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받이’ 자처한 국민연금 주식시장서 ‘외통수’ 걸리나

주식투자 비중 줄인다더니 실상은…
주가 1100 하회 투자비중 12% 채우려면 무고건 매입 ‘외통수’
외국인ㆍ기관 다 떠나는데 국민연금만 ‘나홀로 증시 떠받치기?’

2009-03-09     이광용 기자

작년 20조 손실에 올초 -16.9%… 증시투입 논란 도마에
연금재정 갈수록 악화… 노후생활 보루 뿌리째 흔들리나
비중 줄였다지만 시장 낙폭 크고 ±5% 규정에 진퇴양난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에 경고등이 잇따라 깜빡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연금 재정은 탈출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국민 노후생활의 보루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증권시장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하면서 국민연금기금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 압박에 증시를 무리하게 떠받쳤다는 비판을 받았던 지난해의 경우 주식투자 비중 확대로 20조원 가까이 연금을 까먹었다. 박해춘 이사장의 불도저식 경영 스타일도 한 몫 거들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최근 발표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공시에서도 지분율 5% 이상을 보유한 28개 투자종목 현황에서도 6634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종합주가지수 1100선이 무너진 상황에서 올해엔 손실액이 더욱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주식투자 목표비중이 마지노선인 12% 밑으로 떨어진다면 추가 매입에 나서야 하는 ‘외통수’에 걸릴 수 있어 국민연금이 증시를 떠받치는 ‘총알받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민의 노후대비 연금의 무리한 증시 활용에 대한 찬반 논란이 다시 한번 거세게 일 조짐이다.

주가지수 1100선 무너저 추가 매입 30조원에 달할 수도
MB정부-박해춘 이사장 공격적 주식투자 국민저항 증폭
외국인ㆍ기관 다 떠나는데 국민연금 ‘나 홀로 떠받치기?’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최근 공시된 국민연금의 5% 이상 지분보유 종목에 대한 투자 성적은 여전히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국민연금도 주식 대량보유(5% 이상) 상황을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2월 27일과 지난 2일에 공시한 28개 종목에 대한 투자현황에 따르면 모두 3조9190억원을 투자해 27일 종가 기준으로 6634억원의 손실을 냈다.

매수시점이 공시되지 않아 기간 수익률을 파악할 수 없지만 절대수익률로 -16.93%로 투자성적이 크게 부진했다.

종목별로는 현대중공업에서 1966억원의 평가손을 입은 것이 가장 컸다. 이어 삼성물산(1187억원), 삼성화재(932억원), 미래에셋증권(555억원), 현대해상(343억원) 등의 순으로 손실액이 많았다.

2월27일 종가 기준 6634억원 손실

수익률로 따져보면, 대상의 경우 평균 취득가격이 8780원인데 2월 27일 종가 기준 4540원을 기록해 수익률이 -48.2%로 가장 낮았다. 미래에셋증권은 -31.4%, 현대해상 -29.39%, 진성티이씨 -25.3%, 한국제지 -24.3%, 한진 -22.0%, 동화약품 -21.0%, 롯데삼강이 -20.6% 등을 각각 기록했다.

그나마 평가이익을 본 종목은 삼성전기(324억원, +17.69%), 하이닉스(144억원, 5.74%), 대한제당(19억원, 17.13%) 정도에 그쳤다.

국민연금은 주가지수가 바닥권을 향해 떨어질 때마다 자금을 투입했는데, 이후 반등에 실패하거나 주가가 더 떨어진 것이 수익률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2월 말까지 9조2191억원을 순매수하는 등 증시를 떠받쳤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역으로 같은 기간에 23조1383억원을 순매도함으로써 힘을 쓰지 못했다. 여기에 국민연금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투신권도 7조5635억원을 순매도하며 도움을 주지 못해 연금 수익률 악화를 부추긴 셈이 됐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6개월 간격으로 5% 이상 보유한 종목의 현황을 공개해 왔으나 지난달부터 자본시장법이 시행됨에 따라 한달의 시차를 두고 5% 이상 보유종목의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9월 밝힌 5% 이상 보유한 주식은 모두 100종목에 달한다.

‘묻지마’ 주식투자 박해춘 이사장
증시 떠받치기로 작년 20조 손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9조7550억원의 손실을 봤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6일 현재 주식시장에 31조9285억원을 투자했지만 19조7550억원의 손실을 남겨 -41.2%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채권에서는 10.33%, 대체투자에서는 3.15%의 수익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무리하게 주식투자를 늘린 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해 ‘대통령과의 대화’ 방송을 통해 “국민연금기금을 전문가에게 위탁하면 10%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다”면서 주식 투자에 나서도록 국민연금에 압박을 가했다.

