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유출 비상] 중국 등 해외로 인력·기술 유출…국가경쟁력 좀 먹는다
中, 국내 전기차 배터리·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인력 영입
韓 기업들, 잇따른 ‘인재 빼가기’에 경쟁력 악화 우려
2019-05-12 박주선 기자
[매일일보 박주선 기자]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핵심 인력 및 기술 유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내 인력과 기술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의 전기차 배터리 인력 빼가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완성차-배터리-IT’로 이어지는 한국 산업 생태계가 전기차 배터리에 최적화된 만큼, 국내 대기업의 전기차 배터리 인재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첨단기술 해외유출 방지 전담조직인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지난 10년간 적발한 국내 첨단기술 해외유출 사건 364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유출된 경우다.
중국 기업은 주로 고액연봉 등 금적적 미끼로 국내 학심 연구인력을 포섭하거나, 기밀자료 접근 권을 가진 임원을 채용하는 방식을 쓴다.
실제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는 기본 3~4배에 달하는 연봉 등을 제시하며 한국 배터리 인력을 뽑고 있다. 이들은 억대 연봉을 무기로 국내 인력 스카우트에 혈안이 돼 있을 정도다.
또 다른 중국 배터리 업체 중 하나인 ATL은 박사급 연구인력 중 절반가량을 한국인으로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타타자동차 등을 보유한 인도 타타그룹과 독일의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피니온도 한국 인력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중국이 주도하는 원통형에서 LG화학이 주력으로 삼는 파우치형으로 옮겨가는 점도 인력유출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파우치형 배터리의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20% 수준이지만,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도 높아 최근 들어 채용 업체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 역시 LG화학과 동일한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 인력 빼가기는 비단 전기차 배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표방하며 2~3년 전부터 메모리 반도체 산업 육성을 시도했다. 당시 중국은 같은 언어를 쓰는 대만 반도체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그러나 성과가 크지 않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이렇게 빼간 한국 인력으로 세계 반도체 시장 65%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비메모리 시장점유율은 2013년 3.1%에서 지난해 5%로 5년 새 1.9%포인트 뛰어올랐다.
삼성전자가 여전히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점유율만 놓고 보면 한국(4%)은 이미 중국(5%)에 뒤쳐진 상태다.
지난해 6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협력사 연구원이 OLED 관련 기술이 담긴 파일 5130건을 빼내 중국의 경쟁업체에 넘기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중국은 자금력을 앞세워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대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하기도 한다.
1993년 설립된 중국 BOE는 세계 LCD(액정표시장치)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현재전자의 디스플레이 제조기술을 보유한 이후 부터다.
BOE는 김대중 정부 당시 정부 주도로 강행된 대기업간 빅딜에 의해 탄생한 하이닉스의 계열사 하이디스를 2002년 말 인수했다. BOE는 기술공유라는 명분으로 기술자를 빼돌리고, 자사와 하이디스의 전산망을 통합한후, 하이디스의 LCD 제고 핵심기술 4000여건을 가로챘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의 잇따른 인력 유출이 자칫 회사의 경쟁력 악회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으로 인력 유출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왔지만, 2~3년 전부터 중국 등 해외 업체의 인력 빼가기는 공공연하게 이뤄졌다”면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업체 간 수주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술 침해, 인력 유출 등에 대한 신경전도 치열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역시 국내 인력 및 기술유출 위협은 여전한 상황이라 계속되는 인력 빼가기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