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생명 “주인은 어디 있나요?”
기업가치 보존 TF팀 등 매각결렬 대책반 구성
외국자본, 배꼽까지 다 보고선 정보만 쏙 빼가
SK생명이 새주인을 찾는데 실패했다.
지난해 8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SK그룹 및 채권단과 인수 협상을 벌여 왔던 미국계 보험사 메트라이프가 SK생명 인수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메트라이프가 인수를 추진했던 SK생명 지분은 SK네트웍스와 SKC 등 SK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97.37%로, 지난 1월에는 본 계약을 위한 최종 법률 검토 작업까지 벌였다.
게다가 2순위 협상대상자를 따로 지정해 두지 않아 SK생명 매각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SK생명은 큰 충격에 휩싸인 채 기업가치보전대책반 구성 등 파장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SK생명은 2월말 현재 임직원 1천80명에 자산규모도 4조8천억원에 달한다. 또한 2002회계연도와 2003회계연도에는 각각 821억원, 593억원의 세전이익을 냈으며, 지난해 12월까지 601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생보사 중에서도 ‘알짜회사’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관련업계에서는 메트라이프의 협상결렬 선언을 의아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따라서 이번 매각 무산으로 SK생명 기업가치가 훼손된 것은 고사하고라도 내부 정보 상당부분이 외부로 유출돼 당분간 다른 매수자를 찾기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SK생명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던 메트라이프가 인수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지난 16일.
이날 오전 SK그룹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에 이 같은 의사를 담은 공식 문건을 전달한 것이다.
메트라이프가 표면상 내세운 매각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인력 구조조정 문제였다.
메트라이프측의 요구는 인수전에 명예퇴직 등을 비롯한 자율적 인력 감축 외에도 설계사를 제외한 전체 직원 1천100여명 가운데 400명에 달하는 영업인력을 전원 계약직으로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SK생명은 이러한 요구사항을 놓고 노조와 협상해 왔으나 노조의 반대로 구조조정 협상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메트라이프는 구조조정 없는 인수는 불가능하다는 자세를 끝까지 고수했다.
여기에다 메트라이프가 이달 초 채권단에 SK생명 인수 후 메트라이프 한국법인과 SK생명 합병 문제 해결을 추가로 요구한 것이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채권단은 이렇듯 불가능한 요구사항을 추가한다면 SK생명을 팔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메트라이프에 전달했고, 결국 협상은 결렬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SK생명은 메트라이프의 매각협상 결렬 선언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업 가치에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SK생명은 메트라이프의 일방적인 매각협상 결렬 후 대표이사 특별 담화문 발표, 기업가치보전대책반 구성 등 파장 최소화와 회사 정상화를 위해 다각도의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메트라이프가 매각협상결렬을 선언한 다음날인 17일 SK생명 유재홍 사장은 특별담화문을 발표해 “상황 변화에 동요하지 말고 침착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유 사장은 이어 “투철한 기업관과 동료애로 회사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을 당부한다”면서 “불안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고객들에게 신뢰를 지킬 수 있도록 대 고객 서비스 및 관리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주문했다.
메트라이프에 의해 협상결렬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SK생명 노동조합도 성명서를 통해 “인력구조조정과 관련하여 합리적인 선에서 최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자는 의사를 사측을 통해 전달한 바 있다”며 “메트라이프의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SK생명 노동조합은 이어 “앞으로도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회사 발전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노조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SK생명은 22일에는 ‘기업가치 보존을 위한 특별대책반’을 구성했다. 매각 협상 중단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고 기업가치를 보존, 향상시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다.
SK생명은 우선 그동안 매각 협상 때문에 제대로 실시하지 못했던 방카슈랑스 제휴를 확대할 방침이다.
회사 경영권의 향방이 불투명해 방카슈랑스 제휴에 소극적으로 임하다 보니 지난해 말 하나은행과 제휴한 것이 유일한 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각 협상이 무산된 만큼 하나은행을 포함 3~4개 은행과의 방카슈랑스 제휴를 적극적으로 추진, 회사 가치를 높이는데 매진한다는 각오다.
SK생명은 이와 함께 설계사를 통한 보험영업을 계속 강화하면서 판매채널 다각화를 위해 홈쇼핑, TM 영업 등을 강화해 경쟁력을 키울 계획이다.
한편 현재 일각에서는 메트라이프가 과연 SK생명에 대한 인수 의지가 있었느냐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매각협상 결렬 과정을 놓고 볼 때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메트라이프측은 “SK그룹측과 적절한 기간 내에 노조를 비롯한 여러 이슈에 대해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 SK생명 인수 가능성에 관한 논의를 종결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메트라이프는 협상 과정에서 노조를 직접 만난 적도 없을 뿐더러 기업가치가 훼손될 것을 알면서도 협상을 이유로 시간을 8개월여나 끌어 왔다는 점을 관련업계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메트라이프는 SK생명의 과장급 직원까지 만나며 영업전략, 영업방식, 기업대출 정보 등 영업기밀에 속하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국내 생보시장점유율 1.5%로 13위에 불과한 메트라이프가 2.6%로 10위를 기록한 SK생명을 인수한다며 각종 정보만 빼내간 꼴이 된 셈이라는 것이다.
막판에 논란을 불러온 메트라이프 한국법인과 SK생명 합병 문제 해결도 상식에 어긋나는 요구사항이라는 지적이 많다.
메트라이프가 2002년 3월 대한생명을 인수하겠다고 선언하고 한 달여 동안 실사만 벌인 뒤 막판에 협상을 포기했던 전력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결국 이러한 행위는 인수 의사도 없으면서 대한생명과 SK생명의 실사를 통해 한국 생보시장의 정보만 알아내려고 한 것으로 전형적인 외국계 투기자본의 행태라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SK생명 매각은 상당기간 지연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채권단은 아직까지 HSBC 등 차순위권자와 SK생명 매각과 관련해 협의를 한 적이 없으며 일단 시간을 갖고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이를 두고 당분간 매각을 미루고 채권단, 대주주 등과 다시 충분한 협의를 거치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메트라이프가 SK생명 인수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SK생명의 정보와 비밀이 상당 부분 노출돼 매수자를 찾기도 어렵고, 훼손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채권단은 매각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분간 SK생명 매각은 고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