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주총 “많이 달라졌네”
총회꾼` 모습 거의 자취 감춰…사외이사 ‘찬성 로봇?’ 옥에 티
사외이사 오너·경영자 인사 구성…지배구조 개선 취지 역행
기업의 주주총회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주총하면 으레 떠오르던 총회꾼의 모습이 거의 자취를 감췄고, 주총 진행방식에서도 적지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발언기회를 더 많이 보장하는가 하면, 주총후 삼겹살 안주에 술을 대접하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주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총회꾼의 몰락이다. 90년 대까지 주총 시즌때마다 시중은행을 비롯해 주요기업 주총장을 휘젓고 다니던 총회꾼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삼성전자 주총때 참여연대 관계자가 질문을 할 때마다 재를 뿌리는 일부 소액주주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전문 총회꾼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이같은 이유에선가 올해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는 대부분 순조롭게 마무리 됐다.
특히 관심이 집중됐던 삼성전자와 SK㈜ 주총에서는 각각 참여연대와 소버린이 작정하고 공세를 펼쳤으나 ‘사상 최대 실적’에 고무된 일반 주주들의 냉대로 싱거운 ‘소문난 잔치’가 되고 말았다.
또 불경기 속에서도 좋은 실적을 올린 철강업체들은 비교적 두둑한 배당금으로 주주들의 환심을 샀고 LG그룹은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확대 도입으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참여연대와의 갈등으로 긴장감이 고조됐던 삼성전자 주총은 ‘100억달러 순이익’ 등 사상 최대 실적을 앞세운 회사측의 ‘주총 잔치’ 이벤트가 작전대로 먹혀들어 큰 어려움 없이 3시간만에 종료됐다.
참여연대는 이번에도 기업지배구조, 삼성카드출자, 김인주 사장 적격성, 삼성자동차 부실채권 등 아픈 구석을 찔러 가며 득의의 공세를 펼쳤으나 사측의 유연한 대응과 일반 주주들의 냉담한 반응에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순이익, 배당총액, 법인세에서 ‘트리플 조(兆)’ 시대를 연 사상 최대 실적을 전면에 내세우고 퓨전국악공연, 대형 배너광고, 첨단제품 전시 등으로 주총장에 축제 분위기를 연출, 참여연대의 예봉을 여유있게 피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SK㈜와 소버린 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이 예상과 달리 SK㈜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대부분의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주총 이전부터 SK㈜의 손을 들어준 상태였지만, 국내 소액주주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버린의 집요한 홍보전 때문에 주총이 열리기 전에는 어느 한쪽의 완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완승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사측이 그동안 펼쳐왔던 투명 경영 및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력에 많은 주주들이 지지를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SK㈜는 지난 1년간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을 70% 넘도록 확대했고 이사회 위주로 경영전략을 수립토록 하는 등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는 몰라도 SK㈜는 지난해 매출 17조3997억원, 당기순이익 1조6448억원 등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고,이에 따라 국내외 신용평가기관들도 SK㈜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상향조정했다.
LG그룹도 주요 상장사들은 올해 주총에서 스톡옵션제도 활성화를 위한 정관 변경안을 잇따라 통과시켜 눈길을 끌었다.
지주회사인 ㈜LG는 주총 특별결의를 통해 임직원에게 줄 수 있는 스톡옵션 범위를 주식 총수의 5%에서 15%로 늘리는 한편 관계 법령이 허용하는 선에서 이사회 결의만으로 스톡옵션을 줄 수 있도록 했다.
LG전자도 주총 특별결의를 통해 전체 발행주식의 5% 범위내에서 부여할 수 있던 스톡옵션을 이사회 결의에 의해 15% 안에서 발행할 수 있도록 정관을 고쳤다.
LG그룹은 주총을 같은 날 개최한 삼성과 달리 11개 상장 및 등록 계열사의 주총을 9일에 걸쳐 분산 개최했다.
LG는 “주주 중심의 경영과 투명한 주총 진행을 위해 날짜를 분산시켰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경우도 사상 최대 실적 등 고조된 분위기 덕에 별다른 잡음없이 조용히 끝났다.
포스코의 지난해 매출액은 19조7천920억원으로 전년 대비 37.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5조540억원으로 65.2% 늘어나면서 처음으로 5조원을 넘어섰다.
당기순이익도 3조8천260억원으로 전년 대비 93.2% 급증했고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지난 2003년 21.3%에 이어 작년에는 25.5%로 더 높아졌다.
이같은 실적 호전에 힘입어 포스코는 전년보다 33% 늘어난 주당 8천원(중간배당 1천500원포함)을 배당하기로 했다.
한편 이같은 주총의 가장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시가총액 10대 기업의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 의결에서 반대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중 이뤄진 삼성전자를 비롯한 시가총액 상위 10개사의 사외이사 의결 활동을 분석한 결과 357개 안건에 대한 2천536건(사외이사의 의결참여 건수)의 의결 중 반대는 5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대율 0.002%로 안건에 찬성한 사외이사들만 있었을 뿐 반대한 사외이사는 사실상 거의 없었다는 의미이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각 기업의 이사회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들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사전에 이견을 조정하는 바람에 반대가 없을 수도 있지만 회사에 대한 정보부족이나 경영진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 또는 종속 때문에 독립적인 의사 표현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의 반대는 국민은행(3건)과 LG전자(2건)에서만 있었을 뿐 다른 대표 상장사들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외이사들의 의결참여는 국민은행이 448건(안건 44건), LG전자가 175건(안건 35건)이었다.
삼성전자(안건 44건, 의결 308건), 포스코(안건 47건, 의결 415건), 한국전력(안건 31건, 의결 248건), 현대차(안건 40건, 의결 160건), SK텔레콤(안건 26건, 의결 104건), LG필립스LCD(안건 18건, 의결 72건), KT(안건 46건, 의결 353건), 신한금융지주(안건 26건, 의결 253건)는 사외이사들의 반대가 한 건도 없었다.
사외이사제도는 기업경영과 관련한 의사 결정과 경영진의 업무 집행을 감독함으로써 방만한 경영을 억제하고 경영투명성을 높여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외환위기 와중인 1998년 초에 도입됐다.
하지만 사외이사가 오너 또는 경영자의 구미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되다보니 경영진을 견제해 투명성과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당초 취지는 간데 없이 거수로 전락해 불필요한 비용만 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