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서 교육, 불수능을 위한 이벤트가 돼서는 안된다

2019-05-30     김덕유 천재교육 중등개발본부 팀장
김덕유
[김덕유 천재교육 중등개발본부 팀장] ‘역대급 국어 불수능’이라 불렸던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독서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국어영역의 만점 표준점수가 150점으로 치솟았고, 1등급 컷 점수는 84점으로 매우 낮았는데, 이는 비문학 독서 파트의 지문이 길어지고 문제가 어렵게 출제된 것과 관련이 깊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독해력이 떨어진 탓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함에 따라 띄엄띄엄 필요한 정보만 확인하는 것에 길들여지면서 문자 텍스트 독해력이 낮아진 데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 불구하고 이번 역대급 불수능의 국어영역에서도 148명의 만점자가 나왔다. 주목할 점은 만점자의 90% 정도가 어렸을 때부터 독서 습관을 길러온 것으로 조사된 점이다. 이들 대부분은 인터뷰에서 국어 공부의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일찍부터 독서를 시작하라고 권했다. 한 학생은 1년에 무려 500권의 책을 봤다고 답했다. 이에 교육업계는 학생들의 독해력 향상에 도움이 될 만한 콘텐츠와 서비스 개발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역대급 국어 불수능이 독서 교육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뜨거워진 관심이 자칫 이후 치러질 수능의 난이도에 따라 다시 식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다시, 책으로’의 저자 매리언 울프에 따르면 ‘깊이 읽기’는 문장에 담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타인에 대한 공감·유추와 추론을 통한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디지털 읽기가 일반화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 비판적 사고를 통한 개인의 성찰 능력까지 떨어뜨릴 것이라고 한다. 매리언 울프의 이러한 경고는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 보급율 1위인 IT 강국 한국의 현실에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전자책 이용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종이책 독서량은 줄어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학생의 연간 독서량은 2015년 19.4권에서 2017년 18.5권으로 줄어들었다. 대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년간 교내 도서관 도서 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1인당 대출 권수는 학부생이 8.9권, 대학원생은 13.4권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길을 헤매지 않도록, 때로는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책 한 권을 천천히 읽어 보자. 책 속에 박힌 활자들 속에서 새로운 어휘의 뜻을 헤아리면서, 겹겹이 층을 이룬 행간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속에 담긴 여러 생각과 느낌의 결을 살피면서 읽어 보자. 공부머리를 틔우고 타인을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거기에 있다.