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 쥐락펴락하는 정유사들의 비밀

올릴 땐 ‘확’ 내릴 땐 ‘찔끔’ 얌체상술 극성

2009-03-14     김시울 기자

 고물가에 허리 휘는 소비자들 부담 가중시켜
경쟁 주유소 1개 많을수록 기름 값 2.5원 하락

[매일일보=김시울 기자] 국제유가가 상승할 때는 국내 기름 값이 크게 오른 반면 유가가 떨어질 때 소비자 가격은 그야말로 찔끔 내리는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유가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다는 정유사들의 그간 주장이 무색하게 된 것. 지난 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간한 ‘정유산업의 경쟁상황과 가격결정 패턴’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1월부터 작년 11월까지 국제 휘발유가격(싱가포르 현물시장 기준)이 ℓ당 1원 상승한 달에 국내 휘발유 소매가격(이하 세전)은 평균 0.55원, 이후 3개월 동안은 1.15원 각각 올랐다. 이에 반해 국제 휘발유가격이 ℓ당 1원 떨어진 달에는 0.30원, 이후 3개월 동안은 0.93원 하락하는데 그쳤다. 동일한 기간 국제 원유가격(두바이유 기준)이 ℓ당 1원 상승한 달에도 국내 휘발유 가격은 0.71원, 이후 3개월 동안은 1.32원 뛰었으나 1원 하락한 달에는 0.36원, 이후 3개월 동안은 1.04원 떨어지는 데 불과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휘발유 소비자 가격에 빠르게 반영되는 반면 떨어질 때는 반영 속도가 늦었던 것이다. 보고서를 발표한 오선아 서울대 경제연구소 박사는 “그 동안 정유사와 주유소들이 국내 휘발유가격을 국제 휘발유 가격에 따라 합리적으로 책정했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비대칭적이란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가격조정이 비대칭적이란 것은 원가가 상승할 경우 이를 이유로 국내 휘발유 가격도 대폭 인상되지만, 반대로 하락했을 때는 국내 가격이 잘 내리지 않는 현상을 가리킨다.오 박사는 “원화 등 제반 요소를 모두 반영하더라도 국제원유 가격과 국제휘발유 가격 대비 국내 휘발유 소매가격은 비대칭적이었다”고 분석했다.

‘합리적’ 외치던 정유사들 가격책정, 알고보니 ‘비대칭적’

공정위에 따르면 또 서울 시내 694개 주유소의 작년 10~11월 휘발유 판매가격을 분석한 결과, 주변에 경쟁 주유소가 많을수록 기름 값도 싼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시내 주유소의 98.4%는 반경 1㎞ 내에 경쟁 주유소가 있고 그 수는 평균 5.2개였다. 반경 1㎞ 내에 경쟁 주유소가 1개 늘어날수록 그 지역의 휘발유 값은 ℓ당 평균 2.5원 낮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접 주유소와의 거리가 100m 늘어날 때 판매가격은 ℓ당 2.3원 정도 높아졌다.주변에 무폴주유소(폴사인 없는 독립 주유소)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가격하락 효과도 뚜렷했다. 주위 반경 1㎞이내 무폴주유소가 있으면 휘발유 도매가격은 40원 정도 하락했고, 공시지가 등 제반사정을 고려할 경우 최종적인 소매가격은 22원 정도 떨어졌다. 남재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주유소 소재지의 개별 공시지가가 높을수록 휘발유 가격은 높게 형성됐다”며 “공시지가와 석유가격이 비례하지 않는다면 해당 지역의 경쟁상황이 그만큼 덜 치열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구와 중구를 비교해보면 공시지가는 각각 518만원, 683만원으로 종로구 땅값이 좀 더 낮았지만, 주유소의 평균 가격은 각각 1529.4원, 1515.2원로 오히려 더 높았다. 이밖에 서울시 구별로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가격을 비교해보면 중랑구(1419.8원)가 낮았고 종로구, 중구, 용산구(1515.2원), 강남구(1518.9원) 등이 높은 판매가격을 나타냈다.한편 정유회사가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가 대리점 계약을 맺은 자영 주유소보다 기름 값이 오히려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직영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천472원으로, 자영 주유소 평균가격 1천459원보다 13원 높다.또 세차시설이 있는 주유소는 없는 주유소에 비해 판매가격이 ℓ당 9원 정도 비싼 반면 경정비 설비가 있는 주유소는 그렇지 않은 주유소에 비해 6.5원 정도 기름 값이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협회, “정유업계 가격결정 메커니즘과 상이” 보고서 반박

공정위의 이같은 보고서가 발표되자 대한석유협회는 즉각 반론자료를 내고 보고서를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석유협회는 공정위 연구용역 보고서는 분석기간, 분석대상(투입-산출 변수 종류) 등 몇 가지 점에서 실제 정유업계의 가격결정 메커니즘과 어긋난다고 주장했다.석유협회는 특히 2007년 6월 이후부터 올해 1월까지의 휘발유 세전 판매가와 국제 휘발유가격의 연관관계에 초점을 맞춰 공정위 보도자료에 반기를 들었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이 기간 국제 휘발유가격이 상승할 때 정유사가 각 주유소에 공급하는 세전 판매가격 상승분은 국제 휘발유가격 상승분의 93%에 불과했다.반대로 국제 휘발유가격이 하락할 때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 세전 판매가격 하락분은 국제 휘발유가격 하락분의 105%에 달했다. 이는 “정유업계가 1997년 1월∼2008년 11월 기간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휘발유 소비자가격에 빠르게 반영하는 반면, 떨어질 때는 반영속도가 늦었다”는 공정위 연구용역 보고서와 상반되는 결과라는 것이 석유협회의 주장이다.석유협회는 “공정위 연구용역 보고서를 바탕으로 최근 보도된 국내 휘발유 소매가격(세전)은 정유소가 각 주유소에 공급한 휘발유 도매가격(세전)에 유통비용(주유소 마지 등)을 포함한 가격으로, 순수한 정유사의 공급가격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며 주유소업계 쪽으로 책임을 돌렸다.석유협회는 또 정유사 직영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이 자영주유소 평균 가격보다 높았다는 공정위의 보고서 내용에 대해서도, “보고서 자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하는데다, 일부 정유사 직영주유소가 자영주유소보다 판매가격이 낮게 나타나기도 하는 등 정유사 직영주유소라고 해서 무조건 자영주유소보다 판매가격이 비싸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