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영구채 발행, '승자의 저주' 진화인가 시한폭탄인가
2013-10-09 박동준 기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두산인프라코어가 최근 발행한 하이브리드채권(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자본’으로서 적정한지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측은 이번 채권 발행에 대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며 재무구조 개선을 기대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부채로 인식돼 잠재적인 유동성 위기가 잔존한다는 의견도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7일 5억달러 규모의 30년 만기 하이브리드 채권, 일명 영구채를 국내기업 최초로 발행했다. 이번 채권은 오는 11월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 상환을 위해 발행됐다.지난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를 포함해 두산그룹은 각 계열사가 자금을 출자해 미국의 건설중장비 업체 밥캣을 인수했다. 당시 두산그룹은 밥캣 인수를 기점으로 건설․중장비 산업을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선택했다.두산그룹은 밥캣 인수 당시 각 계열사별로 출자한 금액 이외에 은행권으로부터 29억달러를 신디케이트론으로 자금을 융통하고 나머지 미래에셋, 한국투자증권, 신영증권, 동양증권 등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8억9000만달러를 조달했다. 이 중 재무적투자자가 보유한 풋옵션 만기가 다음달 도래해 이를 상환하기 위해 5억달러 규모의 하이브리드 채권이 발행됐다. 이번 하이브리드 채권의 특징은 만기가 30년이지만 두산인프라코어가 원할 경우 만기를 무한정 연장할 수 있다. 지난 4월 상법 개정으로 금융회사만이 발행할 수 있었던 하이브리드채권을 일반 회사도 발행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두산이 발행한 채권 금리는 미국채 5년물에 265bp(2.65%)를 가산한 3.328%로 결정됐다. 단 두산인프라코어가 5년 안에 원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연 5%의 금리가 추가되고 7년이 지나면 다시 연 2%의 가산금리가 더해지는 더블 스텝업(step up)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회사측은 이번 채권 발행에 대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평가하면서 재무구조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지난 7일 영구채 발행기념식에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세계적인 장기적 저성장 기조에 대응하기 위한 재무적인 혁신 조치”라며 “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자평했다.박 회장이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자평하면서까지 이번 채권 발행에 흡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회계상 부채로 잡히지 않고 자본으로 계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회사채는 싱가폴에서 발행과 동시에 증시에 상장돼 거래가 되고 있다.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두산의 하이브리드 채권을 전액 자본으로 인정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한국기업평가는 지난 9월 하이브리드 채권에 대한 보고서에서 “하이브리드 채권은 100% 자본으로 인정받기는 어렵고 세부 발행조건에 따라 최대 50%까지만 자본 인정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했다.한기평은 이 보고서에서 하이브리드 채권의 자본성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조기상환청구권(call option)’과 ‘금리상향조정조항(step-up)’을 꼽았다.특히 Step-up은 최초 콜옵션 행사 가능 시점에 금리를 상향하는 조건을 부가함으로써 콜옵션 행사를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에 Step-up 수준이 클수록 하이브리드 채권의 자본성은 약화되는 것으로 한기평은 해석했다.앞서 한기평은 “발행 초 이자보다 1%포인트 이상 금리가 높아진다면 이는 유효한 상환만기가 있다고 보는게 옳다”고 밝혔다. 이번 두산의 하이브리드 채권은 더블 스텝업으로 가산금리는 초기 금리보다 7% 높다.한기평 관계자는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되지만 시장에서는 부채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과거 상환우선주의 경우 회계적으로 자본으로 인정됐지만 당시에도 시장에서는 이를 부채로 평가했으며 현재는 회계상으로도 부채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다만 이 관계자는 “이번 두산의 하이브리드 채권에 대해 회사측으로부터 정확한 발행조건을 전달받지 못해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