 오강현 사장 해임결의안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공사이사회가 사장 해임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과정에 산업자원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가스공사 노동조합(위원장 신익수)은 성명서를 내고 “사장 개인에 대한 명예나 해임사유의 부당성을 떠나 정부가 입버릇처럼 외치던 공기업 경영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성명서에서 사장 해임사유로 민간발전사 사장들과의 골프회동, 일본 동경전력과의 스왑거래, 5조3교대, 노조의 정부정책 반대집회를 용인 및 집회참가자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는 등 공공성 확보와 질서유지에 관한 책무를 태만히 한 점 등을 들고 있으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특히 해외투자수익에 대한 회계처리와 수급안정을 위한 도입계약 과정에서 산자부의 부당한 개입에 대한 문제제기와 잘못된 정책에 대한 수정요구 등 공기업의 사장으로서 해야될 당연한 역할을 한 이후 사퇴 압력을 노골화해 왔다고 밝혔다.

이사회에서 문제로 지적한 골프회동의 경우 과거 한갑수 사장 이래 민간발전사 사장단들과 정기적인 모임으로 지속되어 온 것이며 더구나 비상임 이사들과의 골프, 산자부 관료와의 골프모임 등 훨씬 빈번했던 모임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고 동절기 수급문제 해소를 위한 골프모임을 문제 삼는 것은 심한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 12월 이상난동으로 인한 수요 감소로 발생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일본 동경전력과 스왑을 추진한 것을 산자부에 늦게 보고했다는 이유를 사장해임사유로 삼는 것은 정책적 오류를 모면하기 위한 행태라고 주장했다.

이와함께 사장해임 건의 사유가 타당성이 결여되었다는 판단 하에 자체적으로 법률자문을 구한 결과 비상임 이사가 해임 사유로 제기한 사유는 법령을 위반하거나 경영계약서를 위반한 것이 아니며, 그 사유 또한 경미하여 해임의 사유로는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장의 해임은 법이나 경영계약서를 위반한 경우로 제한되어 있으나 이번 이사회에서 사장해임 사유로 제시된 내용은 법과 경영계약서를 위반한 사유는 아니며 오히려 비상임 이사회는 2004년도 사장경영평가 점수를 93.883점에서 95.329점으로 평가하는 등 사장의 경영성과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조는 이사회 결의를 무효화하기 위한 가처분 신청, 비상임 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 감사원 감사청구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동부 고발 등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모든 법적·제도적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강현 사장은 “노조가 물리력으로 주주총회를 방해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노조는 주총 개최에 협조하고 법적분쟁도 제기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에 체류중인 오 사장은 오전 e-메일을 통해 사내전산망에 두번째로 올린 ‘노동조합 및 조합원 여러분께’라는 글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해임 의결은 본인의 문제지 노사관계도, 노조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노조에 자중할 것을 당부했다.

오 사장은 “이사회가 주총을 통해 주주지배권과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간으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부당한 사유의 해임건의안에 대해 주총이 끝나고 적절한 시기에 법에 의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 경영자의 법익을 보호받고 개인적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노조를 등에 업고 사장직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면 얼마남지 않은 주총전이라도 다른 결정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해 사태 전개에 따라서는 자진사퇴 등의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오 사장은 또 “그동안 사임을 수없이 생각했으나 음해와 오해에서 비롯된 부당한 압력에 굴복할 수 없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노조가 불필요한 법적분쟁을 제기하고 물리력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본인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측은 이에대해 오 사장의 의사와 관계없이 성남지원에 이사회결의무효 가처분신청과 비상임이사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낸 뒤 산업자원부에 대한 부동노동행위 고발과 감사원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경석 노조 기획국장은 “노조가 이사회의 해임결의에 대해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사장구명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공기업 경영자율과 노조활동에 대한 산자부의 부당한 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소송제기를 예정대로 강행할 뜻을 밝혔다.

가스공사의 한 관계자는 “오 사장은 2003년 9월 취임한 뒤 2004년 사상 최대 매출에 사상 최대 순이익 기록 등 그 동안 거둔 경영 성과가 뛰어났고 노조와도 비교적 관계가 좋았다”며 “일방적인 이사회의 결정은 누가 봐도 무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 사장이 산자부 방침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은 것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산자부는 “가스공사 이사회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친 것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누가 봐도 매끄럽지 못한 이번 해임 결의안 통과는 청와대의 공기업 자율경영 방침이나 최근 부패방지위원회 권고한 주무부처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과 정면 배치돼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한편 삼성증권은 한국가스공사의 비상임 이사회가 오강현 사장의 해임을 결의한 것과 관련,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보유’ 의견과 목표주가 2만9400원을 유지했다.
정순호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가스공사의 예상치 못한 경영진 교체는 회사에 대한 불신과 정부규제 리스크를 키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애널리스트는 “오 사장은 주주친화적인 태도로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해임될 경우 주가에는 특히 부정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친화적이고 고배당 정책을 추구하던 김명규 전 가스공사 사장이 해임된 당시에도 가스공사 주가는 시장수익률을 밑돈 바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현재 가스공사의 주요 주주는 정부(26.9%), 한국전력(24.5%), 지자체 정부(9.9%) 등이다. 오 사장 해임 여부는 오는 31일 가스공사 주주총회에서 가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