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공습경보’… ‘現代 적통’ 굳히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진땀 빼는 속내
현대건설 군침 정몽준… 경영권 분쟁 ‘시한폭탄’
계열사 지배력 확대ㆍ현대아산 구하기 ‘올인’
2009-03-02 이광용 기자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안전한가. 분쟁의 불씨는 과연 꺼졌는가.
‘시동생의 난’이 재발하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우려 속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현대그룹에 재계의 이목이 다시 쏠리고 있다.
현대그룹이 최근 경영권 다지기에 적극 나서면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검찰이 현대상선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것이 현대그룹의 향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아직도 현대상선 등에 대한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분율이 높은데다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형수와 시동생이 다시 맞붙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관광사업 중단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아산을 지키기 위해 그룹 차원의 지원 움직임도 두드러지고 있다.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놓고 그간 벌였던 현대가의 신경전을 감안한 행보로도 읽힌다.
현대그룹은 일련의 행보를 경영권 안정화 차원이라고만 밝히지만, 언젠가 다시 터질 경영권 분쟁과 정통성 논란에 대비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상선ㆍ.엘리베이터 지분 확대 주력 불구 경영권 분쟁 불씨 ‘시한폭탄’
‘대북쇼크’ 현대아산 경영난 타개 위해 계열사 유상증자 참여 총동원
현대건설 M&A 최대 고비 vs 현대그룹 “단순한 경영권 안정화 차원”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의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그 배경에 궁금증이 증폭됐다.
현대그룹 등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최근 장내매수를 통해 현대상선의 지분율을 19.29%로 늘렸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9월 이후 현대상선의 지분을 꾸준히 늘리는데 주력해 왔다. 현대택배, 현대증권, 현대아산 등 그룹의 주요 기업 지분을 갖고 있는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앞서 현대그룹은 현대택배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꾸준히 늘려 2월 2일까지 18.58%로 최대주주로서 지분율을 높였다. 이로써 현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44.17%로 늘었다. 현대택배도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20.9%까지 높일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련의 지분 확충으로 현대그룹은 이전보다 튼튼한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고, 현 회장의 지배력도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 회장은 사실상의 그룹 지배회사로 올라선 현대택배의 2대주주다.
증권 전문가들은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전체적으로 강화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문희 여사가 지난해 말부터 보유 주식을 현 회장 일가에게 증여 또는 매도해 현 회장의 경영권 역시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그룹 핵심 현대상선ㆍ엘리베이터
현정은 회장 지분 다지기 주력
증권가에서는 이같은 지분 변동이 현대상선 자금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택배는 지난 1월 현대아산 보유지분을 현대상선에 201억원에 매각한 이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늘렸다. 현대상선의 경우는 KB금융지주의 자사주 1.6%를 1500억원에 사는 대신 현대상선이 보유했던 의결권 없는 자사주 3.3%를 국민은행에 넘기는 맞교환으로 의결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현대그룹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을 높이는 것에 대해 경영권 방어 차원으로 해석한다. 2007년 17만원에 거래되던 주가가 최근 5만4000원 가량에 머물고 있어 M&A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공격을 차단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이 44.17%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KCC의 지분을 넘겨받은 쉰들러도 25%의 지분을 갖고 있어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영권 분쟁의 여지는 모두 제거된 것일까. 현대그룹이 핵심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권을 강화하긴 했지만, 각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에 대한 지배력은 여전히 불안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대상선의 최대주주는 ‘시동생의 난’으로 맞붙었던 현대중공업그룹이어서 또 다시 분쟁이 붙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우호지분을 합채 33.48%의 현대상선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범 현대가의 동의를 얻어 현대그룹의 지배권을 ‘현씨 일가’에서 정씨로 옮겨오는 작업에 언제든 나설 가능성이 상존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오너의 의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경영권 안정화 차원에서 지분을 매입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現代 정통성’ 현대아산 살리기
현대건설 M&A 등 ‘산 넘어 산’
현대그룹은 그룹의 상징인 현대아산에 대한 정통성을 지키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대그룹은 2월 19일 운영자금 목적의 2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대북사업 냉각으로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아산의 자재ㆍ공사대금 납부, 인건비, 임차료 등을 조달하는 유증에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대아산은 2007년까지 3년간 흑자를 기록하다 지난해 금강산과 개성에 대한 관광이 중단되면서 930억원의 매출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직원을 1084명에서 절반 이하로 줄였지만 급여를 30% 삭감하는 등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다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잠재한 가운데 ‘現代의 상징’인 대북사업을 포기할 경우 그룹 정통성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분쟁의 변수 가운데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있다. 현대상선의 지분 7.2%를 보유한 현대건설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건설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매각이 본 궤도에 올라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현대그룹의 경영권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최근 지배력 강화에 적극 나서는 것도 미래에 빚어질 수 있는 사태를 미연에 대비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재계는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현대상선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현대그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현정은 회장과 정지이 전무를 비롯한 주변 지인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고발 사건을 금융조세1부(부장 김강욱)에서 맡아 수사에 착수했다.
현대증권 노동조합은 2007년 현 회장 등이 주가조작을 통해 100억원대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파악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노조는 현 회장 등이 현대상선 자사주 취득계획이 발표되기 이전에 먼저 주식을 사들여 두배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주가가 이상급등 현상을 보여 회사(현대상선) 차원에서 2007년 5월 30일 공시를 통해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의뢰해 마무리된 것인데, 같은 사안을 두고 노조에서 검찰에 고발해 인지 수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의미를 낮게 평가했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