국민연금이 ‘묻지마 증시 투자’에 나선 데에는 박해춘 이사장의 역할도 컸다. 그는 지난해 7월 말 취임 일성으로 국민연금의 공격적 주식 투자를 통해 고수익을 올리겠다고 선언해 구설수에 올랐다. 국무회의에서는 가입자대표들의 국민연금 기금운용 의사결정권을 박탈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의결해 보조를 맞췄다.

박 이사장은 당시 2012년에 주식 투자비중을 40%로 확대하겠다며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를 두고 증권가 안팎에서는 기금운용 계획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하는 자산배분안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사장이 나서 비중 확대를 선언한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됐다.

박 이사장은 서울보증보험 사장, 우리은행 은행장을 거친 민간금융 CEO 출신이다. 우리은행장 시절 박 이사장은 2007년 7월 자산 200조원 돌파한 실적을 자축하면서 속도전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그는 “2006년 대출이 46조원이나 늘어 부실을 걱적했는데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 크게 염려할 수준이 아니다”면서 “앞으로 3년 동안 달성하려던 카드의 목표 시장점유율 10%를 1년 내에 이루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당시 우리은행은 전임 황영기 행장의 ‘검투사’ 식 확장경영과 무리한 영업으로 인해 부실 위험을 안고 있었다. LG카드 인수전에서 승리한 신한은행이 조흥은행까지 합병하면서 덩치 경쟁을 주도하자 우리은행도 외형확장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은행은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등 파생상품에 2005∼2007년 16억 달러를 투자했고 2006년 대출 증가율은 30.82%로 국내 은행 평균의 두배를 넘어섰다.

예금보험공사는 외형에 집착하다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당시 박 행장을 재무목표 미달로 주의 상당 조치를 취하는 등의 징계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지수 1100 무너져 추가 매입 ‘외통수’
전문가들 “10% 이하로 안정 운용해야”

분기마다 수조원대의 손실을 입으면서도 국민연금은 올해에도 주식투자 목표비중을 작년보다 높게 잡았다.

여기엔 논란이 존재한다. 국민연금 기금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말 주식 투자 비중을 당초 목표 20.3%에서 17.0%로 낮추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투자액은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목표 비중이 17.0%에서 ±5%로 설정돼 있기 때문에 지난해 말 기준 12.0%보다 많게는 10%까지 늘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 주식 비중을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늘리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특히 종합주가지수가 1100선이 무너진 상황에서 만약 1000으로 하락한다고 가정하면 국민연금의 주식평가액은 2조7000억원 가량 줄어 주식투자 비중이 11%로 떨어지게 된다. 이럴 경우에는 마지노선 12%를 맞추기 위해 손실분 2조7000억원을 어쩔 수 없이 다시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지게 되는 것이다.

주가지수가 800선으로 주저앉는다면 8조원 이상의 연금을 주식시장에 쏟아 붓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올해에도 증시의 ‘총알받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증권가의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 추가 하락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는 것이 전망의 근거다.

또 한가지 변수가 더 있다. 올해 말 국민연금기금의 전체 규모가 증가할 전망이어서 주식 투자 비중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금운용위가 정한 목표 비중 17%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약 16조원이 증가하며, 공단 측에서 비중을 상한선인 22%까지 더 늘리고 싶다면 30조원 가량을 추가 투자할 수도 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올해 종합주가지수가 1100이하로 내려갈 경우 무조건 주식을 매입해야 하는 ‘외통수’에 국민연금이 걸려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지수는 1100선이 무너져 1000선마저 위협하는 상황이어서 국민연금은 진퇴양란의 기로에 서 있게 된 셈이다.

오 실장은 “주가지수가 이처럼 떨어지면 주식투자 비중이 12% 밑으로 떨어질텐데 이 경우 주식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외통수에 걸려있는 상황”이라며 “외국인 투자자들과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 모두 팔고 떠나는데 국민연금만 남아서 홀로 주가를 떠받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이 중장기적으로 투자비중을 늘리는 고위험 고수익 전략을 접고 주식투자 비중 마지노선을 10% 이하로 낮춰 안정적으로 기금을 운용하는 전략으로 시급히 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광용 기자 <skynpine@sisa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